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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갈 자격에 대해

인간 실격 - 다자이 오사무

by 류완


일본의 부러운 점 딱 하나만 꼽으라면 저는 도서 문화라고 하겠습니다.

책이 꾸준히 잘 팔리는 나라고 여전히 책을 많이 읽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꾸준히 도서 인구가 줄고 있습니다.

아날로그를 선호하는 일본인들과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한국인들의 차이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스마트폰 보급률이 20% 가까이 차이 나는 점을 보자면

확실히 두 나라는 거리만 가까울 뿐 삶의 방식은 제법 차이가 많이 나는 것 같습니다.


일본의 책에 대한 애정은 일본 문학의 힘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메이지 유신 이후 활발한 번역 정책과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비교적 창작의 자유를 일찍 누릴 수 있었던 점 또한 그 힘이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비교적 최근에 노벨상을 수상했던 가즈오 이시구로는 영어권 작가로 분류하더라도

이미 두 명의 노벨 문학상 작가를 배출해 냈고 수상하지 못한 다른 작가들에 대한

일본 문학계의 아쉬움은 대충 명단만 불러 봐도 욕심만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후로도 끊임없이 아시아권 수상자 후보로 일본의 문인들이 거론되어 왔습니다.


한글은 우수한 문자로 다양한 형태와 감정의 기록이 가능합니다.

노벨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 외에도 한국의 인문 문학 작가들 역시 훌륭한 분들이 많습니다.

한국의 문화가 세계 속에서 사랑받고 있는 만큼 우리 문학도 가능성이 무궁합니다.

도서 문화의 발전과 정착으로 우리 문학이 K-문화의 한 축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시 일본 문학의 이야기로 돌아와 작품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인간 실격'은 일본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인기 있는 작품입니다.

이 책 역시 재수생 아들의 책상에서 몰래 훔쳐와 읽었습니다.

재수생이 읽기에는 조금 위험해 보이는 제목이 책을 꺼내 읽게 만들었습니다.


저자 다자이 오사무는 일본인이 사랑하는 작가 역대 순위에 항상 올라 있습니다.

그가 일찍 삶을 마감하지 않았다면 노벨상을 수상할 만한 작가라 평가하기도 합니다.

두 번의 세계 대전으로 인간에 대한 고민과 허무주의적 관점이

세계 문학과 철학의 흐름으로 이어지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세계 역사가 처한 잔인한 현실은 인간에 대한 깊은 사유를 이끌었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기에 참 많은 명작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도 그러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인간의 본성에 대한 작가의 독특한 성찰이 담겨 있습니다.


책은 한 사람의 망가진 삶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제목 자체가 스포다 보니 내용을 유추하기에 어려움은 없습니다.

다만 일본식 특유의 주고받는 대화나 장황한 설명은 짧은 소설임에도 편안하게 읽히지 않았습니다.

소설의 재미를 떠나서 공감하기 어려운 내용이 많았습니다.

주인공 요조의 삶은 현실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소설이니 그러려니 하고 읽어 보아도 그의 고민과 갈등이 쉽게 이해되지는 않습니다.

그걸 한 방에 이해시킨 단어는 '자전적 소설'이었습니다.





'인간 실격'은 다자이 오사무의 삶이 축약되어 있는 자전적 소설입니다.

픽션이라 생각하면 왜 이런 이야기가 이어질까 싶은 이야기도 다자이 오사무의 삶을 따라가며

읽으면 그가 느꼈던 갈등이 이해되면서 안타까움과 연민을 따라 읽게 됩니다.

그래서 소설의 내용보다 해설에 나온 다자이 오사무의 삶을 먼저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결국 소설은 현실의 다른 세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상상력의 끝판 왕이라고 불리는 판타지 소설조차도

우리가 상상하는 갈등과 사랑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으니까요.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소설의 첫 문장이 소설의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이 문장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며 좋아합니다.

심오한 내용에 비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팔리는 일본 서적이라는 점도 인상적입니다.

제목이 주는 특별한 감성 때문인지 작가의 반 극우적 성향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살률이 매우 높은 나라에서 여전히 인기가 높다는 사실은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카프카의 '변신'과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으로 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두 주인공의 삶을 주인공의 시점에서 바라본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과 타인의 시점으로 바라본 카프카의 소설은 방식은 다르지만 비슷한 감정을 이끄는 부분이 있습니다.

카프카의 '변신' 역시 자신의 삶을 모티브로 그려냈으며 단명했다는 점도 닮았습니다.

스스로 벌레만도 못한 삶이라고 여긴 두 작가의 인생과 삶에 대한 철학이

시대와 국가를 넘어 글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음은 문학이 주는 특별한 매력입니다.


시대적 환경, 타인에 대한 연민과 자신을 향한 겸손이 다자이 오사무 문학의 힘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삶을 지키기 위해서는 단단한 자기 방어 기제가 필요하지 않나 고민하는 요즘입니다.

결국 삶의 의미를 찾아 헤매던 다자이 오사무는 다섯 번의 시도 끝에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끄럼 많은 삶을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극복하며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인생일지라도 일단 살아 내야 다른 이야기들을 만들 수 있습니다.


소설은 마지막 문을 닫지 않은 기분으로 끝을 맺습니다.

만약 그가 삶을 더 견디며 그 문을 찾아 끝끝내 닫고 나와 인사할 수 있었다면

세계적인 작가로서 일본인들이 기대했던 그 자리에 오르지 않았을까 아쉬운 마음으로 책을 덮었습니다.


재수를 하는 아들에게 이 책은 어떤 감성으로 다가왔을까요?

재수생이라는 단어 자체가 우리 사회에서 패배자, 혹은 실격자로 느껴지게 만듭니다.

본인에게 주어진 지금 이 자격이 삶에 대한 허무로 이끌지는 않을까 걱정이 들었습니다.

성적이 아닌 아들의 삶이 걱정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한 번쯤 인생의 자격을 고민하고 삶의 의미를 찾아 나서는 과정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이겨 내고 풍성한 결과를 얻을 수도 있겠지만 고민하고 무너지는 과정 속에서

자아의 깊이를 찾아가는 것도 인생의 또 다른 성공입니다.

남들이 추구하는 성공을 찾아가는 것도, 그저 내 영역을 지켜내는 것도,

그저 혹독한 세상의 시선 속에서 내 시간을 살아내는 인내 만으로도

인간으로서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충분한 자격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욕망하는 것을 찾지 못하더라도, 또 결국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하나둘씩 생기더라도

삶은 포기하지 않고 끝끝내 살아내기를 아들과 우리 주변의 청춘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싶습니다.


돌아보면 나 자신도 이따금 죽음에 대한 갈망을 느낀 적이 있었습니다.

살아서 뭐 하나 싶을 때마다 그 시간과 공간을 살짝 벗어나게 되면

그 마음은 결국 나를 살리고 싶었던 간절한 외침이었음을 깨닫곤 합니다.

살아갈 자격은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우리의 권리입니다.

인생은 실격이 없습니다.

나아 가든, 돌아 가든, 선을 넘든, 멈춰 있든, 인생이라는 길 위에 머물러 있는 동안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이름으로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열어갈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누구에게도 그 자격을 묻지 않기를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너그럽기를

다자이 오사무의 문장을 읽으면서 반추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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