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초등 공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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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시절,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길 딱 중간쯤에 보습학원이 있었다. 이름난 학원이 동네에 몇 개 없던 터라 누가 학원을 다닌다 하면 대부분 그 학원생이었다. 주요 과목을 모두 공부시켜 주는 이 학원 앞을 엄마 심부름 때문에, 혹은 친구를 만나기 위해 지나가기라도 하면 학원 쉬는 시간에 또는 수업을 마치고 나온 학교 친구들과 대부분 마주치곤 했다. 학원이 엄하고 숙제가 많기로 유명했기에 학교에서 쉬는 시간이나 자습시간마다 반 친구들이 그날의 학원 숙제를 하느라 헉헉대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한 번씩 나도 학원에 다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평상시에는 좋아하는 친구들과 학교 끝난 후에도 어울리고 싶었고, 학원 숙제가 많고 어렵다는 푸념에 나도 동참하며 친구들과 유대감을 갖고 싶었다. 시험기간이면 학원에서 제공해 준 깔끔하게 요약정리된 수첩을 가지고 공부하는 모습이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아주 가끔 했을 뿐이다. 일단 우리 집 사정상 나를 학원에 보내줄 수 없다는 걸 난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당시 학원비가 비싼 수준은 아니었지만 삼 형제 중 둘째 딸인 나까지 학원을 보낼 만큼 우리 집은 넉넉하지 못했다. 또, 시험기간마다 학원 스케줄에 맞춰 보충수업을 받은 뒤 나에게 전화하곤 했던 단짝 친구의 힘들어하는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 친구가 안쓰럽게 느껴졌고, 그럴 때마다 여유 있게 필요한 시험 준비만을 끝내고 집에서 편히 있다가 전화를 받는 내 상황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학원 보충 수업이 끝난 밤 9시부터 이제 못다 한 자기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한숨 쉬던 친구와 달리 난 늘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덕분에 다음날 맑은 정신으로 시험을 볼 수 있었다. 그 친구 포함, 학원 다니는 대부분의 친구들보다 난 늘 시험 성적이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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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아이들을 들여다본다. 중학교는 물론이고 초등 1학년부터 이미 학원을 다니는 아이가 대부분이다. 맞벌이라 어쩔 수 없이 시간 때우기 용으로라도 하나씩 학원을 보내다 보면 한 과목이 두 과목이 되고 세 과목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아이가 초등 저학년 때는 나름 문제집이나 학습지로 엄마표 교육을 하는 집들이 종종 눈에 보이지만 아이가 고학년만 되어도 주요 과목 학원을 다니지 않은 아이는 눈 씻고 찾아보기가 힘들다.
학원을 보내는 이유는 뭘까. 6~7살부터 시작된 교육에 대한 관심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아이 교육에 신경 써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다가온다. 아이가 공부를 잘하고 못하는 정도에 따라 부모, 특히 엄마의 자존감이 아이와 분리되지 못한 채 그에 맞춰 함께 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빠르면 5살부터 엄마는 아이의 공부습관을 잡아주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고 적당한 방법을 선택하여 아이와 공부를 시작한다. 문제집을 사서 규칙적으로 풀던지, 정기적으로 배송되는 학습지를 시작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매일 같은 시간에 아이의 공부를 봐주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야근을 할 수도 있고, 저녁 약속이 있을 수도 있다.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저녁시간에 술이 한 잔 생각날 수도 있다. 또, 엄마가 집에 없는 날은 무조건 하루 쉬는 날이 된다. 아빠랑 원하는 대로 미디어 시청을 하며, 좋아하는 인스턴트로 저녁을 때우고 자기 전까지 실컷 노는 날이 되는 것이다. 하루 이틀 공부를 빼먹다 보면 학습지와 문제집은 밀리기 시작하고, 처음 시작한 의욕은 사라진 채, 어느 순간 아이의 공부에 손을 놓게 된다. 워킹맘으로서 엄마표 공부는 엄마의 확고한 의지와 피나는 노력, 내 감정과 시간을 절제하고 희생하겠다는 결연한 각오가 없는 이상 꾸준히 지속하기는 너무나 어려운 숙제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학원 생각에 이르게 된다. 학원에서는 알아서 시간표를 짜주고 공부시켜준다. 엄마인 내가 고민하며, 머리 아프게 계획을 세우고, 아이와 얼굴 붉혀가며 공부해야 하는 부담을 학원이 대신해주니 얼마나 고맙고 편하고 마음이 놓이는 일인가. 전문가인 선생님들이 공부시켜 주니 아무래도 미숙하고 감정적인 나보다는 나을 테고, 친구들이 같이 공부하니 교우관계 면에서도 좋을 것이라고 믿는다. 난 일을 하니, 이 정도의 학원비는 나와 아이를 위해 충분히 투자할 수 있다고 마음을 다잡는다.
그래서 거의 대부분의 아이가 학원을 다닌다. 엄마 표 공부를 계획하고 관련 책과 정보를 뒤적이며 몇 번 시도해보다가는 결국 학원으로 방향을 잡는 게 당연한 순서처럼 보인다. 학원을 다녀온 아이는 엄마가 시킨 일을 했으니 집에 와서는 맘 편히 게임과 영상과 노는 것을 당당히 할 수 있다. 엄마도 학원까지 가서 힘들게 공부하다 온 아이에게 굳이 집에서까지 공부하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학원비만 부담하면 엄마도 아이도 다 행복해진다. 아이를 학원에 보냄으로써 공부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처럼 보인다. 드디어 가정에 평화가 찾아오는 것 같다. 초등 저학년 때까지는 진짜 그런 것처럼 보인다.
