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감 키우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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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2학년 시절, 이때 담임 선생님은 수시로 수학 과목만 쪽지시험을 보게 하셨다. 예고 없이 치러지는 시험이었지만 수학 한 단원의 진도가 끝날 때쯤 보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시험 보는 시기를 예상은 할 수 있었다. ‘시험 본다.’라는 선생님 말씀이 들리면, 우리는 올 것이 왔다는 심정으로 자연스럽게 가림 판을 꺼내 책상 중간에 올려놓았다. 짝꿍과 서로서로의 시험지를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준비가 끝나면, 선생님은 수학 문제가 프린트된 시험지를 한 장 나눠주시고 우린 각자 자리에 앉은 채 차례로 건네받은 시험지를 조용히 풀었다. 15~20분 정도 걸리는 이런 간이 쪽지 시험을 그래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부터는 반 친구들 모두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물론 선생님이 ‘시험 보자’라는 말을 하실 때마다 ‘어~휴~’하며 싫은 소리를 습관적으로 내뱉은 건 학년이 끝날 때까지도 계속되었지만 말이다.
문제는 선생님이 정답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데 있었다. 쪽지 시험이 끝나고 채점 시간이 되면 선생님은 앞에 있던 아이 중 한 명의 답안지를 집어 들고, 그 아이의 답을 불러주셨다. 그럼 나머지 아이들은 선생님이 불러 주시는 그 아이의 답을 듣고 짝꿍과 맞바꾼 시험지를 채점했다. 그러다 뭔가 답이 이상하다 싶으면 몇몇 아이들이 웅성거렸고, 이내 용기 있는 아이가 큰 소리고 말을 한다.
‘선생님 4번 답이 이상해요!’
그럼 선생님은 그 문제를 직접 풀어서 답을 확인한 후 틀린 답을 정정해 주셨다. 답이 여러 번 틀리는 날에는 선생님이 채점 중간, 다른 아이의 답안지로 바꾼 후, 이어서 답을 불러주시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상시처럼 채점 시간에 한두 번의 시험지가 바뀌면서 답이 불려지고 있을 때였다. 어느 순간 선생님이 내 시험지를 들고 답을 불러주시기 시작했다. 중간부터 시작된 내 답은 다행히 마지막 문제까지 틀린 답이 없었고, 그렇게 그날은 채점이 끝났다. 학기 초였고, 아이들은 아무 신경도 쓰지 않았지만 부끄럼 많던 난 혼자 너무나 기쁘고 뿌듯한 마음에 집에 달려오자마자 엄마한테 이 사실을 알렸다. 비록 중간부터 내 답이 불리긴 했지만 마지막까지 틀린 답이 없었고, 선생님이 잘했다고 칭찬해 주셨다는 이야기를 신이 나서 무용담처럼 엄마한테 얘기했다. 엄마는 나처럼 같이 기뻐해 주셨을 뿐이다.
그다음 번 쪽지시험 후 어김없이 돌아온 채점 시간, 선생님은 어느 답안지를 고를까 둘러보시다가 나랑 눈이 마주치고는 이내 날 기억하셨는지 내 답안지를 처음부터 집어 들고 답을 부르기 시작하셨다.
‘아… 어떻게… 혹시 틀린 답이 나오면 어쩌지…그럼 너무 창피할 거 같은데…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복습 좀 많이 해둘 걸…’
20여 문제의 내 답이 불려지는 시간 동안 내 마음은 걱정과 불안함으로 안절부절못했다. 하지만 운이 좋게도 그날은 처음부터 끝까지 답안지 교체 없이 내 답안지로만 채점이 끝났고, 채점이 끝나고서야 나는 긴장을 풀어놓을 수 있었다.
