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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율 Mar 10. 2023

납땜하는 여자

2화 전파통신? 그게 뭐 하는 곳이야?


전문대 입학을 결정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취업률과 여자로서 할 만한 공부, 그리고 내가 흥미를 가질 만한가를 고려하여 학과를 고르던 중 하나가 눈에 띄었다. 전자 통신과? 전자공학은 들어봤는데 전자통신은 뭐지? 


중학교 때, 남녀공학을 다닌 덕에 2년 동안 기술과목을 조금 배웠다. 그때 인두기를 사용해서 라디오 조립을 해본 기억이 떠올랐다. 물론 그땐, 뭐가 뭔지도 모르고 시키는 대로만 했었다. 조립하는 것조차 쉽지 않아 선생님이 많이 도와주셨다. 여러 가지 부품을 납땜하며 조립했고, 완성한 후에는 튜너를 돌려 신호를 잡아 소리가 나는 것까지 보고는 신기해했던 기억이 남아 있었다. 


라디오를 만들어본 것과 ‘전자 통신과’가 어떻게 관련이 있는지 전혀 알 수는 없었다.(하지만 그때의 기억이 안 좋았다면 아마 더는 관심 갖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단순한 호기심으로, 배우는 전공과목들이나 한번 살펴보자는 마음으로 학과 정보를 찾아봤다. 전자 회로, 디지털 회로 설계, 통신 공학, 공업 수학….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과목들...  음... 그래도 뭐 한다면 할 수도 있겠지 뭔들 못하겠어... 이런 생각이 살짝, 아주 살짝 든 게 전부였다.  


하지만 전공 관련 정보를 보면 볼수록 ‘한다면 할 수도는 있겠다’에서 ‘해 볼만하다, 해도 괜찮겠다’로 점점 생각이 바뀌어 갔다. 이런 분야를 내가 멋지게 공부해 낸다면 자신감도 생기고 주위 사람들한테도 당당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또, 내가 자신 있어하는 수학 능력도 필요해 보였다. 기계나 전기, 전자과처럼 남자들만 득실거리는, 전형 전인 공대과목에 비하면 전자 통신과 가 상대적으로 덜 거칠면서도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무엇보다 내가 고른 학교 내에서 유난히 높은 취업률이 내 마음을 굳히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정확히 뭘 배우는지, 졸업 후에는 무슨 일을 하는지, 내 적성에 맞을지 등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전적으로 계속 관심이 간다는 내 원초적인 감각 하나만을 믿어보기로 했다. 더 이상 고민하지 말자. 가서 잘하면 된다. 


주저 없이 ‘전자통신과’에 지원했고, 합격했다. 


전자 통신과는 1학년때는 전자와 통신에 관한 필요한 기본 과목들을 배운다. 그리고 2학년 때 정보 통신과 전파 통신으로 전공이 나뉜다. 정보 통신은 컴퓨터로 프로그램을 짜는, 즉, 통신 관련 프로그램과 관련 있는 통신 소프트웨어 쪽이고, 내가 선택한 전파 통신은 초고주파와 안테나 공학등을 배우는 통신 하드웨어 쪽이다.

 

언니가 나한테 물어본 적이 있다.


“근데, 너 무슨과라고 했지?”


“전파 통신과” 


“전파 통신? 또 들어도 난 모르겠다. 그게 뭐 하는 거야? 졸업하면 전파사 하는 거 아니야? 크크크”


“윽…”


학교를 다니고, 취업을 하고 나서도 한동안은 누군가가 전파통신이 무슨 과인지, 하고 있는 일이 뭔지를 물어볼 때마다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어느 누가 들어도 이해하기 쉽고 간결하게 하고 있는 일을 설명해 주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지금은 이렇게 설명한다. 


“핸드폰 쓰고 있지? 그런 거 만드는 거야. 다만 우리 회사는 방산업체니까 군인들이 쓰는, 핸드폰 역할을 하는 통신장비를 만들고 있어.”


회사에 와서 일을 하며 느낀 건, 확실히 2년 과정으로는 전공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늦은 나이에 입학해 2년 동안, 같은 학번 동생들에게 모범이 되기 위해서라도 학과 공부와 리포트 작성, 학기 시험을 준비하며 좋은 학점을 받았다고 자부하지만 그럼에도 실무를 하는 곳곳에서 지식과 실력이 부족함을 늘 느낀다.


전공에 필요한 과목들은 많고 이를 2년 안에 다 배워야 하니 정말 중요한 과목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과목을 한 학기 동안에만 배우게 되는데 그러기엔 전공과목들의 양이 너무 많다. 결국  깊은 이해가 필요하거나 내용이 많은 과목들은 끝까지 전부 배우지 못한 상태로 수업이 끝나 버리게 되는 것이다. 전공에 대한 이해도가 4년 공부를 하고 온 친구들에 비해 부족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그렇다고 해서 학교 공부가 부족하거나 실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미리 포기하거나 겁을 먹을 필요는 전혀 없다. 짧은 기간 학교에서 배운 지식이 충분치 않더라도(누구나 충분치 않다.) 기본 개념을 익힌 상태라면, 그다음에 필요한 심화나 응용 단계는 일하는 중에 얼마든지 실무를 하면서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실무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 


일을 하면서 부족하거나 필요한 지식은 그때그때 공부하고 습득하면 된다. 업무 적용을 위해 하는 공부이기 때문에 더 효율적이고 이해력도 빠르다. 또 요즘은 시물레이션 툴들이 너무나 잘 구현되어 있어서 이론이나 수식을 다 이해하고 풀지 못해도 툴만 제대로 활용할 수만 있다면 성능을 확인하거나 구현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툴을 다루는 능력 자체가 업무 능력이고 실력이 될 수도 있다. 게다가 내 직속 사수, 주위 선배들은 너무나 큰 자산이다. 그때그때 모르는 걸 물어볼 수 있고 숙달된 업무 능력을 눈으로 직접 보면서 배울 수 있다는 건 실무를 하면서가 아니라면 그 어느 곳에서도 배울 수 없다.   

 

학교에서 학과 공부를 얼마나 열심히 했느냐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입사 후부터는, 어차피 이 분야에서 일을 한다면 꾸준히 업계 동향이나 트렌드, 최신 기술을 알기 위해 관련 논문을 읽고 어떻게 성능을 구현해야 할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며 공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입사만 한다면 그다음부터는 내가 하기 나름이다. 이 분야가 특히 그렇다. 스스로가 부끄러워질 만큼 학력과 상관없이 똘똘하고 열정 있고 해 보려는 의지가 넘치는 친구들을 보아 왔다. 배우고 성장할 의지와 업무에 대한 관심 가득한 친구들은 어떻게든 인정받게 마련이고 결국은 끝까지 남아 있는다.  



제3화 회사 입사(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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