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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아무 생각 없이 찍을 수 없다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 고레에다 히로카즈

by 류완


재수생 둘째 아들이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왔습니다.


그 바쁜 시간을 쪼개어 도서관에 찾아가 빌려온 책이니 궁금하기 짝이 없습니다.

안 그래도 며칠 전, 영화감독이 되려면 어느 대학을 가야 하는지 물어보기에

아무 생각 없이 서강대 철학과를 가라고 했습니다.

자기 성적으로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하면서 왜 영상 전문 학과가 아닌 철학과인지 되묻습니다.

영화는 사고의 집합체이며 철학이 영화를 만드는데 가장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박찬욱 감독과 신해철이 졸업한 학과이니 철학이 무너져도

대한민국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철학과가 아닐까 싶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별다른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빠는 진심이었는데 아들은 농담처럼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빌려 왔습니다.

생각해 보니 진심인 아들에게 아빠가 농담을 한 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촬영을 통해 느낀 다양한 이야기들이 다채롭습니다.

이 감독을 좋아하는 편이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걸어도 걸어도’, 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인상 깊게 봤습니다.

‘어느 가족’이 가장 흥미로웠고 수상도 많이 했지만 이 책이 나온 후의 작품이어서 언급이 없어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작품을 한 번이라도 인상 깊이 본 적이 있다면 이 책을 추천드립니다.


특히 그의 작품을 볼 때마다 평범한 일상에서 특별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과정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책에서 비슷한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어서 인상적이었습니다.


죽음에 대한 그의 사유, 그리고 영화에서 그려내는 죽음의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그의 영화는 누군가의 죽음으로부터 이야기를 풀어내는 영화가 많습니다.

일본인 특유의 감성이 느껴지는 부분이었습니다.

죽음 앞에서 갈등하고 투쟁하는 서양의 이 이야기들과의 미묘한 차이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단순히 영화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자신만의 연출 방식 등이 제법 자세히 정리되어 있습니다.

조금 오래된 책인지라 지금의 영화나 방송 문화와 차이는 있지만

영화를 지망하고 꿈꾸는 이들에게는 필독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의심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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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 아들은 와세다 대학이 어느 정도 수준의 대학인지를 묻습니다.

제법 상위권 대학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와! 세다!'라고 생각 들지 않냐는 농담에는 싱거운 미소만 남깁니다.

고민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의심이 들어 재빨리 찾아보았습니다.

역시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나온 학교였습니다.

역시 공부는 하기 싫고 영화감독은 하고 싶은 얄팍한 심산이 보입니다.


재수생 아들이 매주 한 권씩 책을 골라 읽습니다.

그 책들을 하나씩 몰래 꺼내 읽는 재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뒤 또 한 권의 일본 소설을 빌려왔습니다.

다음 작품은 릴리 프랭키의 '도쿄 타워'입니다.

뭐지? 아빠랑 취향이 너무 똑같잖아.

나 이거 너무 재밌게 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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