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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완 Jan 07. 2023

자연스러운 범죄 (Smooth criminal)


20세기 최고의 팝 스타, 마이클 잭슨의 히트곡 중 가장 인상 깊은 노래를 

꼽으라고 한다면 저는 주저 없이 'Smooth criminal'을 선택하겠습니다.


마이클 잭슨의 최 전성기에 발표되었던 노래로 비트, 연주, 춤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곡입니다.

마이클의 다른 히트곡들과는 달리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전 세계에서 폭넓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완성도 높은 안무와 리드미컬한 사운드 때문에

라이브 투어 때마다 가장 인상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준 곡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_D3VFfhvs4

마이클 잭슨의 곡 smooth criminal 뮤직 비디오, 7분쯤에 나오는 무중력 퍼포먼스가 유명합니다.



흥겨운 리듬 속에 담긴 가사 내용은 제법 무겁습니다.

누군가 애니의 아파트에 침입했고 애니를 공격했습니다.

피를 흘린 애니는 침실로 도망갔지만 최후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단순하고 잔인한 사건 사이의 후렴은 한 문장이 계속 반복됩니다.


'애니 괜찮아요?' 

'Annie, are you OK?'


단순하게 반복되는 쉽고 간단한 가사는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로 만들었습니다.

한 두 번 들으면 누구나 후렴 부분을 쉽게 따라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애니의 대답은 들을 수 없습니다.






마이클 잭슨은 가벼운 사랑 이야기뿐 아니라 반전, 평화, 화합, 

비폭력에 대한 노래까지 다양한 메시지를 던진 뮤지션입니다.

이 노래 역시 비폭력에 대한 마이클 잭슨의 짧은 서사시입니다.


마이클 잭슨은 어린 시절, 잭슨 파이브로 활동할 당시 아버지로부터 심각한 가정 폭력을 받았습니다.

물리적 폭행뿐 아니라 성적인 수치심을 주는 등

그의 형제들 모두 성인이 될 때까지 아버지의 괴롭힘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의 노래에 비폭력에 대한 서사가 담길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괴롭혀 온 폭력의 역사를 끊어 내고 싶었던

은밀한 고백을 자신이 만든 노래 곳곳에 숨겨 놓았습니다.


폭발적인 창작 능력에 비해 마이클은 매우 온순하고 수줍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의 모습은 황색 언론에게 좋은 먹잇감이 되었습니다.

그가 보여주는 착한 모습은 모두 가면일 뿐, 소아 성애자라고 공격하는

무자비하면서 자연스러운 말의 공격에 마이클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약물에 의지하지 않고는 하루도 잠들 수 없었던 그는 주치의의 약물 과다 주사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51세, 짧다면 짧지만 참 많은 것들을 남겼던 삶이었습니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고백하는 슈퍼스타가 한 명 더 떠오릅니다.

영국 밴드 오아시스의 리더 노엘 겔러거는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기절할 정도로 맞은 적이 있었습니다.

이른 시기에 남편과 결별한 어머니 덕 분인지 모르겠지만

그는 화난 채로 돌아보지 말기(Don't look back in anger)를 바라는

아름답고 서정적인 노래를 발표해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gYG96D2VWY

오아시스의 명곡 Don't look back in anger


노엘 겔러거는 마이클 잭슨과는 달리 거친 입담으로 대중 앞에 섰습니다.

인터뷰뿐 아니라 공연 중에도 거침없는 욕설과 솔직한 표현으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비교적 그의 언행에 대해 언론과 팬들이 관대하다는 사실입니다.

마이클 잭슨이 겸손한 언행과 활발한 자선 활동으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려고 했다면

노엘 겔러거는 거친 입담 속에 은근한 위로를 전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나쁜 남자 스타일이라고 할까요? 아무튼 노엘은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아픔을 풀어내는 방식은 다르지만 두 슈퍼스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위로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러운 범죄가 없는 세상을 그렸습니다.

마이클처럼 겸손하고 선한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그리운 세상이지만

노엘처럼 당당하게 아픔을 풀어헤치면서 할 말은 하는 사람들도 참 멋진 것 같습니다.






Smooth criminal


직역하자면 능숙한 범죄라고 할 수 있지만 저는 자연스러운 범죄라는 제목을 붙이고 싶습니다.

죄인지 아닌지, 가해자뿐 아니라 피해자도 인지하기 어려운 범죄에 대한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자연스러운 범죄는 특별한 범죄 구역을 설정하지 않습니다.

직장, 학교, 이웃, 그리고 가정이라는 일상에서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마이클 잭슨이 노래한 애니도 자신만의 은밀한 침실에서 

최후를 맞이하지만 범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은밀하고 자연스러운 범죄는 피해자는 남지만 가해자를 찾아내기 어렵습니다.

노래 후반 부, 마이클이 울부짖듯 외친 가사 한 마디처럼 말입니다.


"I'don't know"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내 삶을 무겁게 만들고 불안함을 가중시키는 존재가 누구인지 말입니다.

하지만 이 글을 쓰는 동안 나 역시 자연스러운 범죄의 용의자 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나와 가까운 사람들에게, 그리고 이 글을 읽고 마음을 나누는 분들에게

이기적인 마음으로 거짓된 가면을 쓴 채 내 생각만 옳다고 강요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그리고 조금씩 내 안에 감추어 두었던 어두운 마음을 열어 봅니다.

자연스러운 범죄는 상대보다 우위에 있고 싶거나 힘을 과시하고 싶을 때 습관처럼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당하는 사람은 나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조금씩 밀어내는 미련한 행동이니까요.


자연스럽게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이게 생각보다 참 어려운 일입니다.

진심을 다하지 않으면 그런 모습을 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끔 사랑을 '노력'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자연스러운 습관이 될 때까지 이해하고, 용납하고, 받아주는 노력,

애니를 위험에서 살려내는 긴 호흡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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