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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율 May 10. 2023

납땜하는 여자-11화 연동 시험

우리 회사는 RF 하드웨어를 개발하는 업체이다. 하드웨어는 개발이 끝났다고 해도 그 단품만으로는 사용할 수가 없다. 전체 시스템에 장착해야 비로소 그 성능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발 과정에는 단품 개발이 끝난 후, 꼭 시스템에 장착해서 제대로 동작하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시스템에 장착 후, 기본적으로 시스템 동작이 이상이 없어야 하고, 단품에서 보여주는 성능이 다 발휘되어야 비로소 하드웨어 단품이 개발 완료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로봇의 팔이든 다리든 개발을 했어도 머리에 붙여서 그게 제대로 동작하는지를 확인해야 개발 성공인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러다 보니 회사 내에서 단품 개발을 한 후, 상위 시스템 업체에 들어가 시스템 연동 시험을 지원하는 건 필수다. 보통 상위 시스템 업체가 하드웨어 단품을 그 아래 협력 업체(‘하청 업체’라는 단어 어감이 안 좋기 때문에 요즈음엔 협력 업체라는 용어를 쓴다.)에 개발을 의뢰하기 때문에 상위 업체는 갑, 우리는 을 업체가 된다. 분명 전체 시스템 규격이 있고, 상위 업체의 시스템 엔지니어가 각 구성품에 맞는 규격을 정한 후, 그 규격에 맞는 개발품 의뢰를 하고 발주를 주었기 때문에 발주를 받은 우리와 같은 협력 업체 입장에서는 주어진 구성품 규격만을 만족시키면 할 일은 다 한 셈이다. 규격을 만족시킨 물건들을 가지고 상위 업체에서 연동시험을 하면 무조건 성능이 나와야 하는 게 이론상 맞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개발 단품들을 모아서 한방에 전체 시스템 규격을 맞추는 일은 없다고 보면 된다. 일단, 시스템의 제어신호가 제대로 들어와서 우리 물건이 의도한 대로 이 신호를 받아들이고 있는지, 그래서 그에 맞는 신호를 다시 상위 시스템에 내보내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연동 시험의 가장 기본과정인 소위 길을 뚫는 과정인 것이다. 이 작업은 빠르면 단 몇 시간 만에 끝나지만 문제가 생기거나 서로 약속된 규칙을 오해하고 다르게 구현을 했거나 하면 이를 확인하는 데에만 며칠씩 걸리기도 한다.  


길을 뚫은 다음에야 비로소 단품들이 모여 시스템이 원하는 성능을 제대로 내는지, 어떤 성능이 부족하지는 않은지, 만약 성능이 부족하다면 많은 개발 단품 중 어느 모듈의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 개선을 위한 수정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등등을 확인하고 찾아내는 시스템 시험을 꽤 오랜 시간을 들여하게 된다. 만약 우리 장비에서 수정이 필요하다면 바로바로 적용하며 계속 시스템 성능 시험을 진행한다. 


시스템 시험 중에 나오는 문제점들은 개발 초기에 문서상으로 요구된 규격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어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가장 중요한 건 시스템 업체에서 단품 규격을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세우는 게 제일 중요하다. 단품들은 규격대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규격이 전체 시스템 성능을 내기에 부족하거나 표현되어 있지 않으면 전체 연동했을 때, 배가 산으로 갈 수 있다. 또, 우리와 같은 협력 업체 입장에서는 개발과 연동시험을 해본 경험이 많은 엔지니어일수록 유리하다. 시스템 각각의 특성에 맞게 숨어있는 규격을 고려하여 개발 초기에 이를 시스템 업체에 역으로 검토해 달다고 요청할 수도 있고, 나중에 연동시험에서 수정할 부분을 고려해 이를 반영한 설계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연동 시험 기간은 정해져 있는데, 이 기간 중 만약 사전에 고려하지 못한 문제들이 여러 저기 튀어나온다면 이를 하나하나 원인을 파악하고 수정하고 확인하느라 매일을 늦게까지 야근할 수밖에 없다. 


