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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인생철학은?

가장 젊은 날의 철학 - 이충녕

by 류완



나이를 먹을수록 철학이 재밌어집니다.

다시 대학을 갈 수 있다면 철학과를 가고 싶습니다.

어렵지만 나를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생각을 연구한다는 건 신비롭고 즐겁습니다.

학문으로서의 철학은 그렇습니다.

한편으론 배고픈 학문이라고도 하지요.

사유는 직접적인 생산 활동이 아니기에 다른 노동과 결합하지 않으면 먹고살 수가 없습니다.

강연, 집필, 유튜브, 혹은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행위 같은 것입니다.

이마저도 특출 난 재능으로 관심을 얻는 소수 외에는 밥 벌어먹기 어려운 학문입니다.


이 책의 저자도 철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철학 유튜버로 이름이 알려졌다가 구독자가 늘고 책을 냈습니다.

목소리가 좋고 잘 생긴 데다 어려운 철학을 나름 쉽게? 설명하는 콘텐츠로 많은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철학이 인기 없는 학문이라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지적 욕망을 채우고 싶은

가장 확실한 분야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것도 2천 년 넘게 말이지요.


요즘 철학은 유행을 타고 흐른다고 말합니다.

'마흔에 읽는', '오십에 읽는'이라는 제목으로 철학을 유도하지만

사실 책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세대이기에 소비지향적 제목이라 보여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철학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우리 모두의 고민이자 세대별로 변하기 쉬운 가치이기도 합니다.

칸트, 데카르트, 헤겔처럼 철학의 고전 같은 인물들의 인기가 살짝 시들해지자 요즘에는

쇼펜하우어, 괴테, 비트겐슈타인 같은 새로운 시선의 철학자들이 서점을 채우고 있습니다.


게다가 요즘 철학서들은 철학자들의 주장과 논거를 있는 그대로 서술하기보다

역자의 새로운 시선으로 철학을 우리 시대에 맞춰 재해석한 책들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자와 철학가의 이야기에 괴리가 생기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쇼펜하우어만 봐도 그의 철학은 초기와 후기에 따라 주장하는 바가 다르기에

하나의 시선으로 그의 철학을 정의 내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몇 문장만으로 그의 생각 전체를 정의 내리고 철학을 소비합니다.

물론 다른 고전 철학자들보다 주장하는 바가 분명하고 이해하기 쉬운 문장으로

현대 철학에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그의 사유가 다양한 방식으로 분해되는 과정은 흥미롭습니다.


이충녕 작가의 '가장 젊은 날의 철학'역시 최근의 흐름과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철학 전공자로서 다양한 철학의 흐름을 짚어가면서 우리 시대의 고민들을

풀어내는 방식은 최근 발행되는 철학서들의 방식과 유사한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괴테나 쇼펜하우어 같은 특정인물이나 특정한 시대의 철학 만으로 이야기를

풀어내지 않고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키르케고르, 파스칼부터 야스퍼스까지

시대를 넘나드는 다채로운 분석과 풀이로 책을 넘기는 재미를 더합니다.

스스로 실존주의 철학자라 밝히며 여전히 우리 사회의 문제점들로 남아 있는

존재, 가치, 공존과 사랑 등의 다양한 문제들을 철학적으로 접근하는 방법도 흥미로웠습니다.


다만 주제가 광범위하고 등장하는 철학자, 소설가, 영화 이야기까지

그 이야기들을 따라가기 위해 알아야 하는 주변 지식이 많아야 하는 점이 살짝 힘겹습니다.

대개 역사나 철학을 전공한 사람들은 학자들의 시대를 어느 정도 추론할 수 있지만

비 전공자들은 이들이 정확히 어느 시대에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지식의 저주'라 하나요? 내가 알고 있는 이 정도는 다른 사람들도 다 알고 있을 거라는 오류를 말합니다.

쉽게 읽히는 것 같으면서 쉽지 않은 책이었습니다.

인문, 철학을 잘 모르는 독자에게는 조금 어렵게 느껴졌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폭넓은 이야기를 담다 보니 깊이보다 다양한 사유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생각을 쉽게 전달하기 위한 노력이 느껴지면서도 철학자들의 사유를 왜곡하지 않고

저자의 주장과 철학자들의 주장을 확실히 구분해 놓은 점도 훌륭했습니다.

가볍지 않은 내용을 가볍게 쓰면서도 가볍지 않게 느껴지는 부분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젊은 철학자이면서 우리 사회의 문제점과 그에 대한 너그럽고 여유로운 시선도 좋았습니다.

너무 따뜻하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그러나 사람과 존재에 대한 애착이 느껴지는 철학서입니다.

철학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라면 꼭 추천해주고 싶은 책입니다.


가장 젊은 날의 철학이라 하지만 이 책은 젊은이들만의 철학 책이 아닙니다.

물론 저자는 2030 세대의 질문에 답하고 싶었다고 언급하지만 중년을 훨씬 넘어서는

재수생 아버지의 마음에도 참 많은 질문을 남겼습니다. 좋은 책이라는 의미입니다.

오늘 우리는 남은 삶의 가장 젊은 날을 살고 있다는 말이 있지요.

아마도 그런 마음으로 이 책을 읽는다면 철학에 대해 그리고 우리 남은 삶에 대해

좀 더 젊고 신선한 생각으로 사유하고 가치를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삶은 저마다의 무게와 모양이 다릅니다.

그래서 나에게 주어진 생각과 모습대로 나답게 사는 삶이 가장 행복한 삶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철학은 내가 몰랐던 나를 찾아 나서는 생각의 여정입니다.

쉬운 여정은 아니지만 우리는 누구나 그 길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멈춰 설 지언정 태어나고 살아가는 한 필연적으로 주어진 길입니다.

어쨌든 오늘도 나는 이렇게 존재했으며 글을 남겼고

당신은 이 글을 읽고 뭔 소린지 모르겠다고 의문을 남겼을지라도

우리는 말도 안 되는 대화 속에서 호흡하며 세상을 이루고 살아갑니다.

철학은 그런 것이고 그런 것이기에 매력이 있습니다.


사춘기 이후부터 아들은 여전히 왜 사는가에 대한 대답을 찾고 있습니다.

책을 읽으며 '인생이란 삶은 축복이라는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라는 대답을 해 주고 싶어 졌습니다.

아주 개인적인 철학적 대답이지만 돌아보면 나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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