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에 대한 반론 - 마이클 샌델
이 책은 아마도 수능 강사의 추천으로 고른 책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언어 영역이든, 탐구 영역이든 이런 종류의 내용이 지문으로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복합적 사고라 하나요? 융합적 사고라 하나요?
생물학적인 문제와 사회학적, 인문학적인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글이 수능 지문으로 잘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나마 마이클 샌델의 책은 어렵지 않은 편이라 이런 문제가 나오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아들이 가져온 시험지를 보고 있으면 이걸 맞으라고 내는 문제인지
절망감을 심어주려는 문제인지 알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인생의 난이도는 이보다 어려울 수도 있겠다 싶지만요.
'정의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의 저서입니다.
다른 작품들을 읽어 본 적이 있지만 흥미로운 내용에 비해 크게 인상적이지는 않았습니다.
결론을 독자에게 미루는 듯한 저자의 애매한 자세는
살짝 불만족스러운 기분으로 책을 덮게 만들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치학을 전공하는 사람은 중립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발표한 작품들을 읽다 보면 진보적인 지식인이 아닐까 싶지만
공화당 정부에서 자문위원 활동의 경력도 살펴보자면
사회과학 분야의 학자로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작가라 생각됩니다.
이 책은 그러한 저자의 생각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읽다 보면 저자가 생물학자 혹은 유전학 전공자인 줄 착각하며 읽게 됩니다.
복제, 약물, 유전, 배아 등 다양한 생명 윤리 문제를 정치학자의 견해로 풀어낸
내용이 흥미롭습니다. 이후에 발표한 '공정에 대한 착각'과 어울리는 면이 있지만
저자의 주장이 다른 작품에 비해 명확한 점에서 이 책에 점수를 더 주고 싶습니다.
한 때 유행했던 유전 공학, 생명 윤리에 대한 문제들을 다시 끄집어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여전히 약물 스캔들로 시끄러운 스포츠계의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도핑에 걸리지 않는 약물이 있다면 선수들은 스스럼없이 선택하겠지요.
완벽해지고 싶은 인간의 욕구는 정신적인 부분 보다 육체적인 부분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가수, 작가, 혹은 유명 강사라 하더라도 일단 외모가 되면 선취점을 얻고 시작하는 사회입니다.
키 크고 잘 생기고 멋진 목소리를 지녔다면 능력이 비슷할 때 선호도가 높은 건 당연합니다.
내가 나 자신을, 혹은 자녀의 외모, 지능, 재능을 선택할 수 있다면
우리는 완벽에 가까운 선택을 서슴지 않을 것입니다.
반면 저자는 비 윤리적인 배아, 유전 공학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 사회에 미칠 영향까지 예견하면서 제한받지 않은 인간의 자유에 대한 문제를 제기합니다.
주장하는 바가 확실한지라 책을 읽는 흐름이 명확해서 좋았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완벽하고 싶은 우리 모두의 숨겨진 욕망을 문장과 단어만으로 해결할 수는 없겠지요.
완벽에 대한 반론이라 하지만 완벽은 우리 모두의 욕망이기도 합니다.
완벽한 존재가 될 수 있다면 나에게 주어진 것을 지불하는데 아까울 것이 없습니다.
완벽에 대한 반론이라 하지만 결국 욕망에 대한 저항이 맞는 제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자의 주장과는 달리 현대 의학과 과학은 완벽을 향한 욕망으로 달려가고 있으니까요.
물론 완벽한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되더라도 그 안에서 다시 순위는 나누어질 것입니다.
욕망이 존재하는 한 갈등과 차별은 당연히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을 읽는 동안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가 떠올랐습니다.
욕망의 평균을 맞춰서 사는 것이 더 나을까요?
욕망의 제어 없이 마음껏 사는 세상이 더 나은 미래일까요?
현대 정치학자의 미래에 대한 고민이 디스토피아를 그린 소설로 이어졌습니다.
재수를 하는 아들의 고민은 아무리 공부를 해도 따라갈 수 없는 상위권 친구들의 성적입니다.
늘 1등을 놓치지 않는 친구를 참 부러워했습니다.
그런 그가 안타깝게도 수능 성적이 좋지 않아 S대를 가지 못하고
다른 의대를 진학한 뒤 반수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자신은 아무리 노력해도 갈 수 없는 학교를 들어가고도 원래 목표였던 학교를 가기 위해
다시 시험공부를 하는 친구가 다른 세상 사람처럼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아들은 자신이 가진 능력 안에서 학교를 선택해야 합니다.
운이 좋아 기대 이상의 성적을 얻어도 이미 최 상위권 학교는 선택할 수 없다고 고백합니다.
평범한 수준의 성적이 아쉬운가 봅니다.
누군가는 그 평범함도 부러울 수 있겠지만 완벽을 추구하는 한 우리에게 만족은 없습니다.
주어진 DNA대로 살아가려는 마음에도 용기가 필요합니다.
나에게 주어진 신체, 외모, 성격과 성향까지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는 마음도 용기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그 자체로 완벽한 존재가 아닐까 싶습니다.
서로가 모두 너무나 완벽하게 다른 존재이기에 세상은 특별하고 아름답습니다.
그 속에서 미움, 연민, 사랑 같은 뜻하지 않은 감정들이 솟아나 세상을 다채롭게 채웁니다.
서로 다른 모습과 생각의 차이가 함께 사는 사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가치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런 점에서 서로에 대한 사랑과 연민만큼 완벽한 문제 해결 방법은 아직 없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