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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새치를 아십니까?

노인과 바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by 류완


어린 시절 학교 도서관에서 얇고 낡은 '노인과 바다'를 꺼내 읽었습니다.

친구들이 많이 읽으니까 그냥 읽었던 것 같은데 그 이후로 이 책은 내가 읽은 책이 되었습니다.

노인이 바다에서 물고기와 싸운 이야기입니다.

맞지 않습니까? 이보다 깔끔한 설명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재수생 아들 덕에 이 책을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탈고의 대가답게 헤밍웨이의 문장은 쉽고 깔끔하면서 탁월한 묘사가 인상적입니다.

중고등학교 국어 선생님들이 가장 많이 추천하는 작가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일단 헤밍웨이와 그의 작품들은

이미 중학교 정도에 읽고 끝내야 하는 소설이라고 합니다.

수능 문학 서적으로서 기본, 아니 기초 정도로 보면 되는가 봅니다.

그런데 재수생이 돼서 읽고 있습니다.

정말 처음부터 다시 하는 걸까요? 갑자기 머리가 아파옵니다.


덕분에 쉽고 짧고 재밌는 소설을 하나 읽었습니다.

30년을 훌쩍 넘겨 다시 읽은 소설인데 다시 읽은 기분이 아니었습니다.

처음 읽은 것 같습니다.

야구 선수 이야기부터 노인을 좋아하는 어린 소년의 따뜻한 친절,

대어를 기다리며 만나는 수많은 바다 동물들의 이야기까지 나는 이 책을 처음 읽고 있습니다.






가장 새로웠던 감동은 그가 그토록 애타게 잡고 싶었던 물고기가 청새치였다는 사실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청새치가 어떤 물고기인지 몰랐던 시절과 어느 정도 알고 읽은

지금은 소설을 읽으며 그려지는 그림에 제법 큰 차이점이 느껴졌습니다.


책에는 거대한 물고기가 청새치라는 언급이 초반 한 두 번 정도 나오는 것 같습니다.

세심하게 살피지 않으면 그 물고기가 청새치인지 모르고 지날 수도 있습니다.

노인은 거대한 청새치를 만난 이후 고기라고 불렀습니다.

다른 물고기들은 어종을 정확히 부르는 반면 사투를 벌이며 잡은 청새치는 고기일 뿐입니다.

어두운 바다, 정신을 잃고, 졸음을 쫓으며 잡으려는 거대한 물고기의 어종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노인이 정신을 잃어가기 때문은 아닙니다.

배에 메단 고기를 뜯어먹으려고 달려드는 상어의 어종은 주석으로 친절하게 알려 줍니다.


빛나는 승리의 산물을 상어에게 뜯기기 시작하자 노인은 후회합니다.

그렇게 잡고 싶었던 청새치였지만 예상치 못했던 상어 떼의 공격으로 좌절합니다.

후회와 좌절 속에서도 상어 떼의 공격을 필사적으로 막아냅니다.

몸통은 다 뜯기고 뼈만 남았지만 고기의 머리통을 지키기 위해

노인은 마지막 사투를 벌입니다. 그리고 지켜냅니다.

이 책을 대충 알았던 시절의 궁금증이 해소되었습니다.

노인이 잡은 물고기는 코 끝이 창처럼 뾰족한 청새치였고 살은 다 잃더라도

머리만 지켜 낼 수 있다면 사람들에게 자신이 잡은 물고기가 무엇인지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잡은 물고기가 청새치였음을 소년의 질문이 확인해 줍니다.

"그 창날 같은 주둥이는요?"

상어에게 뜯어 먹히고 뼈와 꼬리만 남은 물고기는 가장 확실한 특징 하나를 남겨 두었고

노인을 사랑한 소년은 그 멋진 특징을 간직하고 싶었습니다.


청새치의 진짜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가며 읽으면 노인의 사투가 더욱 선명하게 그려집니다.

예전에 낚시 관련 방송에서 청새치를 낚는 프로를 본 적이 있었는데

성인 몸집보다 큰 크기에 코 끝이 창살처럼 뻗어 있어 매우 위험한 낚시 어종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현장을 떠올리고 다시 읽은 '노인과 바다'는 느낌이 사뭇 달랐습니다.

청새치의 머리라도 지키고 싶었던 노인의 마음이 깊이 와닿았습니다.



마린2.jpg 청새치



하지만 노인은 모든 사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음에도 허무함을 떨치지 못합니다.

청새치의 살을 지키지 못해서라기보다는 그의 삶이, 그리고 그날의 처절한 투쟁이

이제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노인의 감정이 느껴지는 부분이었습니다.


이 소설을 살리는 숨겨진 매력은 노인을 끔찍하게 사랑하는 소년입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려는 노인에게 다시금 꿈을 꿀 수 있도록 힘을 줍니다.

소설이기에 어린 소년에게서 그런 모습을 그려낼 수 있겠지요.

이전에 데미안을 다시 읽고 이 책을 읽으니 노인과 소년은 같은 사람이 아닌가 싶은 감정을 느꼈습니다.

끝내 비관적이었던 노인과 그를 믿고 응원하는 소년,

소년은 다른 사람이 아닌 희망에 부풀었던 본인의 어린 시절의 모습을 그려낸 것이 아니었을지......


헤밍웨이는 이 책을 발표하고 2년 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합니다.

그리고 7년 뒤 스스로 생을 마감합니다.

그의 마지막을 알고 읽으니 이 책이 그의 유서처럼 읽힙니다.

다시는 청새치를 잡을 수 없을 것 같은 그의 마음이 와닿습니다.

'노인과 바다'를 발표할 당시 그의 나이는 50대 초반이었습니다.

노인이라 불리기에는 이른 나이가 아닌가 싶지만

건강과 필력을 잃어가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고백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참 슬픈 소설입니다.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청새치의 머리를 남기기 위해 펜과 종이와 사투를 벌인 헤밍웨이의 명작입니다.


청춘은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젊은이들의 신선한 모습을 보면 부러움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옵니다.

하지만 우리 시대의 청춘은 하고 싶은 것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이들이 많습니다.

어쩌면 일찍 노인이 되어버린 이들일지 모릅니다.

우리나라의 40대 이하 사망률 1위는 자살입니다.

모든 죽음에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절망이 주는 무게가 가장 크겠지요.


우리는 모두 인생이라는 망망대해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야 합니다.

노인은 혼자였다면, 우리는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잃어가는 시간 속에서도 서로를 응원하며 함께 살아내는 삶은 아름답습니다.

우리에겐 소년과 같은 순수한 사랑이 필요합니다.

함께 아파하고, 함께 웃고, 함께 꿈을 꿀 수 있는 그런 존재,

나는 그렇게 당신의 바다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같은 배를 탄다면 더할 나위 없겠네요.

외롭지 않다면 밀려오는 두려움도 조금씩 떨쳐 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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