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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가 되긴엔 너무 늦었잖아요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 - 로버트 기요사키

by 류완


지난봄, 아들의 책상 위에 이 책이 있는 것을 보고는 화들짝 놀랐습니다.

이 책이 재수생 아들의 학습에 도움이 되는지 궁금했고

그것이 아니라면 별 욕심 없이 살던 아들이 새로운 욕망에 눈을 뜬 게 아닐까 궁금해졌습니다.


괜히 물어봤다가 아빠의 부끄러운 현실을 마주할까 봐 책이나 펼쳐 보았습니다.

대충 내용을 알고는 있었지만 기록된 책의 내용은 가난한 아빠가 읽기엔 쉽지 않았습니다.

대개 자기 계발서는 의욕을 고취시키거나 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독자를 자극하지만

이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내 삶이 뭔가 망가져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더군다나 재수생 아들의 시선으로 읽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가난한 아빠가 알려주지 않은 세상으로 아들은 혼란과 원망이 자랄지도 모릅니다.


책에서 부자와 가난을 나누는 기준은 자산입니다.

노동력의 가치나 특별한 가치관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산으로 돈을 버는 사람과 노동력으로 돈을 버는 사람의 차이를 나누고

후자는 전자의 삶을 살기 어렵다고 주장합니다.





발행된 지 20년이 훌쩍 넘었지만 오랜 시간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쉽고 현실적인 경제 개념서로서 IMF를 겪으면서 가난을 극복하고 자산에 대한 개념과

새로운 시대의 경제 흐름을 공부하고 싶은 이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읽으면서 감탄한 내용도 있었고, 내가 그래서 가난하구나 자책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부자가 되고 싶은 이들에게 기본 지침서 정도는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라고 모두가 부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자본은 무한정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투자한다고 모두 기대하는 만큼 수익을 거두기 어렵습니다.

마냥 이 책이 주장하는 내용을 따라 한다고 모두 부자 아빠가 될 수는 없습니다.

저자는 사람의 노동력이 아닌 자본이 일을 하게 만들라고 하지만

자본의 흐름을 알기 위해 정보가 필요하며 이 정보는 누구나 쉽게 활용할 수 없습니다.


시대적 상황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소득 수준의 격차가 벌어지면서 직업에 따라 투자를 넘어서는 소득이 가능해졌습니다.

직업의 형태도 다양해지면서 생산 수단으로써의 노동이 아닌

자신을 소비하는 형태의 노동이 가능해졌습니다.

유튜버나 인플루언서 같은 경우를 말할 수 있습니다.

한류가 세계적인 문화의 중심이 되면서 이들이 벌어들이는 소득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자산의 형태도 부동산, 주식, 지적 재산권을 넘어 디지털 화폐까지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습니다.

20주년 특별판까지 나왔지만 요즘 트렌드와는 간격이 느껴지는 부분도 있습니다.


가난한 아빠로서 부끄러운 감정을 배제하더라도 비판할 부분이 많은 책이지만

이번엔 재수생 아들이 고른 작품입니다. 아빠는 아들의 시선으로 이 책을 읽습니다.

확실한 건 아빠는 가난한 아빠고 저자가 주장하는 가난한 사람의 특징을 그대로 살고 있습니다.

그저 적은 수입으로 입에 풀칠하며 근근이 살고 있고

자산도 빚도 없이 조용히 살다 조용히 가겠다는 신념만 남았습니다.

책을 읽으며 내 삶에 대해 약간의 부끄러움을 느꼈기에 나름 성공적인 책이라 평하고 싶습니다.

생각해 보니 나는 게으르고 안일했으며 공부하지 않았습니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시대를 앞서가는 삶을 추구하기 위한 투자는

좀 더 버라이어티 한 인생을 살 수 있게 만들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돈방석에 앉든 빚더미에 앉든 내 인생의 숫자는 지금과 다를 수 있으니까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자가 되기 위한 방법으로는 나쁘지 않은 내용입니다.

잘 사는 친구들을 봐도 자산 못지않은 대출이 있으며 대출 이자 이상의 수익을 내고 있습니다.

부럽지만 그렇다고 마냥 부럽지만도 않습니다.

자산을 부풀리고 대출로 수익을 내는 과정에서 소모되는 감정과 갈등은 내 영역이 아닙니다.

현대 사회의 부자는 강심장이어야 하고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도 확보해야 합니다.

로버트 기요사키도 책이 대박 난 이후 다양한 사회 활동으로 더 큰 자산을 얻었습니다.

욕도 많이 먹어야 하고 또 열심히 인플루언서의 삶을 지켜내야 합니다.

가난한 아빠와 생각은 다르지만 그의 노력과 성실함은 인정해주고 싶습니다.


어쩌면 현대 사회의 부자는 고대 사회의 장수 같은 사람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빗발치는 화살을 두려워하지 않고 적진을 뚫고 들어가는 용맹한 사자와 같은 이들 말입니다.

어느 정도 책을 마무리할 때 즈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이제 늙은 병사가 되어버린 건 아닌 건지,

나이도 그렇지만 마음마저 늙어버려 용맹한 전사가 되기에는 늦어버린 기분입니다.

용기도 체력도 없어 그저 사는 것이 최고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아빠는 그러할진대, 아들은 어떤 감정으로 읽었을까요?

가끔 대학을 가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묻곤 합니다.

재수가 힘들어서라기보다는 대학이 먹고사는데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묻는 질문입니다.

학업은 무형의 자산이라면 학위는 학업의 증명서입니다.

대학이 부자까지는 몰라도 중산층 정도를 보장하는 기반이 되지 않는다면 인기는 떨어집니다.

인문학과 기초과학 분야의 경쟁률이 떨어지는 이유입니다.


그럼에도 그 인기 없는 학과들을 도전해 보는 건 어떠냐고 추천한 적이 있습니다.

역시 돌아오는 대답은 싸늘했습니다.

고3 때까지만 해도 철학에 관심이 많았던 아들이었지만 지금은 미디어 관련 분야를 공부하고 싶다고 합니다.

과정이 어떠하든 하고 싶은 분야가 그려지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이제 막 성인의 문턱에 들어선 아들도 가난은 무섭나 봅니다.

취업의 문이 조금이라도 더 열린 곳을 찾아가고 싶어 합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이 책이 크게 와닿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아들은 자산보다 직업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새대의 색다른 감상평이 있겠지만 아직은 부자에 대한 갈망이 크지 않은 듯 보입니다.

살면서 이리저리 굴러가다 보면 생각도 변하겠지요.

원하는 바를 찾고 원하는 대로 '잘'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철없는 아빠는 '돈이 아닌 행복에 투자해 보는 건 어떨까?'라고 권유해보고 싶어 집니다.

그래 봤자 엄마 한 마디면 다 부질없는 생각이긴 하지만요.

어쩌면 이 책의 가장 큰 오류는 엄마 생각을 너무 등한시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아내 말 잘 듣고 충성하며 사는 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 아닐까 홀로 상상의 내래를 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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