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구단 외우기

수학을 싫어하는 아이에게 필요한 것

by 선율

-------------------------------------------------------------------------------------------------------------------------시골에 살았던 막내 외삼촌이 재수생이었던 시절, 학원과 입시 공부를 위해 서울 우리 집에 1년 정도 같이 살았던 적이 있다. 내가 7살 때였으니, 4살 동생과 나, 9살 언니가 있고 방도 2개뿐이었던 우리 집은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은 결코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 당시 시골에 살다가 유명한 학원을 다니기 위해 서울로 올라온 삼촌으로서는 서울에 아는 사람이 큰 누나인 우리 엄마밖에 없었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매일 아침 일찍 나갔다가 늦게 들어오는 삼촌이었기에 난 평상시에는 삼촌을 볼 수가 없었다. 가끔, 밤늦게 뒤척이다가 스탠드 불빛이 느껴지는 바람에 눈을 뜨면 작은방 구석 책상에 앉아 있던 삼촌의 뒷모습을 가끔 볼 수 있었을 뿐이었다. 삼촌과 놀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던 난, 가끔 삼촌이 쉬는 날 집에 있을 때면 드디어 놀 수 있다는 기대감에 삼촌에게 다가가 장난을 치고 매달렸다. 놀아달라고, 장난을 받아달라고, 또 삼촌 정도는 내가 어떻게든, 힘으로든 순발력으로든 이길 수 있다는 생각에 삼촌을 귀찮게만 했다. 모처럼 쉬는 날인데 밀린 공부도 하고, 쉬면서 시간을 보냈고 싶었던 삼촌은 그런 내가 엄청 귀찮았을 것이다. 그러기에 내 장난을 거절하고 외면하고 결국 화를 내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러면 어느 순간 내가 울어버리고 엄마는 삼촌 귀찮게 한다고 날 혼내고, 삼촌은 미안해하고…그런 날이 반복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삼촌은 여전히 삼촌을 귀찮게 하던 나에게 난데없이 구구단을 아냐고 물어보았다. 모른다는 내 대답을 기다렸다는 듯이 구구단이 적힌 종이를 내밀더니 삼촌은 오늘부터 한 단씩 외우는 거라면서 다 외우면 조금 놀아주겠다는 말을 했다. 이게 뭔가 싶어 얼떨결에 그러겠다고 대답했고, 그래서 그날부터 난 매일 하루에 한 단씩 구구단을 외우기로 했다.


처음 목적은 무엇보다 삼촌과 놀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한 줄 한 줄 외우다 보니 리듬에 맞춰 구구단을 외우는 게 할 만하기도 했고 노래 부르는 것처럼 재미도 있었다. 그리고 한 단을 다 외우고 났을 때 삼촌의 폭풍 칭찬 덕에 내가 뭔가 대단한 걸 해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뿌듯했다.


하루 종일 삼촌이 학원에서 공부할 동안, 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집에서 왔다 갔다 하며 혼자 열심히 구구단을 외웠다. 첫날은 2단, 두 번째 날은 2단 복습과 3단, 셋째 날은 2,3단 복습과 4단을 외워나갔다. 학원에서 돌아오면 삼촌은 제일 먼저 날 불러 구구단을 외웠는지부터 확인했다. 외우다 틀리면 여지없이 꿀밤이 날아왔다. 그런 날은 자존심은 상한 채로, 약속도 지켜야 했기에 삼촌에게 장난을 치거나 다가가지 못한 채 혼자 씩씩거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떠듬거리더라도 복습과 함께 그날 외울 부분을 제대로 잘 외웠을 때는 삼촌으로부터 잘했다는 말과 함께 과하다 싶을 정도의 칭찬과 박수가 충분히 주어졌다. 7살에 매일 한단 씩 혼자 알아서 외우는 일이 지루하기도 하고,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 칭찬과 뿌듯한 기분, 인정받았단 느낌 덕분에 매일매일 외우기를 지속했다. 해냈다는 기분 좋은 성취감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외워 나갈 힘을 만들어 준 것이다.


하루에 한 단씩, 9단까지 다 외우고 나서 의기양양해진 나에게 삼촌은 바로 다음 단계의 문제를 냈다.


“8x7=?, 5X6=?, 7X5=?”


