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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를 희극으로 만들기 위해

해 질 무렵 - 황석영

by 류완


한국문학의 대표적인 작가 황석영 선생의 비교적 최신작입니다.

국내 문인들 중에서 깊이 존경하는 작가입니다.

작품도 훌륭하지만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시는 열정만으로도 한국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길 분이 분명합니다.


오래된 작품도 참 좋아합니다.

'삼포 가는 길'은 소설도 영화도 마음에 오래 남는 작품입니다.

제가 태어났던 해에 발표된 영화지만 마지막 장면의 여운은 지금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 로드 무비의 원형이라 불리는 작품입니다.

소설과 영화 속 등장인물의 이름은 다르지만 두 작품 다

70년대 가난한 서민들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다루었습니다.


'해 질 무렵'은 두 명의 화자를 통해 소설의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60대 남성 박민우와 20대 후반의 여성 정우희,

두 사람의 사회적 현실은 지금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적당한 사회적 성공을 이루었지만 과거 한국 현대사의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노년의 남성이 소설의 한 축이라면, 다른 한 축은 꿈을 좇아 모든 것을 희생해도

도저히 닿을 수 없는 평범한 우리 젊은이들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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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은 사회의 아픔을 딛고 일어나 회한 가득한 노년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는 재개발 시대의 변화를 목도한 사람입니다.

그 안에서 발전이라는 것을 이루었지만 세상의 변화가 꼭 자랑스럽지만은 않습니다.

과거를 모두 무너뜨리고 세운 재개발에 추억은 아름다운 것들마저 함께 밀어버렸습니다.


청춘의 끝을 향하는 한 여성은 현대화된 사회에서 자신의 꿈을 찾아 나섭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하면 되는 시대가 아닙니다.

노력해도 꿈은 한 걸음 더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

하루하루 그저 버티는 삶이 되었습니다.

꿈은 있지만 꿈은 그저 꿈일 뿐입니다.

현실에서는 이룰 수 없는 성공한 누군가의 이야기를 그저 쫓아갑니다.


해 질 무렵은 현대사의 아픔과 숙제를 담담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격정적으로 그려낸 문장은 아니지만 우리 사회가 지닌 문제의 단면을 진솔하게 표현해 냅니다.

젊을 땐 소설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언제부턴가 소설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비현실적은 글을 좋아하지 않았었는데 어쩌면 소설은 현실보다 더 현실을 잘 표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입시를 준비하는 아들의 독서는 점점 의문으로 빠집니다.

'이게 수능에 도움이 되나?'

몇 번의 책을 만나다 보니 이젠 살짝 걱정이 되기까지 합니다.

순수 문학으로 참 훌륭한 소설이지만 입시에 도움이 되는지 의문을 갖게 되면 감동은 내려앉습니다.

아들의 입시가 나의 문제가 되는 순간 독서마저 다른 평가를 내립니다.


그러나 황석영 작가는 이 작품을 고민하는 젊은이들을 위해 썼다고 합니다.

노년을 향하는 작가의 고민이 젊은 이들에게는 응답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궁금해서 아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수능 관련 강의에 자주 등장하는 작가의 책이어서 찾아보았다고 합니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합니다. 목적을 두고 읽는 독서에 안심을 하게 됩니다.

한 편으로는 마음이 놓였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입시를 위해 소설을 읽어야 하는 현실은 아쉽습니다.


이제 스무 살, 청춘의 시작을 달리는 아들에게 이 작품이 온전히 이해되지는 못할 것입니다.

정우희의 삶이 이해된다면 부모로서 마음 한 편이 아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입시라는 현실을 벗어나 미래를 배우는 공부라 생각한다면

우리는 타인의 아픔에 다가가는 이야기 속에서 더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습니다.


황석영작가가 그린 해질 무렵은 쉽게 그려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실제 해질 무렵 하늘은 참 아름답습니다.

우리에게는 그 하늘을 바라볼 여유가 없을 뿐입니다.

아들은, 그리고 우리의 청춘들은 그 아름다움을 언제나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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