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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완 Nov 08. 2023

아내는 히어로일지 모릅니다


아내는 남들이 모르는 숨겨 둔 특별한 능력이 몇 가지 있습니다.

공개할까 말까 고민하다 쥐도 새도 모르게 제거될지도 모르기에 이렇게 글로 남겨 봅니다.


아내는 잠들기 위해 몸을 눕히는 시간 보다 잠드는 시간이 더 짧습니다.

아무래도 몸 어딘가에 잠드는 스위치가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그렇게 쉽게 잠들 수는 없습니다.

그것도 매일, 하루도 빼먹지 않고 말입니다.


아내는 오후가 되면 오늘 저녁에 먹을 식단을 고르라는 문자를 보냅니다.

대충 세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곤 하는데 의견이 일치하면 다행이지만

내 선택이 다를 경우에는 이미 다른 요리 재료를 구매해 두었다며 그건 내일 먹자고 합니다.

물론 내일이 돼도 또 선택을 요구합니다.

아마도 어디엔가 숨겨둔 매뉴얼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아직 발견하지는 못했습니다만 요리는 남편의 몫입니다.


아내는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막내딸의 투정을 웃으며 받아 줍니다.

"응, 그랬어?", "그랬구나.", "그래서 어떡하니?" 등등 여러 추임새가 준비되어 있지만

오래 듣다 보면 거기서 거기인 사실을 눈치챕니다.

듣기 싫은 막내딸의 징징 거리는 소리가 멀리 떨어진 아빠의 고막까지

고통스럽게 만드는데 아내는 아무렇지 않게 듣고 있습니다.

아마도 아내의 귀에는 음소거 장치가 설치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거의 매일, 저녁을 먹고 나면 아내와 집 근처 공원을 한 바퀴 돕니다.

아내가 "나가자."라고 신호를 주면 저는 발랄한 강아지 마냥

옷을 대충 주워 입고 집 앞 골목에 서서 걸음을 준비합니다.

분명히 아내는 제가 문 밖을 나설 때 옷을 다 입고 거울 앞에서 단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수 분이 지나도 나오질 않습니다.

한참 뒤에 털레털레 걸어 나오는 아내에게 살포시 짜증을 냈습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려?"

"아니 난 바로 나온 건데?"

아내는 시간과 공간의 방을 거쳐 나온 것이 분명합니다.

아니면 남편의 시간을 느리게 만드는 능력이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시간과 공간을 조정하고 있는 아내


같이 나란히 버스 뒷 자석에 앉게 되면 언제나 그랬든 아내는 잠에 빠져 듭니다.

나야 뭐 창 밖의 풍경을 즐기면 되니 조용히 여행하는 기분으로 버스를 즐깁니다.

분명 고개를 끄덕이며 잠이 든 것 같았는데 갑자기 눈을 부릅뜨고 소리를 지릅니다.

"아차, 둘째가 참고서 주문해 달라고 그랬는데."

"지금 주문하면 되잖아. 인터넷으로."

"괜찮아. 오늘 내로만 주문하면 된다고 했어." 그리고는 다시 눈을 감습니다.

아내는 수면 중 스케줄 확인하는 능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자다 깨서 혼자 결론 낼 이야기를 왜 꺼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입니다.


아내는 쥐를 싫어합니다.

아마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 중에서 가장 혐오하는 존재일 겁니다.

아내와 팔짱을 끼고 걷다 통통한 쥐 한 마리가 우리 부부 앞을 가로질러갔습니다.

아내는 외마디 비명을 외치면서 팔짱 낀 손으로 내 팔뚝을 꼭 쥐었습니다.

아내보다 더 큰 비명이 터져 나왔습니다.

팔뚝에 시퍼런 멍이 들었고 일주일 정도 그 흔적이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사라지지 않는 팔뚝의 멍을 문지르며 이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저 여자, 쌀 한 가마니는 거뜬히 들 수 있지 않을까?'


삼 년 정도 입지 않은 옷들을 발견했습니다.

앞으로도 입지 않을 것 같아 옷 수거함에 넣으려 차곡차곡 정리했습니다.

아내는 버리려는 옷들을 살펴보더니 이거랑 이거는 다시 넣어두라고 합니다.

안 입는다고 말해도 일단 넣어 두라고 하네요.

곧 입을 일이 있을 거라며 잘 보이는 곳에 두라고 합니다.

며 칠 뒤 마실을 나가는데 손에 잡힌 그 옷을 대충 입고 나갔습니다.

아내는 환한 미소와 함께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남겼습니다.

"봐, 내가 곧 입게 될 거라고 했지? ㅋㅋㅋ"

노스트라다무스가 우리 집에 살고 있습니다.






3년 전 느닷없이 찾아온 공황장애로 매일 밤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당신의 이름으로 글을 써 보라며 브런치 작가를 추천했습니다.

그러고는 3년 동안 브런치에 올라오는 글에 대해 아무런 피드백을 하지 않습니다.

도대체 속을 모르겠네요.


그래서 아내의 비밀을 공개합니다.

앞으로도 브런치에 계속 글을 올리면 아내는 진짜 안보는 거겠지요?

안보는 척 몰래 들어와 본다면 저는 제거되어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든가 말든가, 아내는 슈퍼 히어로가 분명합니다.

덕분에 조금씩, 해마다 나아지는 나를 찾아가고 있으니까요.


'이 정도 알고 있으니 이제 정체를 밝혀라. 아줌마! 아니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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