9단까지 외우고 나서 이제 드디어 끝났구나 싶던 나에게 갑자기 머릿속을 하얗게 만드는 질문이었다. 순서대로 외우기만 했던 나에게는 이런 무작위 질문에 당연히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삼촌은 그런 날 다시 돌려보냈고, 난 또 연습할 수밖에 없었다. 무작위 질문은 너무 어려웠다. 한참을 연습해도 간간히 대답하는 정도니 점점 오기가 생기고 바싹 약이 올랐다. 9단까지 분명 다 외웠는데 왜 바로바로 답이 안 나오는지 답답하기만 했다. 그제야 언제 어느 단의 몇 번째 구구단이 와도 바로 대답할 수 있는 수준이 된다는 건 2-9단까지 차례로 구구단을 외우는 것보다 몇 배로 더 어렵고 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걸 깨달았다. 결국 하나씩 차근차근 다시 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그렇게 다시 연습하면서 생각지도 않게 구구단에 숨어있는 의미가 조금씩 보였다. 3x6과 6x3은 같기 때문에 결국 앞의 단을 연습하면 뒤의 단은 뒤집어 보면 앞에서 다 외운 것들이기에 실제로는 별로 외울 게 없다 거나 9단은 답의 끝자리가 9, 18, 27, 36….으로 하나씩 줄어든다는 등 외우려고 연습하다가 각 '단'마다 특징과 원리가 하나씩 이해되었던 것이다. 구구단에 들어있는 진짜 의미까지 속속들이 알게 된 거 같아 노래처럼 단순히 외우기만 했을 때보다 훨씬 더 뿌듯함이 느껴졌다. 지금까지 몰랐던 비밀을 알게 된 기분이었고 다른 아이들은 모르는 걸 나만 알고 있다는 사실에 의기양양해졌다. 이런 의미까지 알면서 바로바로 대답해 내는 내가 너무 멋져 보였다. 그러다 보니 연습이 즐거웠고 그래서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구구단을 외우는 과정에서 난 스스로 해서 이루어 낸 성취감이란 걸 배울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을 했고, 덕분에 1학년 때부터 수학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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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들은 하고 싶은 게 없다고 한다. 과도하게 그리고 강제적으로 주어지는 학업량으로 인해 아이들은 해야만 하는 공부를 하고 나면 나머지 시간은 영상 시청과 게임, 그리고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친구와 주고받는 문자나 카톡 외에 딱히 하고 싶은 게 생각나질 않는다고 한다. 며칠 전, 아이 수업 시간에 장래 희망을 적어보고 그림을 그려보는 활동이 있었다. 놀이터에서 만난 친구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다들 뭐라고 적었는지 궁금해했다. 평상시 관심도 없고 뭔지도 모르는 생뚱맞은 직업을 적은 아이, 쓸 말이 없어 빈칸으로 놓아둔 아이도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아이는 요즘 야구를 좋아해서 장래 희망을 야구선수라고 적었다는 얘기를 했더니 한 엄마는 ‘00 이는 하고 싶은 게 있어서 좋겠다…’며 부러운 듯 얘기했다. 이런 것도 부러운 일이 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수학을 잘하기 위해서는 사고력, 집중력, 문제 해결력을 키워야 한다고들 얘기한다. 이를 한마디로 말하면 어느 과목보다 더 마음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즉, 수학은 마음이 내키는 상태에서, 집중해서 문제를 생각해야 답을 찾고 실력이 향상되는 과목이라는 걸 안다. 생각하기 싫어하고 조금만 어려워도 안 하려고 한다면 결코 수학을 잘할 수가 없다. 다른 과목에 비해 바로 답이 안 나오더라도 어디 누가 이기나 해보자라는 심정으로 끝까지 붙잡고 풀어보려는 마음이 있어야만, 그래서 결국 그 문제를 풀어 성취감이라는 걸 느껴야 더 하고 싶은 의지와 그다음 레벨의 문제를 풀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아무리 문제집을 많이 풀고 수학 공부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여도 기본적으로 아이 마음속에 수학은 지겨운 것, 하기 싫은 것이라는 마음으로 가득하다면 점점 학년이 높아질수록 아이의 수학 실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고, 결국엔 수포자의 길로 걸어 들어갈 것이라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수학을 싫어하는 아이를 위해 부모로서 해야 할 일은 어떻게 해야 수학을 하고 싶어 지게 만들 것인가 어떻게 해야 스스로 해보려는 의지를 가질 것인가 에 대한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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