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사랑 수학선생님

유대감 맺기

by 선율

-------------------------------------------------------------------------------------------------------------------------중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수학 선생님이셨다. 나이는 30대 초반으로 진한 눈썹과 우렁찬 목소리를 갖고 계셨다. 지금 생각해도 꽤 잘생긴 얼굴이었고, 분필을 잡고 계신 손가락에 조차에도 털이 많았던 선생님을 난 무척 좋아했다. 비록, 선생님은 키도 작았고 한쪽 다리도 불편하셨지만 그런 건 나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작은 체구와는 달리 수업에 대한 열정만큼은 어느 다른 과목의 선생님보다도 차고 넘치셨기 때문이다.


수업 중에는 늘 색색의 분필을 다섯 손가락 사이사이에 모두 끼운 채 손바닥 전체와 팔 토시까지 분필 가루를 수북이 묻혀가며 열정적으로 필기와 설명을 위한 판서를 하셨다. 특히 필기한 내용을 설명해주실 때는 옆 반 교실까지 들릴 정도로 특유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내셨는데 그 덕분에 우리에겐 졸음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다. 한 여름 더위로 교실 문을 활짝 다 열고 젖히고 수업을 할 때면, 옆 반 어디에서 수학 수업을 하는지 까지 다 알 수 있을 만큼 선생님 목소리는 크고 에너지가 넘쳤다. 맨 끝, 맨 뒤에 앉아있는 아이 이름까지도 늘 챙겨 불러주시면서 주위를 집중시키곤 하셨기에 우린 이름이 불릴까 봐 어쩔 수 없이라도 수업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수업 중 문제를 스스로 풀어볼 시간을 주실 때면 교실 전체를 돌아다니시면서 문제풀이를 어려워하는 학생들을 도와주시기도 했다.


중학교 들어오면서 한층 어려워진 수학 앞에서 아이들은 하나 둘 수학에 흥미를 잃어간다. 하지만 이럴 때, 선생님은 젊고 열정 넘치는 남자 선생님으로서 할 수 있는 특유의 장점을 맘껏 뽐내며 아이들의 수학 공부를 챙겨주셨고, 난 그때 그런 선생님의 모습에 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주일에 4번씩 있는 수학 시간, 누구는 왜 이렇게 자주 수학 수업이 있느냐고 불평했겠지만 난 왜 매일 수학 수업이 없는지가 불만이었다. 수학 시간이 없는 요일은 하루 중, 아침과 오후에 잠깐씩만 교실 앞에서 필요한 몇 마디만 하고 가버리시는 선생님을 보는 게 다였기 때문이었다. 선생님을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얘기하고 싶었다.


수업시간에는 열정적으로 설명을 해주시는 선생님을 대놓고 뚫어져라 쳐다볼 수 있어서 좋았다. 선생님이 문제 풀이를 시키고 책상 사이사이를 돌아다닐 실 때는, 난 선생님이 어디에 서 계시고 누구랑 같이 얘기하고 있는지를 계속 눈으로 따라가며 쳐다보았다. 선생님 발소리를 듣고 내 근처에 오셨다는 걸 알게 되면 그때부턴 가슴이 두근거리고 선생님을 의식하느라 문제도 제대로 풀 수 없었다. 내 곁을 지나 멀어지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그제야 안심하며 고개를 들고 다시 선생님의 모습을 쳐다볼 뿐이었다.


학기초에 몇 번 교무실을 가야 하는 일이 생겼는데, 교무실을 가는 일이 이렇게 좋은 것인 줄 몰랐다. 교무실에 가면 다른 아이들의 눈을 의식하거나 방해 없이 선생님의 얼굴과 목소리를 실컷 보고 들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교무실에 갈 일이 생길 때면 혼자 설레는 마음으로 교무실 문을 열고 선생님을 쳐다보곤 했다. 그러나 교무실에 갈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결국 난 교무실에 갈 기회를 만들기 시작했다. 문제학생이 아닌 이상 교무실에 가서 선생님과 얘기할 기회는 모르는 문제를 들고 찾아가는 것 밖에는 없었다. 다른 아이들도 다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정말 어려워서 못 풀겠다는 표정으로 자주 문제집을 들고 교무실을 들락거렸다. 선생님 옆자리에 앉아 선생님 목소리를 가까이서 들으며 선생님을 독차지하고 문제 설명을 듣는 시간이 좋았다. 다른 아이들은 갖지 못하는 선생님과 나만이 공유하는 기억이 쌓인다고 생각하니 가슴 뿌듯했다.


