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고 싶은 선배
초등학교 3, 4학년쯤 주산학원을 잠깐 다녔다. 학원에서는 학년과 상관없이 수준에 맞는 급수 별로 문제집이 주어진다. 그럼 주판을 이용해서 매일 일정 분량만큼 문제를 풀고, 이렇게 문제집 하나가 끝나면 다음 급수로 올라간다. 수업은 선생님이 정해준 그날의 문제를 다 풀고, 채점을 하고, 틀린 문제를 확인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같은 수업 시간에 꼭 같은 학년만 있을 필요가 없다. 나보다 어린 동생들, 언니, 오빠들과 한 교실에서 각자 자기 급수에 맞는 문제를 풀곤 했다.
처음엔, 주판을 이용해서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 문제를 풀어내는 과정이 신기했다. 수학 연산 문제를 지루하게 푸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점, 그리고 한번 앉아서 풀기 시작하면 꽤 많은 양의 문제를 풀어낼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주판을 사용하면서 저절로 익혀진 숫자에 대한 개념과 기억력은 학교 시험 문제를 풀 때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가끔씩은 문제를 푸는 것에 지루함을 느낄 때도 있었다. 문제만 빼곡히 있는 문제집을 푸는 일이 항상 즐거울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이런 지루함을 견디게 하고, 다시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만들어 주는 시간이 있었으니,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수업 끝나기 10분 전쯤에 시작되는 암산 시간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 시간이 되면 선생님은 학원 교실에 앉아 있는 아이들 모두에게 암산 문제를 냈다. 문제는 4~5개 정도 되는데 시작한다는 말과 함께 빠른 속도로 최대 백만 자리의 숫자를 쉴 새 없이 연달아서 불러주신다. 처음엔 4~5자리 수 마지막엔 7~8자리 수까지 커진 수들을 더하기와 빼기를 적절히 섞어서 부르시면 마지막 숫자를 부르는 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선배들은 암산을 끝내고 답을 외친다.
와…. 볼 때마다 신기하고 그렇게 빨리 그렇게 큰 숫자를 더하고, 빼서 답을 말하는 선배들이 너무 대단해 보였다. 문제를 풀고 대답하는 사람은 높은 급수를 가진 2~3명의 선배들밖에 없다. 암산을 할 수 없는, 나를 포함 대부분의 낮은 급수의 아이들은 그저 멍하니 대답하는 선배들을 바라볼 뿐이다. 난 부러운 마음에 속으로 몇 번 암산을 시도해 보았지만 두, 세 번 숫자를 열심히 더해보다가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그런 실력을 갖추고 싶었다. 그런 암산 실력을 갖춘다면 어떤 수학 문제도 무서울 게 없을 거 같았다. 매번 입을 헤 벌리고 부러운 눈으로 선배들을 쳐다보는 나에게 학원 선생님은 큰 숫자를 빠르게 암산하는 것은 처음엔 어려운 일이지만, 주판을 머릿속으로 그린 후, 실제 주판을 사용하여 계산하는 것처럼 머릿속으로 하는 연습을 꾸준히 하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알려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일부러 아래 급수 친구들에게 자극을 주고 목표를 주기 위해 선배들의 뛰어난 암산 실력을 보게 해 준 게 아닌가 싶다. 최소한 나한테는 자극을 주셨으니 그 방법은 성공한 셈이다.
그 모습을 본 후부터 난 정말 열심히 주판 연습을 했다. 주판의 특성상 더해서 5가 되는 수들, 더해서 10이 되는 수들을 자유자재로 반사적으로 떠올리고, 이런 수들을 여러 단계 기억을 하고 차례대로 주판에 적용하는 과정을 얼마나 빠르게 하느냐에 따라 계산 속도가 결정된다. 익숙해지고 속도가 빨라지려면 반복해서 다양한 수를 연습하는 수밖에는 없다.
주판에 익숙해지기 위해 가장 좋은 연습방법은 1에서 100까지 더해보는 것이다. 처음 주판을 접하는 학생에게는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집중력이 부족한 상태에서는 답을 떠나 한번 앉은자리에서 1부터 100까지 더해보는 거 자체가 일단 힘들었다. 어찌해서 겨우 100까지 더해도 정답인 5050이 아닌 엉뚱한 숫자가 나왔다. 처음이니 당연한 결과였다. 난 학원에서도, 집에서도, 학교 쉬는 시간에도 주판을 가지고 다니며 이걸 연습했다. 걸어 다닐 때는 주판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연습했다. 처음 5050이 주판에 떡 하니 나온 그 순간은 너무 기뻐 어쩔 줄 몰랐다. 해냈다는 뿌듯함과 나도 조금만 더 연습하면 학원 선배들처럼 그런 암산을 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으로 행복했다. 그 뒤로는 점점 더하는 속도도 빨라지고, 오답이 나오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비록 집안 사정으로 학원을 다닌 기간이 짧아 학원 선배들처럼 백만 단위의 숫자를 암산해 내는 실력까지 가진 못했지만 그 당시 연산만큼은 내 또래 어느 누구보다 잘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워킹맘으로서 롤모델을 찾고 싶었다. 시어머니에게 아이의 등 하원을 부탁하는 상황에서 어머니와의 관계는 힘들기만 했고, 남편과는 육아와 집안일로 싸우는 일이 허다했다. 같은 시간 일하고 퇴근했는데 한시도 떨어지려고 하지 않는 아이는 언제나 내 몫이었다. 힘들었고 억울했고 속상했다. 다들 어떻게 이렇게 일을 하며 아이를 키우며 사는지. 이 시기를 다 이겨내고 나이가 들어서도 멋지게 회사생활을 하는 선배가 회사에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재 모습을 보고 따라 할, 이런 시간을 보내도 나중엔 다 잘될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는 누군가의 존재가 절실했다. 하지만 회사엔 아무도 없었다. 작은 회사에서 업무 특성상 여자 숫자는 너무 작고, 더군다나 워킹맘은 아무도 없었다. 주위 친구, 언니, 여러 지인들 중에서도 딱히 닮고 싶은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선망의 워킹맘 롤모델이 옆에 있었다면 찾아가 물어도 보고 위로도 얻고 조언도 들으면서 훨씬 더 쉽게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도 생각한다.
무슨 일을 처음 시작할 때의 미숙함과 어려움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갖게 된다. 익숙하지 않고, 잘하지 못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럴 때, 이미 그런 과정을 먼저 다 보내고 지금은 당당히 빛나고 있는 선배가 곁에 있다면, 눈으로 보이는 선배의 현재 모습을 목표로 삼아 당장은 힘든 그 과정을 견디어 내는데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아이가 힘들고 재미없는 공부를 할 때도 이런 선배가 아이 곁에 있기를 바란다. 형제가 있다면 형, 누나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텐데 외동인 우리 아이는 아쉽지만 그럴 수가 없다. 그래서 의도적으로라도 마음에 맞는 선배를 만날 기회를 만들어 주고 싶다. 좋아하는 친척 형을 자주 만나게 하고, 같은 또래뿐만 아니라 형이나 누나들을 만날 수 있는 학원을 보내고, 여러 연령대가 모이는 스포츠 활동을 하게끔 도와주려 한다. 나중에는 대학생 과외를 붙여주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꼭 성적 향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가 힘들어도 따라 할 수 있는 계기와 목표를 만들어 준다는 의미에서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물론 선배를 만나서 목표를 세우고 힘든 과정을 꿋꿋이 견뎌내는 건 아이 몫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