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 알베르 카뮈
카뮈의 열혈 팬은 아닙니다.
입바른 소리를 잘하는 작가여서 그럴까요?
그의 직설적이고 분노에 찬 메시지가 때론 차갑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와 논쟁을 벌였던 샤르트르를 더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고전과 역사를 더 좋아하는지라 20세기 중반 이후의 작품에 크게 관심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들 덕분에 그의 대표작 중 읽지 않았던 하나를 찾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아들이 고른 두 번째 책이 이방인이라는 사실은 흥미로웠습니다.
'네가 문학을 좀 아는구나.' 하는 얄팍한 지적 교만이 미소 짓게 했습니다.
카뮈의 글은 정말 명문입니다.
아니 제가 뭐라고 노벨 문학상 받은 작가의 글솜씨를 평가하겠습니까?
그런데 아무리 돌아봐도 읽어 본 그의 다른 작품에 모두 감탄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생각보다 어렵지도 않았고 재밌다고 느꼈던 작품이기에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지프 신화, '페스트' 모두 재밌고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번역 자체도 훌륭한 것 같습니다. 번역을 위한 출판계의 노력과 발전에 박수를 보냅니다.
내용은 아주 쉽게 간추릴 수 있습니다.
어머니의 죽음, 주인공의 살인, 그리고 주인공의 사형.
스포랄 것도 없이 이 내용을 알고 읽어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 책의 묘미는 세 죽음을 묘사하는 작가의 현란한 표현 속에 있습니다.
작가는 일단 잘 생기고 볼 일입니다.
책의 표지를 작가의 사진으로 장식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늘 자신을 이방인으로 생각했던 카뮈의 고백을 되새기자면
담배를 입에 문 그의 힘없는 표정과 처진 눈에 옷 깃을 세운 모습은
사진이 아닌 삽화라 표현해도 과하지 않습니다.
알제리 출신의 프랑스 인으로서 알제리 독립에 대해 중립적인 생각을 밝혔다가
좌파 우파 모두에게 공격을 받았던 그는 사회적으로도 이방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거친 표현과 강한 주장 뒤에는 삶에 대한 고민과 세상에 대한 연민이 깊이 배어 있습니다.
식탁에 책을 올려 두고 샤워를 하고 나온 아들에게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이 책 어때?"
"재밌었어요."
괜히 노벨문학상 작가가 아니었습니다.
재수생 아들에게 재미를 선사했으니 말입니다.
어쩌면 재수생이라는 현실이 우리 사회에서는 이방인일수도 있습니다.
친구들은 대부분 대학을 진학했거나 직업을 찾고 있고 재수를 하는 친구들도
일단 다른 학교에 합격을 해 놓고 반수를 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입니다.
아들은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재수생입니다.
그에게 이 책은 어느 부분에서 재미를 안겨 주었을까요?
까뮈의 다른 작품들까지 읽고 나면 그가 얼마나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고민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에게 삶은 '부조리'의 연속이지만 그 속에서 끝내 살아내는
삶이야말로 죽음을 극복하는 최고의 선택이라 말합니다.
그래서 카뮈의 글은 어둡지만 밝습니다.
아프지만 치유가 됩니다.
힘들지만 위로가 됩니다.
어쩌면 아들에게도 최고의 선택을 보여준 것 같습니다.
죽음을 앞둔 주인공 뫼르소의 저항이 마치 입시를 준비하는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 것은 아니었을지.
시지프 신화 속 이야기처럼 시험이 끝나도, 대학을 가도, 직장을 가도, 결혼을 해도
인생은 끝없는 부조리함 속에서 해답을 찾지 못한 채 살아내야 하는 비극의 연속입니다.
아들은 이제 그 사실을 조금씩 알아채고 있습니다.
저항하든 순응하든 스스로 선택할 문제이지만 아빠는 무능했다면
아들은 극복할 수 있기를 조심스럽게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