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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율 Apr 11. 2023

경복궁 해설을 위한 사전 시연


경복궁 해설을 다시 하기 위해서는 나만의 해설 매뉴얼을 작성해서 제출했다. 이는 해설에 꼭 필요한 내용이 빠짐없이 들어가 있는지, 잘못된 사실을 적어놓은 건 아닌지 등등을 확인하기 위해 날 담당하기로 한 선배에게 검토를 받는 과정이다.  


매뉴얼을 쓰려고 보니, 예전에 했던 자료가 어딘가에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리 뒤져도 나오지 않았다. 선배들에게 도움을 좀 받아볼까 잠깐 생각했지만, 혼자 스스로 작성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왠지 그렇게 하는 게 더 의미 있고 나중에 매뉴얼을 외울 때도 더 잘 외워질 거 같아서였다. 연락처도 모르는 선배에게, 분명 그분도 열심히 자료를 찾고 문장들을 갈고닦아 본인만의 매뉴얼을 만들었을 텐데, 그 소중한 자료를 무작정 공유해 달라고 하기가 염치없고 민망할 거 같았다. 결국 예전에 샀던 경복궁 해설 관련 책 한 권과 인터넷 검색, 앞서 선배 해설을 참관했을 때 메모했던 거, 그리고 최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더듬더듬 매뉴얼을 써내려 나갔다. 초등학교 고학년, 기본적으로 역사를 접한 아이라면 충분히 재미있게 들을 수 있는 난이도로, 각 해설 자리 자리마다 재미있는 일화와 흥미로운 질문을 넣어가며, 1시간 반이 넘는 해설을 끝까지 지루해하지 않고 들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제 초2인 우리 아이가 1~2년 후에는 친구들과 같이 내 해설을 자랑스럽고 재미있게 들을 수 있겠지 하는 상상에 벌써부터 마음이 흐뭇했다.   


매뉴얼을 쓰고 고치고 또 고치고를 반복하고 있을 때, 아이가 옆에서 물었다. 


‘엄마 경복궁 발표하는 거 준비해? 이게 다 얼마큼이야?’

‘응 19장 정도?.’

‘와 이걸 다 어떻게 외워?’

‘엄마도 걱정이야… 그래서 계속 읽어보고 있어.’


매뉴얼을 보내고 이틀 후, 담당 선배로부터 피드백이 왔다.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걸 바로잡아주셨고, 설명이 좀 모호한 부분을 지적해 주셨다. 정확한 역사적 근거가 없는 부분은 얘기는 하되 꼭 그 사실을 언급하라는 표시도 해주셨다. 시간을 들여 꼼꼼히 봐주신 선배님, 감사합니다. 조금의 수정작업을 하고 매뉴얼 작성은 마무리했다. 


바로 시연 날짜를 잡아야 할 단계다. 4월 중 선배와 내가 공통적으로 되는 시간을 찾다 보니 세상에… 돌아오는 주말 일요일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매뉴얼 피드백을 받고 5일 후에 시연을 하기로 한 것이다. 비상이다. 시연 날짜가 결정된 그날부터 매뉴얼을 핸드폰에 넣어놓고 틈날 때마다 들여다보고 외우기 시작했다. 보면 다 알겠는데 막상 안 보고 말을 하려다 보니 부드럽고 자연스러우면서도 유창한 문장표현들이 기억나지 않는다.  듣기 답답할 수도 있을 만큼 더듬더듬 말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한번에 통과 못하면 얼마나 창피할까. 연습만이 살길이다. 


하루 전날은 똑같이 목소리도 크게 내고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실제 해설하는 것처럼 이동하며 연습을 했다. 아이는 그런 나를 쫓아다니며 대신 핸드폰의 매뉴얼을 보면서 내가 기억 못 하는 부분을 찾아 읽어준다. 이동하자고 하면 같이 이방 저 방 이동해 주고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내가 해설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여 준다. 관심도 없는 남편에 비하면 너무 사랑스럽고 기특하다.   


‘00아, 엄마 내일 발표야 너무 떨려~’

‘엄마! 나도 꿈 발표할 때 떨렸는데 엄마도 진짜 떨리겠다.’

‘응, 너무 떨리고 걱정돼.’

‘어-엄-마! 잘-해-라!, 화-이-팅!, 어-엄-마!’


마냥 어리다고 생각한 아이에게 예상 못한 공감과 응원을 받으니 힘이 난다.  


시연 날, 2시쯤 하기로 한 시연을 준비하기 위해 10시도 안 된 시간에 경복궁에 도착했다. 너무나 맑고 청명한 날씨에 이른 아침부터 경복궁은 관람객들로 붐볐다. 오전에 해설연습을 하며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혼자 한 바퀴 둘러보는 데, 예쁜 한복을 입고 너무나 밝은 표정의 관람객들에게 자꾸만 시선이 갔다. 나도 관람객으로서 궁을 왔다면 이 기분 좋은 바람을 맞으며 얼마나 마음이 편했을까 하는 잠깐 부러운 마음도 들었지만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연습에 집중한다.


대선배 해설사 앞에서 하는, 너무나 오랜만에 하는 시연은 떨리고 긴장한 상태에서 시작했다. 처음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입도 안 풀리는 상태에서 뭔가 어색하고 빼먹은 부분이 있다는 걸 깨달으며 진행되었지만 점점 나아지는 것을 느끼며 끝까지 무사히 해설을 마무리했다. 중간중간 선배는 좀 더 나은 해설 위치나 방법을 알려주시기도 하고, 여러 가지 설명도 해주시며 나를 마음 편하게 해 주셨다. 역시 경험과 연륜은 무시할 수 없나보다.

 

시연을 통과하고 후련한 마음에 맥주 한잔과 함께 선배들과 이른 저녁을 함께했다. 부부가 같이 해설하시는 분, 최다해설 횟수로 문화재청상까지 받으신 분, 경복궁 뿐만 아니라 다른 궁 해설도 같이 하시는 분 등 10년 전에 뵈었던 선배들과 지금까지 해설 자리를 지키고 계신 분들과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참으로 유쾌하고 마음 편했다.  


이제 시민 해설 시작이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해설은 6월부터 시작하지만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마지막 최종 메뉴얼을 마무리하고 열심히 준비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첫 시민 해설을 시작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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