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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완 Nov 09. 2020

다섯 식구가 택시를 타고 가던 날


막내가 돌 즈음에 있었던 일입니다.


다섯 식구가 택시를 탔습니다.

엄마는 막내를 안고 아이들과 뒷자리에 탔습니다.

아빠는 앞자리에 앉아 기사님께 목적지를 설명하며 주변을 살피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가다가 기사님이 아이들을 보며 한 마디 건네셨습니다.


"셋이나 낳으셨으니 애국자시네요."


"아, 예. 감사합니다."


사실 다둥이 가족이 외출을 하게 되면 부모는 다른데 신경 쓸 겨를이 없습니다.

혹여나 아이들이 이동 중에 불편해하지는 않는지, 떼를 쓰지는 않을지,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는 건 아닌지 하는 걱정들로 가득 차게 됩니다.

기사님은 저희 부부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으로 한 마디 더 건네셨던 것 같습니다.


"따님이 참 예쁘게 생겼네요. 좋으시겠어요."


막내딸이 객관적으로 보자면 예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우리 부부 눈에는 귀엽고 사랑스러웠으니 그러려니 하고 맞장구를 쳐 드렸습니다.


"네, 요즘엔 딸이 참 귀한 것 같아요."


이 즈음에 대화가 끝났으면 좋았으련만

기사님은 본인의 착각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셨습니다.


"둘째가 딸이어서 참 좋으시겠어요. 둘째가 나중에 부모에게 참 잘해요."


???


아뿔싸!

기사님은 둘째 아들을 딸로 착각하셨습니다.

이제 겨우 다섯 살인 둘째는 기사님이 자신의 성별을 바꿔치기하신 사실은 모른 채

뒷 자석 가운데에 앉아 커다란 두 눈 만 꿈뻑이고 있었습니다.


대답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난감한 상황에 처해 있었는데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첫째가 눈치 없이 끼어들었습니다.


"하하하. 얘 남잔데."


아이들의 레이더는 대단합니다.

그 와중에도 들리는 소리는 다 듣고 있었나 봅니다.

차 안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습니다.

기사님도, 나도, 아내도 목적지에 빨리 닿기만 바랬던 것 같습니다.

대화는 여기서 끝났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친절하신 기사님은 한 번 더 오발탄을 날리셨습니다.


"그럼 아들만 셋인 건가요? 든든하시겠네요."


네 조금만 더 가면 목적지입니다.

계산하고, 내리고, 수고하시라는 인사만 드리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조금만 참으면 모두가 평화로운 하루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번 눈치 없는 녀석은 두 번도 그럴 수 있었습니다.


"쟤는 여자 앤 데요?"


눈치 없는 오지랖은 누굴 닮은 건지......


기사님은 더 이상 말이 없으셨습니다.

차 안에는 고요한 정적만 흘렀습니다.

세 사람은 불안과 민망함을 뿜어 내고 있었고

다른 세 사람은 아무 생각 없이 그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언제부턴가 아이들은 공공장소에서 엄마 아빠가 하는 말을 흡수하고 따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부는 소심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어디에서든 인사를 빼놓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막내를 제외하고 우리 모두는 내리면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기사님도 허리를 돌려 내리는 아이들에게 "잘 가요."라는 말과 함께 눈인사를 보내주셨습니다.

멀어지는 택시를 확인하고 부부는 한참을 웃었습니다.

아이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엄마 아빠를 멀뚱멀뚱 쳐다볼 뿐이었습니다.


괜찮았습니다.

우리 가족은 누구도 상처 받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우리 가족을 사랑스럽게 바라보신 그 눈빛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부부는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 순간을 떠올릴 때마다 웃음을 터뜨립니다.


'기사님 괜찮아요. 저희는 그 날 행복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한 그맘때 아이들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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