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둘째가 엄마에게 살짝 짜증을 냅니다.
마음에 담을 만큼 리액션이 큰 것도 아니었지만
자주 그러지 않던 아들에게 내심 섭섭한 마음이 들었나 봅니다.
아들이 자리를 비운 뒤 괜히 남편에게 아들의 짜증을 전합니다.
혼내달라고 이르는 것도 아니고 싫으면 실다 말할 것이지
나에게 그 불편한 감정을 전달하는 이유는 뭘까요?
생각해 보면 딱 그 만 때 가장 짜증이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저도 그 시절에는 어머니와 여러 번 실랑이를 벌인 기억이 납니다.
조금 더 자라서는 아버지에게도 말대꾸하다 응징을 당하기도 했지요.
지금보다 가족 관계가 엄격했던 시절이기에 꼭 나만의 잘못은 아니라 생각하지만
왜 그 시절에는 그냥 참고 넘어가지 못했을까 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여러 풍파를 이기시고 노년을 그저 살아 내고 계시는 부모님이 지금은 애처롭게 느껴지곤 합니다.
그러다 보니 간혹 대화가 통하지 않거나 이해를 잘 못하셔서
살며시 짜증이 밀려와도 그 마음을 표현하지 않습니다.
담담히 받아들이고 부모님 생각을 수긍하려 노력합니다.
어찌 보면 삶의 경험이 만들어준 여유일지도 모릅니다.
반드시 싸워야 하는 일이 아니라면 갈등을 유발하지 않는 편이 더 났다는 일상의 경험입니다.
일상의 친절은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은 더욱 그래야겠지만 서비스를 받는 위치에 있다 하더라도
친절하게 문의하고 응대를 받는 편이 내게 유익합니다.
그런데 유독 가족에게 일상의 친절이 어려운 사람이 있습니다.
솔직함과 편안함이라는 얼굴 뒤로 불친절이 흘러나와 관계를 무너뜨립니다.
문제는 많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사람에게 불편한 감정을 지속적으로
표현하다 보면 오해는 확신으로 변하고 돌이킬 수 없는 관계로 이어집니다.
부부는 이혼이라는 법률적인 형식이 있지만 다른 가족, 부모 자식이나 형제자매는
딱히 그런 절차가 없어 연락 없이 오래 살다 보면 단절되었음을 느끼게 됩니다.
반 백 살을 살다 보니 화목한 가정만큼이나 단절된 가족도 제법 많이 만납니다.
화목하진 않지만 가족이라는 의무감으로 명절만 챙기는 가족도 있고
자주 만나진 않아도 톡으로 전화로 틈틈이 연락을 주고받는 친구도 있습니다.
우리 가족은 화목과 단절 사이의 어디쯤에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적당히 화목한 것 같으면서도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관계 사이에서 느껴집니다.
자칫 한 순간이면 서로를 단절할지도 모르는 긴장감일지도 모릅니다.
가족은 꾸밈없는 모습을 볼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 타인일 뿐입니다.
그래서 친절은 가족에게 더욱 필요합니다.
좋은 모습뿐 아니라 싫은 모습까지 서로 공유해야 하기에 이해의 노력이 더 필요합니다.
스쳐 지나가는 행인의 불만은 무시하고 그만입니다.
하지만 가족은 회피할 수 없습니다.
회피는 단절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싫든 좋든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은 관계는 늘 정리된 감정으로 대화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오늘도 짜증이 미움으로 번지지 않도록 나름의 기술을 씁니다.
아내에게는 "엄마한테 그러면 안 되지!"라며 편을 들어줍니다.
아들에게는 편안한 미소로 인사합니다.
"오늘 많이 힘들었지?"
아직은 몸에 밴 친절이 아닌지라 조금은 어색합니다.
친절이 일상이 되도록 더 노력해야겠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공감과 배려를 담은 친절이 어렵게 느껴집니다.
그런 분들을 만나면 깊은 존경이 우러나옵니다.
특히 가족에게 더욱 친절한 분들을 만나면 그렇습니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참 멋진 분들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