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완 May 27. 2023

공생과 기생 사이


생물학에서 다른 두 개체가 서로 도움을 주는 관계를 공생이라고 합니다.

대표적으로 흰동가리와 말미잘이 있습니다.

말미잘의 촉수에는 독을 뿜는 세포가 있어 자신을 보호하는데

흰동가리는 말미잘의 독에 면역력이 있어 말미잘 사이를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습니다.

흰동가리의 화려한 색은 다른 생물을 유인해 말미잘의 먹이가 되곤 합니다.

말미잘이 먹고 남은 먹이를 흰동가리가 먹기도 합니다.

비슷한 의미로 말미잘은 흰동가리의 피난처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게 흰동가리와 말미잘은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살아갑니다.


공생이라고 반드시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만 있지는 않습니다.

한쪽에만 도움이 되거나 한쪽에만 피해를 주는 관계도 공생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한쪽에 피해를 주면서 자신에게만 이익인 관계는 공생이라 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경우 생물학에서는 기생이라는 말을 씁니다.


영화의 제목으로도 유명한 기생충은 다른 생물의 몸에 붙어 살아갑니다.

기생충은 숙주의 영양분을 흡수해 자신의 생명을 이어갑니다.

숙주가 죽으면 빠져 나와 다른 숙주를 찾아 나섭니다.

잔인한 생물이지만 생물학에서는 고도로 발전된 개체라고도 평합니다.

별다른 노력 없이 에너지를 흡수하는 생명체는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다양한 관계가 존재합니다.

서로 도움이 되는 관계가 있는가 하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관계도 있습니다.

기생충처럼 다른 사람의 이익을 빼앗아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관계도 존재합니다.


복잡해 보이지만 인간의 모든 관계는 공생과 기생 사이의 

어디쯤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만 사람은 그 사이를 명확히 규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공생이라 하지만 그 사이에는 이기적인 마음이 숨겨져 있습니다.

기생이라 하지만 그 사이에는 무한한 사랑이 숨겨져 있습니다.

자신의 이해관계를 알고 있으면서 무던하게 살아갑니다.





타인의 눈에는 그 차이가 들어옵니다.

그래서 그렇게 살지 말라고 충고도 하고 왜 그러는지 질문을 받기도 하지요.

하지만 사람은 모두 자신만의 특별한 관계를 설정하고 살아갑니다.

남들은 이해하지 못해도 내 감정은 그럴 수밖에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미워하는 사이도 있겠지만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관계는 사랑으로 얽혀 있을 때가 더 많습니다.

미움은 나름의 이유를 찾을 수 있지만 사랑은 특별한 이유를 찾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내 영양분을 다 빼앗아 가는 것을 알고도 내어주는 사람,

주변에서 그만 내어 주라고 일러주어도 나는 그럴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

사랑은 이 모두를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마법 같은 단어입니다.


사랑을 하지 않은 사람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타인의 사랑은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내가 하는 사랑은 자연스럽게 발현됩니다.






오늘도 공생과 기생 사이의 어디쯤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나는 그 사이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불편한 마음도 시간이 흐르면 당연하게 여겨질까요?

신발 속에 들어간 작은 돌멩이 마냥 걸리적거리는 마음은

여전히 미숙한 관계를 풀지 못하는 한 남자의 고백을 품고 있습니다.

완전한 사랑이 참 어렵다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인생에 주어진 숙제가 참 많습니다.

여전히 세상에 널브러진 수많은 고통과 갈등이 이해되지 않습니다만

나는 여전히 어떻게 사랑하고 어떻게 사랑받아야 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애매한 인생을 사는 나에게 스스로 질문을 던져 봅니다.

'왜 나는 함께여야 하는가?'


때론 질문 만으로도 살아가는 힘이 될 때가 있습니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 아닐까 싶네요.

더불어 행복하시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역전 만루홈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