그 뒤로, 수학 쪽지시험을 채점할 때면, 선생님은 으레 내 답안지를 집어 들고 답을 불러주셨다. 몇 번 이런 일이 반복된 후부터는 아이들한테 내 답안지가 정답지처럼 여겨지기까지 했다. 채점이 무사히 끝나는 그 순간, 겉으로는 아이들 앞에서 이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었지만 속으로는 한없이 의기양양해지고 뛸 듯이 기분 좋았던 그때를 난 아직도 기억이 난다.
동시에, 매번 그 순간의 기쁨을 느끼기 위해 아이들 모르게 그 누구보다 열심히 수학 공부를 했던 것도 기억난다. 쪽지 시험 때마다 한 반 50여 명의 아이들이 혹시 내 답이 틀리지 않았는지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하고 있다는 걸 아는 이상, 부담감과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언제 볼지 모르는 쪽지시험에서 틀린 답이 불려지지 않기 위해, 평상시 수학 교과서를 공부하고 복습하고 문제 푸는 연습을 했다. 공부가 안 되어 있는 상태에서 맘 졸이며 불안한 마음으로 채점 시간을 기다리는 경험을 다시는 하기 싫었고, 내 답안지로 무사히 채점이 끝났을 때의 그 기쁨과 희열을 계속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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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니, 이제 공부 습관을 잡아 주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다고 아이와 매일 씨름하며 억지로 공부시키긴 싫고, 그럼 어떻게 아이가 스스로 공부를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거쳐 결국 어떻게 아이가 자존감을 갖게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까지 이르렀다. 육아 전문가 오은영 박사님 책에 보면 자존감을 이렇게 정의한다.
‘어떤 상황이라도 스스로가 사랑받고 귀중하게 여겨질 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라고 느끼는 것과 어떤 일을 하면 잘해 낼 수 있다고 믿는, 기본적으로 자기 능력에 대한 확신의 총합이다.’
내가 생각하는 자존감이 있는 아이란, 집에서 인정받고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기본으로 가지고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는 상태에서 뭔가가 아이 앞에 놓였을 때, 아이가 ‘이 정도는 내가 할 수 있겠다, 노력하면 할만하다.’의 생각을 하는 아이 정도로 정의해 본다.
아이를 정서적으로 지지하고 믿어주는 건 요즘 엄마들은 대부분 잘하고 있다고 본다. 나처럼 외동인 아이를 키우는 집도 많다 보니 집중적으로 사랑을 듬뿍 줄 수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형제자매를 키우는 주위 엄마들의 모습을 옆에서 보면 아이들에게 충분히 넘칠 만큼의 사랑을 주는 걸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요즘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무슨 일이 주어졌을 때 자기 능력을 믿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 일이고, 이 자신감을 어떻게 키워줄 수 있는지를 고민해 봐야 한다.
어린 시절 경험을 떠올리면서 자신감은 뭔가를 성취하거나 성공해서 느껴본 기분 좋은 감정으로부터 나온다는 걸 깨닫는다. 운이 좋게 우연히 백점을 받은 후 느껴봤던 뿌듯함을 계속 느끼고 싶다는 욕구가 꾸준히 수학 공부를 하게 만드는 힘이 되고, 그러다 보니 수학은 더 잘하게 되고, 점점 자신감이 생긴다. 그로 인해 더 공부하게 되는 선순환이 이루어진다. 처음, 그 짜릿한 느낌을 경험하는 것이 이런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출발점이다. 상대적으로 다른 과목에서는 그런 경험을 하지 않았기에 스스로 공부할 생각을 못했던 걸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우리 아이에게도 이런 경험을 주고 싶다. 우연히라도 스스로 이런 경험을 하면 좋겠지만 그게 어렵다면 내가 의도적으로라도 만들어 주고 싶다. 뭔가의 작은 성공 경험을 통해 느껴본 뿌듯한 감정은 계속해서 스스로 해내겠다는 욕구로 이어지고 자신감을 갖게 한다. 이것이야 말로 하기 싫고 힘든 공부를 묵묵히 해내는 비법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