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완 Aug 25. 2023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하여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부모의 영향력에서 멀어져 갑니다.

당연한 일이고 기쁜 일입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진다는 건 부모에게 주어졌던 수고가 덜어진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모든 아이가 부모의 생각대로 성장하지는 않습니다.

부모의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발견하면 불편한 마음이 생깁니다.

뜻밖의 변화가 반갑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는 이미 다 자란 아이의 변화를 바꿀 수 없습니다.

새로운 변화를 기다리든지 아니면 아이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변화는 성장의 다른 말입니다.

애벌레가 번데기가 되고 나비가 되는 변화는 성장의 하나입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부모가 기대한 대로 바라는 마음은 욕심일지도 모릅니다.

우리 아이들은 늘 그렇듯이 뜻밖의, 다양한 모습으로 변태 합니다.


초등학생 때까지는 아이들의 모든 성장이 기대되었습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바운더리 안에 존재하면서 해마다 성장하는 몸과 두뇌에 감탄하게 됩니다.

중학생 즘 되면 하나 둘, 부모의 바운더리에서 벗어나는 아이들이 생깁니다.

우리 아이가 특별하지 않았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차라리 이때에 받아들이면 마음이 편할 수도 있습니다.


고등학생이 된 아이가 혹은 성인이 되어서 갑자기 부모의 기대와 

다른 방향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만나면 충격을 받는 부모도 있습니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그때의 절망에는 희망이 조금 섞여 있었음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포기하지 않은 기대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겠죠.

그러나 이제 아이의 세계에서 부모는 매우 작은 존재가 되어 갑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평범한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입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에 순종하고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서? 부모의 교육 목표가 뚜렷해서? 태생부터 그런 성격이어서? 

원인을 하나만 꼭 집을 수 없지만 이렇게 성장하는 아이는 부모에게도 축복 같은 존재입니다.


그런 친구의 자녀들을 보고 있으면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좌충우돌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실패도 하고 환호도 하는 

평범한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에 더 주목하고 싶습니다.

욕심을 내려놓고 기다리다 보면 평범한 가족의 세계도 남들 못지않게 

재밌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반드시 원인과 결과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사랑이라는 입력(input)이 모두에게 동일하게 제공된다 하더라도,

저마다 특별한 개성과 이성이 다르기 때문에 출력(output) 또한 다르게 구현됩니다.


이를 특별히 어려움이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다양성은 세상을 풍성하게 만들고 더 넓은 세상을 꿈꾸게 만듭니다.

그 세상을 이해하며 소통하는 사람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타인의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 일어나는 일을 우리는 '갈등'이라고 말합니다.

당연히 갈등은 가까운 사람에게서 더 많이 체험합니다.

자녀, 혹은 부모와의 갈등은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주제입니다.

가장 흥미 있는 분야는 물론 부부간의 갈등이겠지요?


다행히 우리 부부는 갈등이 적은 편에 속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여보?"


며칠 전, 갈등이 적은 이유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를 해 본 적이 있었는데

우리 부부는 서로의 인 풋과 아웃 풋에 대한 예측을 쉽게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심리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적응 유연성이 좋은 부부라고 할 수 있겠네요.

어떤 사건이 생기면 나는 아내가, 아내는 내가 어떤 반응과 대처를 할지 예측 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군에 간 아들도 그렇고, 이제 수험생이 되어야 하는 둘째도 그렇고

사춘기 한가운데 있는 막내딸도 그렇습니다.

아이들이 하나 같이 인풋과 다른 아웃풋으로 부모를 괴롭힙니다.

힘들게 적응해 두면 반년도 안 돼서 새로운 모습으로 제 앞에 나타납니다.

그 과정이 힘들어지면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힘에 부치게 됩니다.

때론 아이들보다 제가 더 대화를 피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엄마라는 존재는 아빠와 다릅니다.

가정에 따라 아빠가 그럴 수도 있겠지만 우리 가정에서의 엄마는 아이들의 모든 상황에 적응합니다.

세 아이의 투정과 놀림까지 웃으면서 듣고 있습니다.


하루는 딱해 보여서 조용히 물어보았습니다. 저 녀석들이 당신을 우습게 여기는 건 아닌지......

그러자 아내는 나에게만 들릴 수 있는 작은 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알아. 나도. 그런데 내가 안 들어주면 누가 들어주겠어?"


아내의 고백에 조금 충격을 받았나 봅니다. 

다시 한번 되묻자 아내는 나보다 30년은 더 산 어르신처럼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이들도 다 컸으니 좋은 부모가 되는 건 조금씩 내려놓아야 하지 않을까? 

나는 이제 아이들에게 좋은 어른의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좋은 어른,


그렇습니다.

이제 나는 아이들에게 지시하고, 명령하고, 훈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한 명의 같은 인간으로서 돕고, 나누고, 질서를 지키며, 바르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아이들의 영혼에 조용히 스며드든 어른이 되어야 함을 아내에게 배우고 있습니다.

자란다는 것은 아이들이 부모의 곁을 떠날 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함께 지내는 동안 나를 좋은 부모에서 좋은 어른으로 성장시켜 주는 훌륭한 친구라 생각하며 살겠습니다.


설령 아이가 끝까지 부모의 마음을 몰라 준다 하더라도 괜찮습니다.

어차피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의 감동은 부모만이 알고 있는 비밀스러운 행복의 순간이었습니다.

사랑은 원래 불공평한 것이라 생각하면 달리 불편할 것도 없습니다.

나도 지금까지 누군가에게 받아 온 사랑으로 삶의 힘을 얻었으니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놀이터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