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기간에는 왜 야구를 보면 안 돼?

스스로 계획하는 공부

by 선율

난 중학교 입학하는 해부터 야구를 좋아하게 됐다. 정확히는 야구 중계를 보는 게 좋았다. 어떤 계기였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엄마와 친구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어렵다고 하는 야구 규칙을 알고, 용어를 이해하며 야구를 볼 줄 아는 내가 자랑스러웠다. 선수 하나하나를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했으며,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팀의 야구 경기를 관람하는 게 흥미로웠다.



문제는 시험기간 때였다. 그때에도 평일 저녁 6-9시에 하는 야구 중계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2~3과목씩 시험을 보는 기간 동안 하루 전날 하는 시험공부는 그에 따라 시험 결과가 크게 좌우될 만큼 중요하다. 그래서 보통, 전날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고 시험을 보고, 집에 와서는 낮잠을 조금 자고 일어난 후에, 다음날 볼 시험 과목을 공부한다. 그런데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자버리면 야구 시작 전까지 시험공부를 끝낼 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몇 번 고민을 하다 전략을 바꿨다. 낮잠을 자지 않기로 말이다. 다음날 공부를 바로 시작하기 위해서였다. 집에 와서부터 야구 시작 전인 6시까지 다음날 시험공부를 끝내기 위해 최대한 집중해서 공부를 하기로 했다. 처음엔 시험 끝나고 집에 오자마자 늘 해왔던 군것질을 하며 쉬고 싶은 마음에 몸이 근질근질했다. 하지만 야구를 보고 싶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꾹 참고, 공부를 시작했다. 막상 집중해서 해보니 충분히 6시까지 공부를 끝낼 수가 있었다. 처음으로 일찍 공부를 끝내고 저녁을 먹으며 여유 있게 야구 경기를 다 보았다. 경기가 끝난 후엔 이미 끝낸 공부를 한번 훑어보는 정도로만 마무리하고 일찍 잠자리에도 들었다. 내가 정한 계획을 지켰고, 그래서 좋아하는 야구 경기도 다 볼 수 있어서 뿌듯했다. 일찍 잔만큼 일찍 일어나 아침에도 한번 더 공부한 내용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생겼다.



결국 시험기간에는, 야구를 보지 않는 날조차도 이런 식으로 최대한 짧은 시간에 집중해서 공부하게 되었다.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다음날 낮잠 자고 저녁을 먹고서야 공부를 시작하던 친구는, 저녁 먹기 전에 이미 다음날 공부를 끝낸 날 늘 부러워했지만 내 방식을 따라 하진 못했다. 나처럼 확실한 목표가 없었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엄마는 나의 공부 방식에 대해 한 번도 참견하거나 더 좋은 방법을 제안해 준다거나 안 된다고 한 적이 없었다. 시험기간임에도 저녁시간에 여유 있게 티브이를 보고 있는 나한테 가끔씩, ‘시험공부는 다했니?’라고 물어보시고는 ‘응, 다했어.’라는 내 대답을 듣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한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중학교 때까지 학원을 다니지 않은 덕분에 시간 활용은 전적으로 나에게 달려있었다. 엄마가 정해준 공부 시간이 따로 없었기에 공부시간을 최소로 줄일수록 노는 시간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공부해야 할 것들을 알고 있으니 최대한 짧은 시간만 공부하기 위해서 집중하며 효율적으로 하는 공부 방법을 시도 했다. 혼자 시간 계획을 세우고 수정하면서 점차 나만의 공부 방식을 만들어 나갔다. 이렇게 해도 아무 문제없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있는 힘을 다해 계획대로 따라 하려고 노력했다. 그런 과정에서 나만의 방식이 만들어졌다. 동네 친구들보다, 학교 친구들보다 난 더 많이 놀고, 더 충분한 잠을 자면서도, 어느 정도 이상의 성적은 늘 나왔다. 난 늘 짧은 시간만 공부하고도 당당하게 놀 던 아이였고, 그와 비례해서 내 자존감도 커졌다.



내가 과연 내 아이를 우리 엄마가 그랬던 거처럼 믿고 지켜보기만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선뜻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은, 늘 내 눈에는 어리고 미숙하기만 한 아이에게 내가 살면서 알게 된, 내가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최고의 방법을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은 욕구가 수시로 쑥쑥 올라올 것만 같다. 엄만 그 당시 어떻게 그렇게 지켜보기만 할 수 있었을까. 엄마에게 물어본다.



'엄마, 엄마는 그때 왜 나한테 공부하라는 말을 한 번도 안 했어?'

'엄마는 중학교까지 밖에 안 나와서 솔직히 어떻게 해야 공부를 잘하는지 방법을 몰랐어. 그래서 딱히 해줄 말이 없었지. 그런데 가만히 지켜보니까 엄마가 아무 말 말 안 해도 너희들이 각자 다르게 알아서 잘하더라고. 네 언니는 국어를, 너는 수학을, 00는 영어를 좋아하는 것도 신기했지. 다른 집 엄마처럼 공부하라고 말 안 해도 너희들이 알아서 잘하니, 엄마 친구들이 자식들이 공부 안 해서, 못해서 속상하다고 하면서 엄마를 부러워하기도 했어. 놔두어도 알아서 잘하니까 잔소리할 필요가 없었어.'



‘놓아주는 엄마, 주도하는 아이.’라는 책에 보면 엄마가 알려주려고 하는 방법이 최선이고, 정답이라고 여기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아이에게 뭐가 정답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겸손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하길 바라고, 나아가 자기 인생은 스스로 책임지길 바란다면 어렸을 때부터 아이의 숙제, 공부, 친구관계까지 일일이 간섭하고 싶은 욕구를 버려야 한다고 얘기한다. 비록 시행착오를 겪기도 하고, 헤매는 모습을 보이더라도 아이가 스스로 자기 삶을 꾸려나가는 모습을 일관되게 믿고 지켜볼 수 있는 자제심과 평정심을 갖고 싶다. 아이가 커가는 내내 지금 이 마음을 변치 않고 가슴에 새기고 싶다. 난 정답을 알 수 없다. 겸손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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