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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은 남아 있는가

양심 - 최재천

by 류완


세상을 움직이는 수많은 요소들 중에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요?

단순한 질문이지만 최소한 70%는 돈과 같은 물질적 요소들을 떠올렸을 것 같습니다.

속물이라 하기엔 나 자신도 그러한 부분에 동의하는 바

우리는 물질의 노예, 속물적 근성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 와중에도 사랑, 배려, 평등, 가족 같은 이상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을 특별하게 바라보는 사람들, 그리고 아름답게 만들고 싶은 욕구들이

자신의 마음을 보이지 않는 영역으로 채웁니다.


여기 한 생물학자가 그러한 영역에 주목합니다.

이화여대 생물학과 최재천 교수는 이 시대에 필요한 화두로 양심을 꺼내어 놓습니다.





책의 부제이기도 한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us)는 최재천교수가 만든 용어입니다.

공존을 의미하는 심비우스를 통해 앞으로 인류는 서로 협력하고

함께 도우며 살아야 하는 시대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인문학자가 아닌 생물학자의 주장이라 더 인상 깊고 특별합니다.

심지어 읽다 보면 인문학자가 쓴 글이 아닐까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다행히 중간중간 생물학의 예를 들어 윤리적, 합리적 양심의 중요성을 설명하기도 하지만

책도 짧고 문장도 평이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참 친절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사람들이 지금보다 조금씩 더 착해지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이 구구 절절히 담겨 있기에

친절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 생각만이 옳다는 글이 아니니까요?

그런 글들은 이미 넘쳐 나지만 호모 심비우스가 되자는 저자의 주장을 전하기 위해

그는 매우 조심스럽고 친절한 이야기들로 독자를 사로잡습니다.

이런 글이 누군가에게는 세상에 널린 좋은 말들의 하나일지도 모르지만

사랑과 관심에 갈급한 누군가에게는 단비와 같은 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편으로 아들은 이런 내용의 글이 재수와 무슨 상관이 있어서 빌려 왔는지 궁금했습니다.

착해지고 싶어 졌을까요?

사실 아들은 공부 말고는 나무랄 데가 없는 아이입니다.

착하고 잘생기고 키도 큽니다.

170밖에 안 된 큰 아들이 아빠 닮아서 키가 작다고 투덜댈 때마다

180인 둘째가 나타나 그 증명을 깨뜨려 주기에 저에게는 한 없이 소중한 유전자입니다.


그런 아이가 양심에 대해 궁금해합니다.

생각해 보니 그럴 만도 합니다.

저자도 비슷한 생각을 하지만 언제부턴가 우리 주변에서 양심이라는 말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양심이 없어.', '양심 때문에', '양심에 찔려서'라는 말들을 좀처럼 듣기 어렵습니다.

우리의 양심은 어디로 사라진 건가요?

그리고 사라진 양심의 영역은 무엇으로 대체되어 가나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는 80년 5월 한 시민군이 적어 놓은 낙서 하나를 통해

'소년이 온다'의 집필 방향을 세울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두려움 속에서도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힘, 양심은 이처럼 괴이하며 이해할 수 없지만

우리의 미래를 사람에 대한 믿음으로 채워가게 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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