학원은 한번 다니기 시작하면 웬만해선 끊을 수 없다. 왜 끊을 수가 없을까. 내가 스스로 공부를 계획하고 실행한 후 성취감을 맛보는 경험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혼자 공부하는 아이들은 경험상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친다.
내 상황과 특성에 맞게 필요한 공부를 선택하고 결정한다.
->주어진 시간에 맞게 공부 시간을 배분한다.
->내가 세운 계획에 따라 공부한 후, 시험을 보고, 결과를 확인한다.
->다음 시험에서는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부족한 부분을 고려하여 다시 공부 계획을 세우고 그에 따른 결과를 확인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필요한 공부만을 스스로 판단하고 효율적으로 하는 능력을 습득하게 되는데 학원을 다니면 그러한 과정을 경험할 기회가 없다.
학원에서 하라는 대로, 학원 시간표에 맞게 공부하다 보면, 공부는 수동적으로 정해진 시간 동안만 누가 시키는 것만 하는 것이 되어버린다. 아는 부분은 건너뛰고, 모르는 부분은 좀 더 자세히 시간을 들여야 하는데 그렇게 해볼 기회도 시간도 없고, 그럴 필요성조차 아이는 느끼지 못한다. 처음부터 학원과 함께한 아이들은 처음에야 친구 따라 놀이하듯 재미있게 학원을 다닌다. 어릴 때야 엄마 말을 잘 듣고, 공부든 숙제든 해야 할 양이 적으니 시키는 대로 열심히 한다. 초등 저학년 때가 가장 학원의 효과가 뚜렷이 나타난다고 하니, 엄마 입장에서는 아이를 학원에 보냄으로써 아이가 똑똑해져 보이고, 아는 것도 많아지는 모습을 확연히 눈으로 볼 수 있게 된다. 눈으로 확인한 이상, 이대로 학원만 잘 보내면 아이 공부는 아무런 문제가 없겠거니 하는 착각에 빠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스스로 공부 계획을 세워서 하지 않는 아이는 커갈수록 공부할 과목들이 점점 많아지고 이와 비례해서 공부 양과 학원 숙제까지 많아지는 순간 너무나 자연스럽게 공부에 흥미가 떨어지고 하기가 싫어진다. 본격적인 사춘기가 되고 자아에 대해 인식하고 독립을 부르짖는 나이가 되면 이런 수동적인 공부 방식은 먹히지 않는다. 늘어난 과목을 내 실력에 맞게 취사선택해서 공부를 해야 하는데 아이는 자기에게 꼭 맞는 계획을 짜서 하는 공부를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으니 절대적으로 늘어난 공부 양을 마주할 때, 답답하기만 하다. 하지만 학원에서 제시해주는 방법(나한테 꼭 맞는 방법은 아니고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제시하는 표준적인 공부법)으로부터 벗어날 방법은 없다.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절대적으로 많은 양의 공부를 해야 하기에 성적이 떨어지는 경우가 훨씬 많다. 아무것도 모른 채, 떨어지는 성적만을 가지고 얘기하는 엄마 말은 듣기 싫고 반항하고만 싶어 진다. 엄마 말에 반항하기 위해 아이는 학원을 안 다니겠다는 고집을 부려보기도 한다. 막상 학원을 안 다니면, 아무리 본인은 잘하고 싶어도 공부 방법을 모르니, 어렵고 두렵기만 하다. 생각한 대로 안되니 짜증과 불안함이 가득하고 그 속에 사춘기를 보내는 아이는 언제 어디로 빗나갈지 몰라 위태롭다. 어렸을 때는 착하기만 하고 순둥순둥 하던, 엄마 말 잘 듣고 공부 잘하던 아이가 사춘기 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성적도, 성격도 돌변하는 모습을 엄마 입장에서는 이해도 안 되고 지켜보기도 힘들다. 최악의 상황은 아이의 공부뿐만 아니라 아이와의 관계까지도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지금부터 무엇을 우선순위로 두고 시작해야 할까.
여기까지 쓰고 보니 나는 뭐 대단한 확신을 가지고 아이를 절대 학원에 보내지 않아야지 결심한 사람처럼 보인다. 전혀 그렇지 않다. 아이가 6살 때 어린이집 선생님 조언을 듣고 문제집을 사서 아이 한글 공부를 시작했고, 좋다는 수학 연산 문제집을 사서 풀게 한 적도 있다. 7살 때는 독서와 학습을 위해 스마트 패드를 이용해서 하는 학습지를 시작하기도 했다. 학창 시절 나 또한 필요한 학원을 다녔었고, 우리 아이 또한 때가 되면 학원에 보낼 것이 분명하다. 늘 시간이 부족한 가운데, 아이 교육에 관심은 많지만 확신은 없고, 그래서 이리저리 팔랑귀를 흔들거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지극히 평범한 워킹맘 중 하나가 나일뿐이다.
어떻게 하면 아이가 즐겁고 행복하게 공부를 할 수 있을지를 우선순위로 두고 늘 고민하며 열심히 공부하는 중이다. 공부와 고민은 계속되고 있다. 학원만 안 보낸다고 해서 모든 게 해결되는 건 절대 아니다. 그보다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를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다(다음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