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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완 Sep 14. 2020

엄마와 여배우


엄마 아빠와 막내딸은 사이좋게 tv를 보고 있었습니다.

반가운 얼굴이 등장합니다.

배우 김희선입니다.

그녀도 세월의 폭탄을 맞았을 텐데 외모는 상처 하나 없이 아름답습니다.


드라마에 별 관심이 없는 남편은 

폰과 tv를 번갈아 보면서 딱히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반면 두 여인은 놀라운 집중력으로 여배우의 움직임을 뚫어져라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잠시 머뭇거리던 아내는 조심스럽게 한 마디 내뱉었습니다.

"혜원아 있잖아. 저 여배우.......

사실 엄마랑 같은 나이다."


뭘까요?

이 뜬금없는 고백은......

어쩌라는 걸까요? 

둘 사이에 존재하는 공통점이라야 태어난 년도 네 자릿수뿐인 것을......

어찌 비교하고 어찌 비슷하다 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남편도 이런 상황에 제법 능숙해졌습니다.

못 들은 척 초점 잃은 눈빛으로 핸드폰만 바라보았습니다.

혹시 나와 시선을 마주치게 되면 '으응? 뭐라고 했어?'라고 

되물을 다음 시나리오까지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꿀 같은 휴식시간에 던진 폭탄 같은 아내의 한마디가

터지지 않고 조용히 흐르기를 기도하며 딴청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네? 정말요?"


아, 눈치 없는 딸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터져 나오는 감탄사를 그대로 읊었습니다.

tv 앞은 정적이 흘렀고 딸아이의 표정은 충격과 공포를 그대로 담고 있었습니다.

'안 되겠다. 내 방으로 가야겠다.'

나라도 이 문제의 현장에서 탈출하고자 몸을 일으킬 때였습니다.


"그런데 연예인들은 이쁘게 하려고 돈을 많이 들여서 관리받고

화장하고 그러잖아요. 엄마도 그랬으면 비슷할 거예요."


'뭐지? 이 아름답고 은혜로운 분위기는?'


처음에 놀란 건 초등학교 4학년 어린아이의 임기응변, 

혹은 사회적응 능력이었습니다.

아마도 이 아이는 어른이 되어도 훌륭하게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번째 놀란 건 아내의 반응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는 놀랍고 뻔뻔하게도

"그렇지?"

라고 한 번 더 되물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아내의 반응이 조금만 늦었더라면 '그건 아니지.'라고 

터져 나오는 양심선언을 막아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내가 십 수년 함께 살아왔던 두 여인은 내 생각의 범위를 벗어나 있었습니다.

두 사람의 세계는 시간이 흐를수록 안드로메다 저 편으로 공간이동을 하는 것 같습니다.

나도 공간이동을 선택했습니다.

황급히 자리를 뜨면서 두 여인의 시선이 닿지 않을 때 즈음 마음속으로 외쳤습니다.


'김희선은 뭔 잘못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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