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완 Apr 23. 2023

놀이터에서


친구들과의 만남이 있는 날,

시간이 남아 약속장소 근처에 있는 놀이터에 잠시 머물렀습니다.


아이들이 모두 커 버린 지금은 놀이터 벤치가 어색합니다.

나에게 또다시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놀 수 있는 시간이 찾아올 수 있을지 궁금하던 찰나

젊은 아빠 한 분이 아들을 안고 놀이터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아빠는 아이를 놀이터 한가운데 내려놓았습니다.

내려두기 무섭게 아이는 달리기 시작합니다.

제법 잘 달리는 걸 보니 두 돌은 훌쩍 넘은 아이 같습니다.

아빠는 정신없이 달리다 갑자기 멈춰 서서 놀이 기구에 올라타는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아이는 아빠라는 존재를 잊어버린 듯 여기저기 놀이터 곳곳에 흔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아빠가 참 힘들겠구나' 하는 안타까운 탄식이 저절로 터져 나옵니다.

그러나 나 역시 그러한 때가 있었음을 떠올리다 보니 탄식은 씁쓸한 미소로 변했습니다.


놀이터에 적응한 아이는 조금 지쳤는지 행동반경이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이 아빠에게 조금 여유가 생겼나 봅니다.

스마트 폰을 확인하며 아이에게서 시선이 조금씩 멀어져 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오지랖인지 몰라도 아이에게서 시선이 멀어지는 아빠에게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저러다 아이 다치면 어쩌려고 그러나'

자기는 졸업했다고 이제 막 신입생으로 입학한 아이 아빠에게 마음으로 훈수를 두고 있네요.


그 순간 아이의 시선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이는 아빠가 다른 곳을 바라볼 때마다 아빠를 물끄러미 쳐다보았습니다.

그러다 아빠가 자신을 바라보는 순간 엷은 미소와 함께 하던 놀이를 계속합니다.

아빠가 다시 다른 곳을 응시하면 아이는 멈춰 서서 아빠를 바라봅니다.

아빠와 눈이 마주치고 나면 또다시 자신의 놀이를 계속합니다.


아빠와 아들, 두 사람의 반응이 너무 재밌었습니다.

저렇게 서로의 시선을 갈망하며 마주칠 때마다 미소를 보낼 수 있는 두 사람,

아마도 두 사람은 눈치채지 못하겠지만

저에게 두 사람은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변하고 있는 둘째와 군대 간 큰 아들의 놀이터 시절



생각해 보면 나에게도 그런 시간이 있었습니다.

4년 주기로 세 아이를 낳다 보니 놀이터 경력만 10년이 넘습니다.

막내딸이 중학생이 된 지금은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 기억조차 가물가물하지만

한 때는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외부 공간이었습니다.


그 시절 아이들은 아빠를 어떤 시선으로 보았을까요?

신뢰와 사랑이 가득했던 시간이었을지 궁금합니다.

이제 아이들은 아빠의 물음에 쉽게 대답하지 않습니다.

아빠의 시선을 간구하지도 않습니다.

각자의 삶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지금, 부모는 응원과 기도 외에는 달리 해 줄 일도 없습니다.


지겹다 생각했던 10년이 넘는 육아의 시간,

돌아보니 지금은 내 삶의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나는 세 아이의 기다림이었고, 대장이었고, 슈퍼맨이었습니다.



전쟁 같은 사랑, 넌 위험하니까~~~



가끔 그 시절의 추억을 떠올릴 때면 아내는 다시 돌아가기 싫다고

손사래를 치지만 표정 뒤에 숨겨진 미소에는 그리움이 잔뜩 담겨 있습니다.

그 시절에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감정, 특별한 사랑,

고단함 속에서도 켜켜이 쌓아 놓은 행복의 세포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분열하며 살아가는 힘이 되어줍니다.


세 아이들을 통해 오만하고 이기적인 아빠는 사랑을 배웠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제야 조금 알아챈 정도입니다.

여전히 체득하고 몸에 밴 습관처럼 사랑이 불쑥불쑥 튀어나오진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과 울고 웃던 시절이 내 인생 최고의 시절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을 그리워만 할 순 없겠지요?

내게 주어진 지금 이 순간에 매일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겠습니다.






놀이터를 졸업한 아이들이지만 여전히 놀이터 같은 아빠가 되어주고 싶습니다.

아직 사춘기 끝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둘째에게는 기다림으로

이제 사춘기를 시작하고 있는 막내딸에게는 따뜻함으로 다가가려 합니다.

그 시절만큼 재밌는 아빠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쏟아지는 세상 모든 재미에 아빠의 즐거움은 가려져 버렸지만

힘들 때 기대어 앉을 수 있는 놀이터 벤치라도 되어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이제 낡고 오래된 놀이터가 되어갑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나는 변함없이 세 아이의 아빠니까요.

나는 언제나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세월을 더듬어 가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무례하지 않은 세상을 위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