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이 남편에게 얘기합니다-9
‘난 아이 우는 거 절대 못 보겠어! 자기가 진료실에 데리고 들어가서 맞히고 나와.’
‘에휴…무슨 남자가 이래…’
00인 어렸을 때, 유난히 병원을 자주 들락거렸던 거 같아. 개월 수에 맞게 맞혀야 하는 예방접종은 기본이고, 19개월 만에 어린이 집을 간 덕분인지 감기와 기관지염, 비염 등을 달고 살며 수시로 병원을 들락거려야만 했어. 체질상 열에 약해 열이 올랐다 하면 40도가 넘어가고, 심하면 열 경련까지 일으켰으니까. 원인도 모르는 알레르기 반응도 있어서 영문도 모른 채 그날 저녁 알레르기가 올라오면 한밤중 응급실로 직행하는 경우도 허다했어.
그럴 때마다 몸부림치며 싫다고 발악하는 아이를 힘으로 누른 채, 주사를 맞히고, 약을 먹여야 하는 사람은 항상 나였어. 자기는 아이가 우는 걸 안쓰러워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다는 이유로 그 자리를 피했고. 어차피 아플 때마다 아이는 더더욱 내 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하니까 자기가 특별히 아이를 안을 일도 없었지.
응급실에서의 주사는 2대가 기본이고, 주사 외에 이런저런 약을 먹여야 할 때마다 안 먹겠다고 울고 불며 안간힘을 쓰면서 버티는 아이를 붙잡고 억지고 주사약이 들어갈 때까지 있는 힘을 다해 아이 몸을 누르고, 입안에 약을 넣고 나면 진이 나 빠져버려. 이 작은 아이의 몸에서 어찌 이런 힘이 생길까 신기할 정도로 말이야. 그와 비례해서 그 상황을 피해버리는 자기에 대한 원망은 커져갔어.
‘최소한 아이를 힘으로 붙잡고 있는 건 아빠가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무슨 남자가 이렇게 겁이 많은 거야. 아주버님이나 형부는 애들만 데리고 병원에 다녀온다는 데 너무하잖아…’ 병원에 다녀올 때마다 늘 이런 생각이 가득했어. 이런 생각이 가득한 상태로 아픈 아이를 챙기면서 자기한테 예쁜 말이 나오긴 아마도 힘들었을 거야.
그러다 재작년이었지. 아이 이마가 찢어졌을 때 말이야. 연말에 아는 지인의 집에서 12월 31일 마지막 밤을 즐기고 있을 때 말이야. 갑자기 00 이가 소파에서 떨어지면서 상 모서리에 이마를 부딪히는 바람에 이마가 찢어졌잖아. 00 이를 안고 응급실로 달려가 10 바늘 이상 봉합수술을 받는 아이를 지켜보면서 새해 첫 해를 맞이했고.
그날 수술 전 소독을 위해 그 큰 두 개의 주사 안에 들어있는 소독약이 모두 아이 이마에 쏟아부어질 때까지 아이를 붙잡고 있어야 했던 순간을 난 평생 잊을 수가 없어. 상처 난 부위에 소독약이 닿자마자 놀라 몸부림치는 아이를 내 손의 힘만으로는 부족하여 아예 내 몸을 아이 몸과 포개진 상태로 짓누른 채 소독이 끝날 때까지 버텨야 했지. 그 시간이 어찌나 길게만 느껴졌는지. 소독이 끝나고 내 얼굴이 벌게진 걸 느끼며 아이 상태를 살펴보니 진이 다 빠진 아이는 머리카락은 땀으로 흥건히 젖어있었고, 바지에는 오줌까지 지리고는 내 품에 안겨 엉엉 울었어. 머리에 난 상처 때문에 제대로 안아주지도 못해 어정쩡한 자세로 아이를 안고 나도 같이 울었고. 그때 주사실 커튼 밖에 있던 자기가 들어와서는 나랑 00 이를 토닥여 주었잖아.
아이의 수술 시간을 기다리며, 그리고 수술 후 아이가 마취에서 깨어나길 기다리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지쳐 앉아 있는데 문득 앉아있지도 못하고 수술실 앞에서 서성이는 자기가 보였어. 그리고 그날의 자기 행동이 떠올랐지.
사고 후, 처음 집 근처 대학 병원 응급실에 갔을 때, 의사는 00 이에게 간단한 응급처치만을 해주고는 ‘응급환자가 많아 4~5시간은 대기하고 있어야 합니다. 오늘은 성형전문의가 없어요. 성형 전문의에게 수술을 받으려면 다음날 아침까지 기다려야 합니다.’라는 말을 들었어. 난 겨우 아이를 달랜 후였기 때문에 지쳐 기진맥진한 채로 있었는데, 자긴 이리저리 전화로 걸며 성형전문의가 당직인 병원을 알아보더라.
결국 삼성병원으로 가면 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자기가 날 설득했잖아. 아이 얼굴의 난 상처인데 여기서 의미 없이 4-5시간 기다릴 동안 성형전문의를 찾아가서 수술시키자고. 난 기운도 없고 놀란 가슴이 겨우 진정된 상태라 새벽 1시가 다되어가는 그 시간에 40여분을 운전할 갈 자신이 없어서 거절했어. 하지만 자기는 집에 가서 아이 옷과 필요한 물건들을 챙겨 오더니 다시 날 설득하기 시작했어. 그때 자긴 술을 마신 상태라 운전이 힘들었으니까. 자기의 확고한 제안과 그 사이 어느 정도 마음도 진정된 난 자기 말을 따랐지.
삼성 병원으로 가서 접수를 하고 수술을 받기까지 2시간여를 기다린 끝에 성형 전문의에게 수술을 받을 수 있었어. 결과적으로 빨리 집에도 올 수 있었고 수술도 잘 되었지.
분명 자기도 같이 밤을 새우며 힘들었을 텐데 어디서 그런 에너지와 아이한테 필요한 것들을 챙겨야 한다는 생각을 했는지 신기하더라. 그날 성형 전문의를 찾아가지 않았다면 두고두고 아이한테 미안해하고 후회했을 수도 있어. 또 그때 자기가 아이의 여벌 옷을 챙겨 오지 않았으면 소독 후에 많이 불편했을 거야. 수술실에서 나오는 아이를 안쓰러워 어쩔 줄 몰라하고, 내가 아이만 돌볼 수 있도록 뒤에서 이것저것 일처리를 다 해주는 자기 모습이 그날 보이더라. 그동안 자기는 아이를 직접 붙잡고 있지는 않아도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나와 아이를 위해 뒤에서 최선을 다해 챙기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 내가 주사실에서 아이를 붙잡고 있을 때, 자기도 분명 커튼 뒤에서 기다리며 같이 힘들었을 거라는 걸 깨닫게 되었지.
드디어 작년부터는 자기가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다니기 시작했어. 그리고 더 놀라운 건 그 무서워하는 치과도 자기가 데리고 다닌다는 거야. 아이의 첫 이를 뽑을 때도, 아이 옆에는 내가 아닌 자기가 있었고. 겁이 많은 우리 00 이가 처음 치과를 가는 것도 이를 뽑는 것도 두려움에 힘들었을 텐데 그 순간을 당당히 아빠와 함께 해냈다는 사실이 너무 대견스럽고 기쁘네. 자기도 대단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