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농장 - 조지 오웰
조지 오웰은 참 복잡한 인생을 살았던 작가입니다.
영국인이지만 식민지 인도에서 태어났으며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다가
공산주의 권력의 한계를 마주하고 비판하면서도 자본주의를 신봉하지도 않았습니다.
누구는 아나키스트가 아니냐고 하지만 대게 1, 2차 세계 대전을 겪고 그 참혹한 현실을
저마다의 시선으로 담은 작가들의 세계는 하나의 이념으로는 설명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그 누구보다 뛰어난 부분이 있습니다.
저널리스트였기도 했기에 있는 그대로 역사의 현실을 비판하고
또 다가올 미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명료하고 사실적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입니다.
그의 대표작 '동물 농장'과 '1984'는 폭발적인 상상력에 매료되기도 하지만
예언서를 읽는 공포심과 우리가 마주하기 싫어하는 현실까지 폭로당하는 기분을 마주하게 됩니다.
절대 권력자 '빅 브라더'를 처음 언급한 소설 '1984'는 제목이 언급한 시간을
넉넉히 흘러 보냈음에도 여전히 현대 권력의 상징으로 표현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인공 지능을 지닌 창조물이 빅 브라더가 될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습니다.
고전이 되어버린 그의 소설이 지금도 주목 받는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작품이 권력을 향한 인간의 욕망을 매우 잘 그려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물 농장은 권력이 만들어지고 군중을 속이고 군림하게 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소설은 그가 바라본 공산주의 혁명의 몰락과 폭력성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영원할 것 같았던 제국주의 시대가 서서히 무너지면서 유럽은 혁명의 회오리로 빠져 들었고
그 사이 소련을 장악한 공산주의 혁명은 빠르게 권력을 독점했고 스탈린 체제를 확립했습니다.
동물 농장에서 농장 주인이 쫓겨난 상황에서 모든 동물이 평등하다는 사상으로
농장의 권력을 장악한 나폴레옹은 권력을 사유화하고 우상화하기에 이릅니다.
한 마리의 돼지가 위대한 영도자가 되는 과정을 그리 길지도 않게 거침없이 표현하지만
스탈린의 소련을 이해하기에 조금도 어색한 부분이 없습니다.
그냥 조지 오웰식의 저널리즘 풍자 소설이라 보면 더 편안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죄책감 없이 돼지고기를 잘 먹는 건 아닌가 싶지만 사실 돼지는 잘못이 없습니다.
생각보다 똑똑한 동물은 맞지만 그렇다고 10년 넘게 살 수 있음에도
6개월도 살지 못하고 식탁에 오르기에는 불쌍한 존재라고도 할 수 있지요.
그렇게 따지면 돼지보다 수명이 더 긴 닭은 겨우 한 달 정도 살고 난 뒤
식탁에 올라야 하기에 더 불쌍한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평등을 추구하지만 결코 평등할 수 없는 세상입니다.
인간이 동물 세계의 불평등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듯이
인간 세계 안에서도 그 불평등을 자연스럽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조지 오웰은 그러한 현실을 동물 농장의 여러 동물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대가 많이 변했음에도 이 이야기는 여전히 사회 구조를 비판하는데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제 이 소설은 정치적 현실을 넘어 권력을 향한 인간의 욕망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스탈린의 소련은 붕괴됐지만 권력을 사유화하려는 의도는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그에 동조하는 사람들과 대항하는 국민들의 싸움이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동물 농장 속 주인공들과 얼마나 다른 모습일까요.
그나마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빠르게 민주화를 이룬 대한민국의 현대사에 자부심은 있지만
그 과정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못한 젊은 세대들에게는 다르게 보일지도 모릅니다.
재수생 아들이 읽은 책을 다시 펼쳐 읽어 보았습니다.
수능을 준비하려면 이런 사회적 풍자와 고전은 필수입니다.
문장이 뜻하는 핵심과 비유의 적절한 답을 찾는 문제들이 많습니다.
아들은 조지 오웰이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잘 찾아냈을까요?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참 많은 내적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스탈린의 시대를 비판한 작가의 마음과, 민주화 운동의 시대를 살아온 아빠와,
풍요와 불평등이 뒤엉킨 시대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재수를 하고 있는 아들에게 이 책은 해석은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간혹 이런 이야기를 듣곤 합니다.
'그때가 좋았지.'
그때는 언제일까요? 그리고 그 말은 진심일까요?
현실이 괴롭다면 그 말이 진심이겠지요.
우리는 여전히 불평등의 세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은 사실이니까요.
벌써 아들은 중학생 막내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그때가 좋았다면서 다시 돌아간다면 다른 학창 시절을 보낼 거라 말합니다.
그래도 아직은 시간은 모두에게 평등하다고 믿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빠는 시간이 모두에게 평등한가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출퇴근에 세 시간이 넘는 사람의 하루와 30분이 넘지 않는 사람의 시간은 공평하지 않습니다.
그 시간을 줄이기 위해 부동산에 투자해야 하지만 노동의 가치로 버는 자산은
가만히 그곳에 멈추어 있는 부동산의 자산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대출이 필수인 시대, 앞으로 아들이 새롭게 맞이해야 할 현실입니다.
'모든 동물들은 평등하다. 하지만 어떤 동물들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욱 평등하다.'
동물 농장을 통해 조지 오웰이 말하고 싶었던 한 문장이 여전히 우리에게도 유효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매우 정치적인 사람이지만 정치 이야기를 잘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완벽할 수 없지만 정치는 완벽을 추구하게 만드니까요.
그 속에서 사람들은 상처를 받고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여전히 그 부분이 어렵습니다.
누구도 아프지 않은 세상은 없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마음 자체가 폭력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현실과 미래에 대한 우리의 숙제를 확인합니다.
동물이 아닌 사람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가기 위해
우리는 다수가 선택한 정치 체제를 지지하며 한 표를 행사합니다.
그 한 표가 누가 선택해 주는 표가 아닌 저마다의 다양한 생각이 온전히 담겨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학습을 합니다.
아들은 꿈을 찾기 위해 재수를 선택했지만 공부를 하는 이유가
나만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가 아님을 이 책을 통해 함께 배웠으면 합니다.
21세기 우리의 미래는 동물 농장이 아닌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기를 희망하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