쉬는 시간, 운이 좋아 지나가다가 수업이 끝나고 나오시는 선생님과 마주쳐서 한마디라도 선생님과 이야기하는 날은 하루 종일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점점 그런 마주침도 계획적으로 만들었다. 옆 반 수업 수학 시간표를 알아내어 수업이 끝나고 복도에서 걸어가시는 선생님과 일부러 마주쳐 우연인 척 인사하는 것, 그것이 내가 계획한 일의 전부였지만 난 행복했고, 그 일을 반복했다.


순수하다면 할 수 있고, 그래서 너무 뻔했던 나의 이런 의도적인 행동을 선생님이 모르셨을 리가 없지만 감사하게도 선생님은 늘 만날 때마다 환한 미소와 이런저런 말을 걸어 주심으로써 선생님과 만난 날은 충분히 하루 종일 내가 행복할 수 있도록 날 대해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귀찮았을 법도 한데 그렇게 진심으로 날 대해 주신 선생님 덕분에 난 중학교 때 수학 공부를 다른 어떤 과목보다도 더 열심히 공부했다. 다른 과목은 잘해도 누가 알아봐 주는 사람이 없지만, 수학만큼은 늘 선생님이 관심 가져주고, 날 지켜보고 계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선생님께 더 잘 보이기 위해, 수업시간에 문제를 푸는 대신 선생님을 맘껏 생각하고 쳐다보기 위해, 더 어려운 문제를 찾아 선생님께 질문하기 위해, 시험을 잘 보아서 선생님이 날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하고 기억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해, 난 중학교 3년 내내 정말 열심히 수학을 예습했고, 공부했고, 시험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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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감이란 타인과 연결되어 있고 관심받고 있다는 느낌이라고 한다. 아이가 선생님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낄 때 아이는 그 과목을 열심히 공부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드는 것은 바로 이 유대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과목의 선생님께 이런 유대감을 갖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더구나 요즈음은 코로나 때문에라도 더더욱 선생님과 아이가 유대감을 가질 기회를 갖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며칠 전 초등학교 1학년 아이의 공개 수업을 줌을 통해서 참여했다. 카메라 속 교실 풍경에서는 짝꿍도 없이 1인 책상에 일정한 간격으로 띄어 앉은 아이들이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1인 책상 앞과 옆은 아크릴 가림막이 비록 투명이라 할지라도 답답함을 느끼기 충분할 만큼 높게 가려져 있었다. 거기다 각자 마스크를 쓰고 있느라, 이미 단지 내 놀이터나 학원을 통해 얼굴을 알고 있던 몇몇 아이조차도 얼굴을 찾기가 힘들었다. 아이들 앞에서 열심히 수업을 하시는 선생님은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생생한 얼굴 표정과 미세한 감정을 느끼기 힘들어 보였고 아직 듣기와 말하기에 미숙한 아이들은 선생님의 입 모양을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선생님의 말씀과 의도를 온전히 알아듣기가 어려워 보였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집중력이 떨어지며 금세 지루함을 느끼는 듯, 몸을 비비 꼬고 선생님 말씀과 수업에 참여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물론 학교 수업에 적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1학년 친구들이라는 점도 있겠지만 그런 교실 환경에서는 친구들과 선생님과 유대감이라는 걸 쌓기는 어려워만 보였다.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지난 한 달여 동안 앱을 통해 전달되는 알림장에는 ‘급식시간 마스크를 벗을 때는 친구들과 대화하지 않기’라는 문장이 계속 보였으니, 짝꿍도 없이 혼자서 자리에 앉은 아이들은 수업시간에도 쉬는 시간에도, 점심시간조차도 선생님은커녕 친구들과 제대로 장난치며 대화하며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선생님과 친구들과 가까이서 대화하며 사람 냄새를 느끼고 관계를 맺으며 학교 생활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지난 한 달 내내 아이는 학교에 가기 싫다는 말로 날 당황하게 만들었다. 코로나로 인한 지난 2년여 동안 이런 환경에서 학교에 다니며 선생님, 친구들과 유대감을 제대로 쌓지 못한 아이들은 분명 공부면에서도 코로나 전, 그렇지 않았던 아이들에 비해 손해를 보았음이 틀림없다.


이제 코로나로 인한 거리 두기도 해제될 예정이고, 야외에서는 일정 조건에서 마스크도 벗을 수 있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함께하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환경이 다시 만들어지는 거 같아서 너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주어진 환경에서 주위 사람들과 유대감을 쌓을 수 있도록 부모로서 환경을 만들어주고 도와준다면, 아이의 정서적인 면은 물론이고, 스스로 공부하려는 의지를 키우는 데 확실한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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