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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율 Jun 13. 2023

경복궁 해설-첫 관람객 해설

6월 11일 오후 3시.


일요일, 한국어 해설 마지막 타임, 시연 후 두 달 만에 하는 해설이며, 9년 만에 복직 후 처음으로 일반 관람객을 대상으로 하는 해설이었다.

   

주말 이틀 내내 비소식이 있어서 걱정이 되었었다.

'비가 오면 관람객도 많이 없을 테고, 우산 쓰고 이동하느라 어수선하고 더더욱 집중이 안될 텐데…’

‘해가 있어야 해시계를 보며 시간 읽는 법을 설명할 수 하는데 비가 오면 어떻게 설명하지…’

다행스럽게도 오후 한차례 비가 내리고 나서 내가 해설하는 시간에 비는 오지 않았다.


12시에 집에서 출발을 했다. 기차를 타면 1시간 반정도 걸리는 길이지만 혹시 모를 교통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가는 길에 다시 한번 매뉴얼을 보고 연습하기 위해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역시나 파업으로 지하철 운행이 제대로 되지 않아 미리 예매해 둔 기차를 취소하고 뒤의 열차를 타야 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워낙 여유 있게 출발한 덕분에 2시쯤에는 해설자들이 준비하고 마무리 정리를 할 수 있는 공간인 경복궁 사랑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뵙는 선배님들과 앞선 해설을 끝내고 오신 분이 사랑방에 계셨다. 그분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도 온통 머릿속은 매뉴얼과 해설 생각에 마음이 쓰였다. 이런 내 심정을 다 아시고, 첫 시민 해설을 걱정하는 나를 위해 편안한 분위기와 용기를 주시려고 노력하시는 선배들의 모습에 힘을 내려고 노력했다.


선배 해설사 앞에서 시연을 할 때도 물론 떨렸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는 알게 모르게 선배님이니까 의지가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기대거나 모르는 걸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은 내 옆에 아무도 없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만 바라보는 일반 관람객들을 오로지 나만의 능력과 재량으로, 순간순간 상황에 대처하며 해설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 이런 생각에  시간이 다가올수록 막중한 책임감과 떨리는 마음을 막을 수가 없는 것이다.  


관람객들에게 나눠줄 포토 카드와 마이크를 챙겨 들고, 선배들의 파이팅 응원을 뒤로하고 사랑방을 나섰다. 해설 시작 지점에 5분 전부터 관람객을 맞을 준비를 하며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3시부터 한국어 무료 해설 시작합니다~"


내 안내 멘트에 남자 2분이 와서 기다리기 시작했다. 인상 좋고 반응 좋고 친구로 보이는 젊은 남자 2분이다. 해설하면서 가장 고마운 관람객은 해설 멘트 중간중간 ‘아~그렇구나’,’와~신기하다’라는 반응과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며 호응을 해주는 분들이다. 내 해설이 도움이 되고,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반응에 절로 신이 나 더더욱 열심히 해설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남자 2분은 척 봐도 기본 이상의 반응을 보일 것이 분명하다. 일단, 안심이다.

 

그런데 갑자기 외국인 한 분이 오셔서 기다리신다. 조심스럽게 이 분에게 다가가 3시는 한국어 해설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영어 해설은 3시 30분에 있다는 정보를 건넨다. 그러자


"한국어 해설 들으려 왔어요. 전에도 몇 번 들었어요"


라는 예상외의 대답을 한다. 헉… 부담스러운데...

 

아이 둘을 데리고 온 엄마까지 총 6명이 모였다.


3시 정각. 해설 시작이다.


첫 위치에서 이런저런 흥미를 유발하는 질문과 함께 대략적인 경복궁 역사를 설명하고 본격적으로 이동을 한다. 그런데, 아이 둘과 함께 온 엄마가 바로 가버리셨다. 이런…첫 장소에서부터 말한 멘트가 맘에 안 드셨나…


그러다 보니 신경이 쓰여 두 번째 해설 자리에서 말이 제대로 안 나오고 순서가 맞지 않게 멘트가 나오기 시작하자 더더욱 당황하기 시작했다. 아... 해는 쨍쨍한데, 그 땡볕 속에서 나만 바라보고 있는 남자 2분과 외국인 1분의 진지한 얼굴. 이분들의 얼굴을 보자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얼른 마음을 가다듬어 본다. 단지 3분이지만 이분들에게만큼은 오늘 이 해설을 듣는 시간이 오래 기억에 남도록 최선을 다해 해설을 해드려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이었다.


그 뒤의 해설은 순조로웠다. 바람도 간간이 부는 날씨라 그늘을 찾아 해설을 하기에도 듣기에도 비교적 날이 좋았다. 해시계도 무사히 설명할 수 있었다. 3분만 해설을 듣다 보니 이런저런 즉흥적인 대화도 하고 무엇보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재미있게 해설을 진행할 수 있었다.

 

1시간 30분 동안 경복궁 가장 깊은 곳 마지막 해설 포인트까지 3분이 끝까지 함께 해주었고, 특히 외국인 분은 예전에 들었던 해설보다 더 재미있고 더 많은 걸 알게 되었다는 소감을 얘기해서 내 마음을 뿌듯하게 했다. 남자 2분도 너무 잘 들었다며 여러 번 인사를 해주시니 오히려 첫 해설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해 준 이분들에게 내가 훨씬 더 고마움을 느끼기도 했다.


집으로 오는 발걸음이 가볍다. 매뉴얼을 찬찬히 보고 빠뜨린 부분과 추가할 부분을 확인해 본다. 다음 해설은 더 잘할 수 있을 거 같다. 한번 해 보니 하기 전 걱정하던 마음은 온 데 간 데 없고, 자신감만 완전히 차 있는 상태다. 동네에 와서 남편과 아이를 불러 저녁을 먹으며 맥주 한잔을 했다.   


"엄마, 잘했어?"

"응, 잘했지. 외국인도 와서 엄마 해설을 들었어."

"우와. 엄마 대단하다!"


"자기야 실은 나 진짜 떨렸었어!"

"그 떨림을 느끼려고 다시 시작한 거잖아."

"아.. 그렇지…"


맞다. 이 떨림을 느끼려고, 했던 일만 반복되는 생활에서 벗어나 새로운 떨림을 맛보기 위해 시작한 것이다. 떨리는 순간을 내가 원해서 선택한 만큼 이 순간들을 즐기리라. 다음번 해설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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