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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는 멈추었는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한나 아렌트

by 류완


이 책은 아들이 재수생이 되고 읽은 책은 아닙니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를 보고 유태인 학살에 대한 호기심에 몇 년 전에 구매한 책으로 기억합니다.

내용이 길어 잘 읽었나 싶었는데 지난봄 간간히 이 책이 아들 방구석에서 발견되는 걸 보면

아마도 다 읽지는 못했고 여전히 종종 일부분을 읽고 있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이 책을 대학원 시절에 읽었습니다.

서양사를 전공하던 시절, 이 책으로 한 주 수업을 진행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당시 기억으로는 아이히만 보다 한나 아렌트의 역사를 보는 시선에 집중했던 것 같습니다.

여성 연구가가 내건 '악의 평범성'에 대한 개념은 젊은 학생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이제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의 연구가 특별하게 취급받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그럼에도 그녀가 역사와 홀로코스트를 통해 인간의 심리를 꿰뚫는 시선은 여전히 날카롭게 다가옵니다.

악의 평범성은 이제 숨기지 않고 그 모습을 드러내고도 쉽게 처벌하지 못하는 시대가 되어가기 때문입니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유대인 학살의 책임자로서 전범 재판을 받게 됩니다.

그의 직책이 다른 전범들보다 높았던 건 아니었지만

그가 내린 결정은 매우 위험한, 그리고 역사적으로 가장 참혹한 홀로코스트를 이끌었습니다.

아르헨티나에서 숨어 지내다 이스라엘 첩보국 모사드에 체포되어 예루살렘으로 이송되었고

한나 아렌트는 그 역사적인 재판을 참관하면서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내린 책의 부제와 같은 '악의 평범성'이라는

아이히만에 대한 평가는 다양한 의견과 논란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책의 후기에 저자는 아이히만의 범죄 사실에는 크게 이견이 없었지만

아이히만의 범죄는 유대인만이 아닌 인류에 대한 범죄로

이스라엘 법정이 아닌 국제 범죄 재판을 받아야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주장으로 유대인들의 비판을 받게 되었고 후기를 통해 보자면

자신의 글이 논란을 일으킬 것을 어느 정도 예견하고 있습니다.


이후 한나 아렌트를 반박하는 논문이나 저서들이 출간되었고 아이히만이 그저 사형을 면하고자

연기를 한 것과 자신의 다른 여죄를 숨겼던 부분도 드러나면서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제시한 '악의 평범성'은 세계 대전이 멈춘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새로운 얼굴로 나타나면서

현재의, 또는 미래의 새로운 전쟁과 국가 폭력에 어떻게 맞서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만듭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사이에는 자국의 경제적 군사적 이익에 앞서

전쟁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여론전과 외교전도 만만치 않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현재 예루살렘의 현실은 더욱 처참합니다.

과거 홀로코스트의 대상이었던 이스라엘은 시오니즘과 반 테러라는 명분으로

팔레스타인 거주 지역을 초토화시키면서 주변 국과 전쟁을 불사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독재 국가들은 권력을 사유화하고 있으며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나라는

무기를 지닌 군부가 무기를 들지 못하는 시민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악의 평범성이 드러나는 현대 사회의 모습을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을 것 같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습니다만 이 글의 주제는 내 생각만 담는 글이 아닙니다.

재수생 아들이 어떤 감정으로 이 책을 읽었을지를 고민하며 다시 읽고 난 고백입니다.


이제 생애 첫 투표를 마친 아들은 권력이 어떤 것이며 권력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을지 조금씩 경험과 학습을 통해 배워가고 있습니다.

이 책은 아마도 그런 상상력과 다양한 사회 갈등에 대한 자기만의

평가 기준을 세우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기대해봅니다.

그러나 책을 덮고 난 뒤에는 전쟁의 참혹함과는 전혀 다른 현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총과 칼이 아니라 퇴사, 실패, 불합격, 따돌림이 더욱 무섭기 때문입니다.

아직은 우리 청춘들이 눈 앞에 놓인 경쟁에서 평화와 공존을 향해 시선을 돌리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분쟁과 폭력은 느닷없이 일어납니다.

한반도는 늘 분쟁의 중심이었으며 역사상 지금처럼 평온한 시기는 많지 않았습니다.

이 평화를 지켜내기 위해 보이지는 않아도 많은 수고와 노력이 있습니다.

힘의 균형을 맞추는 노력도 대화와 타협을 이어가려는 노력도 모두 평화의 조건입니다.

평화가 지켜지는 곳에는 '선의 평범성'이 작동하고 있음을 믿습니다.

방식은 다양하겠지만 선의 평범성은 전쟁과 학살은 결코 안된다는 마음의 결집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분쟁은 결말을 맞이할 것 같아도 형태만 변할 뿐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 또한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습니다.

악의 평범성은 얼굴을 드러냈다가 다시 우리 사이 어딘가로 자취를 감추어 버립니다.

악은 가까이 있습니다. 아니 나 자신일지도 모릅니다.

평화보다 이기고 싶은 마음이 강해질 때 내 안의 악은 언제고 다시 드러나게 될지 모릅니다.


한나 아렌트의 주장이 비판을 받을 수는 있을지라도 우리는 그녀가 주장한

인류에 대한 범죄가 어디까지 영향을 끼치는지 주의 깊게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승자와 패자로 나누는 정의가 아닌 인류애와 폭력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내려지고

힘을 모아 갈등을 해결해 나가는 '선의 평범성'의 시대를 열어갈 해법을 찾아가기 위해서 말입니다.

다시는 이 땅에 홀로코스트는 없어야하지만 이따금 들리는 섬짓한 이야기는 확신을 주저하게 만듭니다.


"저런 놈들은 다 없어져야 해."


여전히 공존이 쉽지 않은 세상입니다.

분노는 차갑게 식히고 사람은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평화가 누군가의 과거 때문이라면 미래의 평화는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입니다.

우리가, 그리고 우리 아들 딸들이 그 역할을 아름답게 이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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