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하는 것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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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고학년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난 옆집 아들이자 내 동생의 친구였던 아이의 수학 과외를 했다. 나보다 세 살 어린아이였다. 옆집 아주머니는 나에게 ‘우리 애가 수학을 너무 하기 싫어해. oo 이는 수학을 좋아한다며? 방학 때마다 수학 공부 좀 도와줄래?.’라고 말씀하셨고, 그렇게 해서 하게 된 과외였다.
한 번도 과외를 받아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맨날 같이 동네에서 뛰어놀던 동생과 뭘 어떻게 공부를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일단, 상을 펴고 마주 보고 앉은 상태에서 미리 정한 직전 학기 수학교재를 가지고 시작했다. 동생이 모르겠다고 한 단원부터 개념을 설명하고 문제 풀이를 같이 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개념 설명에서부터 말이 막혔다. 분명 다 아는 내용이고, 미리 훑어보고도 왔는데 막상 내가 문장을 만들어 설명하려고 하니 잘 되지 않았다. 말도 꼬이고, 했던 말을 또 하기도 하고,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말문이 막히기도 했다. 문제 풀이할 때는 분명 미리 풀어봤던 문제인데도 풀다가 엉뚱한 답이 나오는 바람에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했다.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첫 수업을 마친 후, 집에 와서 생각했다. 개념 부분은 아는 내용이라도 어떻게 설명해야 쉽게 이해할 수 있을지를 미리 생각해보고 연습해서 와야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때의 전반적인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실수도 하고 설명도 제대로 못하기도 했지만 내가 꿈꾸던 선생님이 된 것 마냥, 들뜨고 마음이 콩닥콩닥 뛰었다. 이런 설렘과 뿌듯함이 좋았다.
옆집 아주머니가 잘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결코 적지 않은 과외비도 챙겨 주셨고, 과외 시간이라고 방에서 공부할 때면 맛있는 간식과 과일도 챙겨주셨으니, 나로서는 존중받는 만큼 더 열심히 수업 준비를 했고, 수업 중에는 크고 분명한 목소리로 쉽게 설명해주려고 애를 썼다.
그렇게 방학 때마다 한 과외 덕분에 난 부족했던 부분을 확실히 알고 넘어갈 수 있었다. 확실히 알고 넘어간다는 건 다른 사람에게 명확히 개념과 문제 풀이 과정을 설명할 수 있다는 뜻이다. 눈으로만 보고 아는 것에 비해 다른 사람에게 그 개념을 설명할 수 있다는 건 한 차원 높은 이해를 요구한다고 생각한다. 다 아는 내용이라 생각해도 막상 말로 표현하기란 그리 만만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 개념을 명확히 알지 못하면 눈으로 봐서는 아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설명은 절대 할 수가 없다. 동생에게 개념을 설명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명확하지 않았던 개념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생각해보고 이해해보려고 했고, 그다음엔 쉽게 설명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서 표현해 본 뒤에 수업을 했다.
수학 개념에 대해 깊이 고민해보고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볼 수 있는 이 시간이 내 수학 실력을 중학생이 되어서도 무너지지 않고 단단하게 쌓아 올라가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방학 때마다 부족한 부분에 대한 복습과 쉽게 설명하는 연습, 그리고 문제 풀이 방법을 보여주기 위해 과정을 써 내려가는 연습을 함으로써 오히려 과외를 받는 동생보다 내가 개념 이해와 복습이 확실히 되었으니 말이다. 또 상대가 동생이다 보니 나보다는 무조건 잘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내 생각대로 거침없이 설명할 수 있었고, 풀이 방법에 대한 내 의견도 맘껏 얘기할 수 있었다. 나는 학년이 올라가면 갈수록 점점 수학에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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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공부에 있어서만은 혼자 공부하는 것보다는 누군가에게 배운 걸 설명해주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고 믿는다. 개념을 하나 배운 후, 관련 문제를 다양하게 풀어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본인이 이해한 개념을 설명해보고 한 두 문제라도 문제 풀이 과정을 써보고 설명해 봄으로써 그 개념을 확실히 내 것으로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특히 초등 때는 더 그렇다. 만약 설명이 잘 안 된다면 그건 개념을 확실히 이해하지 않은 것이니 더 시간을 들여 그 개념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깊은 생각과 이해 없이 많은 양의 문제풀이만 하는 것은 그 양에 압도되어 스트레스만 커질 뿐, 정작 수학 실력을 향상하는 데 투자한 시간만큼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난 학창 시절에, 의도하지 않았지만 옆집 동생의 과외와 친구들의 질문 덕분에 다른 친구들에게 설명을 할 기회가 많았다. 또, 우리 집엔 그 당시 작은 칠판과 분필이 있었는데, 분필가루 날리는 걸 엄마가 싫어하셔서 방이 아닌 마당 한쪽에 걸어두었다. 분필로 칠판에 글씨 쓰는 걸 좋아한 나는, 자주 마당에 나가 혼자 그 칠판에다 분필을 이용하여 진짜 선생님이 된 거 마냥 문제 풀이과정을 쓰고, 혼자 설명하듯 중얼거리면서 문제를 풀어 내려가는 걸 즐겼다. 그 당시 장래희망이었던 선생님이 이미 된 듯한 기분에다 수학 과목 특유의 정해진 답이 딱 떨어질 때의 쾌감이 너무 짜릿했기 때문이다.
초등 수학은 내용이 많지 않으니, 상대적으로 시간이 많은 이 시기에는 제대로 개념을 이해하는 데 시간을 많이 쏟아야 하지 않을까. 수학은 과목의 특성상 이전 개념을 모르면 다음 개념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초등 수학을 확실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중학교 때 수학이 더해져도 혼란스럽거나 어렵지 않고 재미있게 따라갈 수 있다고 믿는다. 추상적인 수를 공부하는 수학을 깊은 이해 없이 맥락도 모른 채, 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문제 푸는 연습만 반복하기 때문에, 양이 그리 많지 않은 초등 때는 그럭저럭 따라간다 해도 한 단계 개념이 깊어지고 어려워지는 중학교 때 가서 슬슬 수포자가 나오기 시작하는 게 다 이런 이유가 아닐까. 실제 초등 1학년 아이들은 대부분 수학을 쉽고 재미있게 생각하는데 왜 고학년으로 가고, 중학교에 들어가면 재미있던 수학이 어렵기만 하고 재미없다고만 하는지 고민해 볼 일이다.
개념 이해 여부를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다른 사람에게 내가 이해한 걸 설명해줄 때라는 생각이 확고하다. 설명해 줄 동생도, 딱히 질문해줄 친구도 아직까지 없는 외동인 우리 아이에게는, 그래서 화이트보드에다 배운 내용을 나한테 설명해달라고 부탁하려 한다. 나는 진지하게 아이 설명을 들어주며 알겠다는 듯 고개만 끄덕이면 될 것이다. 아이도 다행히 화이트보드에 글씨를 쓰면서 말하는 걸 좋아하니 천천히 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개념이든 문제풀이든 나에게 설명하는 과정에서 분명 즐거움과 쾌감을 느낄 것이다. 중학교까지 이렇게 해 나간다면 굳이 엄청나게 많은 양의 문제풀이나 많은 시간을 들이는 학원 수업이 적어도 초등학교 때까지, 욕심을 좀 더 내자면 중학교 때까지도 필요 없지 않을까 싶다. 수학에 대해 꾸준히 재미를 느끼는 건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