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완 Feb 27. 2023

무례하지 않은 세상을 위해


누구나 한 번쯤은 무례한 사람을 만난 기억이 있을 겁니다.

뜻밖에 만난 불친절은 제법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누군가는 트라우마로 남아 비슷한 경험을 다시 만나면 예민하게 반응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나 자신 또한 무례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네 그렇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무례함을 당하면서 무례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나라는 존재와 타인이라는 관계가 사라지지 않는 한 

무례함은 시한폭탄처럼 감정 사이에 잠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살면서 무례한 사람을 만나는 확률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우리 기억에 깊이 남을 뿐이지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이웃 중에서

무례한 사람을 만날 가능성은 10%를 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특별히 친절한 사람을 만날 가능성이 그 정도 된다고 한다면

나머지 80%는 지극히 평범하게 지나치는 일상의 만남입니다.

무심히 지나치고 기억에도 남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그 이상의 확률로 무례한 사람을 만난다면 사회의 구성원들이 문제가 있거나

아니면 본인이 조금 무례한 편에 속할 수도 있습니다.


평범하게 흐르는 일상도 나 혼자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사회의 규범, 도덕적 가치, 이해와 배려에 적응하며

이름도 모르는 손님, 주인, 승객, 행인에게 무례한 행동을 피하려는 이웃이 있습니다.

평범한 일상을 지켜주는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례함은 불쑥 찾아오는 불청객처럼 찾아옵니다.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나 자신이 무례한 사람이 된 적도 많습니다.

반가운 친구들과의 대화소리가 다른 이들에게는 불쾌하게 들리기도 하고

음악을 들으며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걷다가 누군가와 부딪히기도 합니다.

급한 사정이 있어서 차선을 끼어들지만 상대방은 그 사정을 알아 줄리 없습니다.





무례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일정한 학습 과정을 거칩니다.

사회적 합의, 배려, 나눔과 친절을 사회생활의 기본적 가치로 배웁니다.

공교육의 주요한 목적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우리의 무례함도 학습되어젔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상에서, 가까운 곳에서 감정을 쉽게 드러낼 수 있는 사람들에게 말입니다.


주요 범인 중 하나는 가정입니다.

가정은 사랑을 배우기도 하지만 무례함을 가장 쉽게 배우는 곳입니다.

오래 알고 지내면서 내 진짜 모습, 말투, 습관을 알고 있는 가족은 일상적 무례함을 키워냅니다.

가족이기에 쉽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밖에서 하지 않는 모습이나 행동도 집에서는 평범하게 튀어나옵니다.


하루는 아들에게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엄마 아빠는 왜 나보다 친구들에게 더 친절해요?"


가족이라는 이유로 친절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아이들에게 가르치지는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내 삶에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건 내 몸뚱이 하나뿐입니다.

내 가족이라 할지라도 내 소유일 수는 더더욱 없습니다.

때가 되면 떠나보내야 하는 귀한 손님입니다.

적절한 규율은 필요하지만 훈계의 대부분은 생각처럼 좋은 방향으로 이끌지 못합니다.

돌아보면 기다림과 미소가 더 좋은 해결 방법이었을 때가 많습니다.


부부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은밀한 모든 부분을 다 안다고 해서 무례해도 괜찮은 관계는 없습니다.

부부관계는 사랑할수록 더욱 특별한 모습으로 진화합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존중하며 배려하는 느슨한 긴장감이 이어집니다.

건강한 텐션이 항상 서로를 신경 쓰게 만듭니다.

처음에는 불편할 수 있지만 습관이 들면 배려가 일상이 됩니다.

일상이 습관이 되면 나중에는 하지 않으면 불편해집니다.

그렇게 천천히 상대가 나로 인해 행복해하는 모습으로 나의 행복을 채웁니다.


진정한 사랑은 타인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배려와 친절이 나를 더욱 행복하게 해 준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체득합니다.

가정에서 친절을 배우고 습관화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행동합니다.

매장 직원의 실수에, 숙달되지 않은 직원의 늦은 대응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습니다.

내 동생 같고, 내 아들 딸 같은 마음으로 미소를 건넵니다. 

뜻밖의 미소를 선물로 받은 이들이 집으로 가서 가족과 환하게 웃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례했던 사람이 소중한 사람과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만나 깨달은 생각입니다.

여전히 불쑥 튀어나오는 불안한 감정과 말투로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너그러이 이해해 주는 참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나는 아직 무례하지 않은 삶의 방식을 배우고 있는 친절 초보자입니다.


무례하지 않은 세상을 위해 오늘 하루도 환한 미소로 마무리합니다.

아직도 아빠의 친절은 불편한가 봅니다.

'알았어요'라며 핸드폰을 충전기에 꽂아두고 씻으러 들어갑니다.

아무 말 없이 바라보며 환하게 웃어줬을 뿐인데 말입니다.


내일은 웃는 연습 좀 해야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버지의 이름으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