물론 우리 같은 협력 업체야 시스템을 제대로 알 수가 없으니 상위 업체에서 주는 규격만을 만족하는 물건을 만들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하다. 연동시험에서 문제 되면 그건 전적으로 시스템 개발 업체 책임이고 원인도 알아서 찾아 우리한테는 수정사항만 알려주는 게 맞는 거 아니냐고, 나도 연동 시험을 하러 매일같이 상위 업체로 출근을 하면서 여러 번 선배들에게 하소연을 하기도 했었다. 시스템 개발 업체 잘못이고 그들이 해야 할 일인 것이 분명히 맞다. 하지만 시스템 성능 상 문제가 생기면 우리는 들어가서 같이 시험을 하며 1차적으로는 우리 문제는 아니라는 걸 입증해야 하고, 더 나아가 그럼 다른 구성품들 중 어느 부분이 문제인지까지 밝혀내는 경우도 많다.


 또, 연동 시험 중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겨 최악의 경우, 다시 pcb를 설계하고 기구를 새로 개발해야 하는 일이 발생해도 시스템 업체는 이 비용을 보상해 주는 일도 거의 없다. 보상을 받으려면 시스템 업체 엔지니어 잘못이라는 걸 밝혀야 하는데 같이 일하는 엔지니어로서 비록 갑 회사의 직원이라 해도 잘못을 낱낱이 밝혀 문서화하여 대표님 결재를 받아 상위 회사 구매부서로 넘기는 일을 차마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금액이 적은 건 대부분 수정을 해야 하는 업체에서 감당하고, 개발 기간에 영향을 줄 만큼 다시 개발해야 하는 금액이 크고 시간이 필요하다면 반씩 조율해서 개발비를 같이 투자하는 선에서 마무리 짓는 게 가장 최선일 때 행해지는 일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이마저도 쉽지 않다. 만약 단품 규격상 개발품은 아무 문제없으니 연동시험은 너희가 다 알아서 하라는 업체가 있다면 상위업체 입장에서는 두 번 다시 그 업체와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3~4년 경력이 쌓이고 처음으로 차장님과 업체에 들어가 연동시험을 해보았다. 처음엔 이런 상황이 억울했다. 상위 업체 직원들은 시스템 적으로 잘 모르면서 갑 행세만 하는 듯 보였다. 시스템 담당자는 바쁘다는 핑계로 여러 번 자리를 비웠고, 남의 회사에서 우리 차장님 혼자 시스템 성능을 확인하기 위해, 문제가 있는지 찾기 위해 이것저것 시험해 보는 날이 많았다.(RF 장비를 시험하는 일은 은근 막일 성이다. 신호 확인용 연결 케이블을 연결했다 풀었다 하는 게 생각보다 많고 힘들다. 하루 종일 반복해서 하면 엄지와 검지 두 손가락이 얼얼해질 만큼 아프다.)


‘차장님. 담당자도 없는데 왜 혼자 고생하시면서 하세요? 좀 쉬세요…’


‘어차피, 확인해야 하는 일인데 들어왔으니 나라도 빨리 해야지. 내가 시험을 대신해 주면 그만큼 시간이 단축되고 우리가 수정할 시간도 확보되잖아.’


‘그래도 차장님이 혼자 다하시니까 여기 담당자도 은근 그걸 기대하는 것 같아 보여서요. 매번 사라졌다가 나중에 와서는 결과만 물어보잖아요...’


‘나도 혼자서 시험하는 게 편해. 그래야 내가 해보고 싶은 거 해보고, 보고 싶은 부분에서 신호도다 볼 수 있으니까. 이런 시스템 성능은 우리 회사에서는 계측기도 없고 볼 수 없잖아. 여기서 계측기 다루는 거랑 성능 확인이랑 여러 번 해보면서 내 실력 쌓는다고 생각하면서 하는 거지. 00 씨도 잘 봐 둬.’


‘네.. 그럼 같이 해요, 차장님.’


협력 업체 직원 입장에서 불만만을 얘기하려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시각을 바꿔 일단 나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고, 얻을 수 있는 부분들을 챙겨가며 일하는 수밖에. 비록 우리 회사 내에서는 단품 수준의 모듈밖에 개발할 기회가 없지만 이렇게 연동 시험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참여한다면 그 경험과 노하우가 차곡차곡 내 안에 쌓일 것이고, 어느 순간부터는 상위업체에 휘둘리지 않고 주도적으로 개발에 참여하는 나 자신을 보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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