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 외에는 딱히 제조와 연구소의 구분 없이 한 공간에서 개발과 제작을 함께 했을 때는 산업단지나 제조업의 회사들이 있던 곳이 아니라 소위 고층 빌딩의 일반 사무실이 몰려있던 양재역 근처에 회사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비싼 땅값을 피해 역에서 좀 떨어진 꼬마 빌딩 한 층을 회사가 쓰고 있었고, 이곳은 서초구라는 이미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좁고 낡은 곳이라 지인을 통한 채용이 아니고서는 새로운 사람을 뽑기에는 솔직히 어려운 환경이었다.
그러다 큰 규모의 양산이 있는 장비 개발에 성공하여 회사가 커지게 되었고, 많은 물량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더 넓은 공간이 필요해지자, 사장님은 구로에 새로 짓는 아파트형 공장을 분양받아 입주하게 되었다. 회사가 훨씬 넓어지고 쾌적한 공간을 갖게 된 것이다. 또, 제조라인과 공간적으로 분리되어, 연구 개발자만으로 구성된 연구소가 꾸려지고 전용 공간을 갖게 되었고, 연구소 안에서 별도의 시제작실까지 만들어 놓고 나니 이제 진짜 뭔가 있어 보이고 제대로 갖춰진 환경에서 일하는 개발 엔지니어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제야 비로소 주위 사람들에게 당당히 얘기도 하고, 회사에 한번 놀러 오라는 말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초등학교 때, 5명의 식구가 방 두 개인 집에 살았을 때, 집에 놀러 오겠다는 친구를 한사코 말렸다가 나중에 깨끗한 집으로 이사 가서야 당당히 친구를 초대했었던 그 마음과 똑같았다.
지하철역에서 멀지 않은 곳의 새 건물의 사무실에서 회사가 행색을 갖추자 신입이든 경력이든 사람 뽑기도 훨씬 수월해졌다. 이때, 회사는 각 부서별로 필요한 인원들을 경력이든 신입이든 계속해서 충원해 나갔다.(이때 입사한 직원들 중 아직까지 근무하고 있는 직원도 여러 명 있다. 다들 15년 차 전후되는 직원들이다.) 그중 대학을 갓 졸업한 신입 엔지니어 셋을 한꺼번에 뽑은 적이 있는데, 이때 들어왔던 J라는 여자 후배가 있었다.
신입 직원을 뽑으면 2달 동안 OJT(on the jop training: 직장 내 교육훈련) 계획을 세워 교육을 시킨다. 2~3달 진행되는 훈련 내용에는 초고주파 공학책 한 권을 공부하는 것을 기본으로, 필요한 설계 시물레이션 관련 툴들을 익히고, 납땜 연습을 하는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 1~2주 간격으로 공부한 것에 대해 발표를 하게 한다.
세 명의 신입 중에 J는 단연 돋보였다. 공부한 내용을 선배들 앞에서 PT로 발표할 때는 다른 두 명의 신입에 비해 압도적으로 자신감 있고 똑 부러지는 모습을 보였다. J가 복잡한 수식도 명쾌하게 설명하는 모습을 보고는 누가 보아도 이 친구는 이 수식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을 들게 만들기도 했다. 평상시에도 뭔가를 알려주었을 때 이해력도 습득도 빨랐고, 설계 시물레이션 툴을 다루는 것도 이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니 금방 익혀 나갔다. 무엇보다 성격도 쾌활하고 붙임성도 있어서 남자들만 득실대는 회사 내에서 J는 본인의 존재감을 맘껏 드러내고 있었다.
나도 좋았다. 회사가 커지다 보니 비록 같은 팀도, 같은 프로젝트를 개발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각자 팀 내에서 일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와도 시원한 라테 한잔에 J와 수다 떨며 얘기하다 보면 또다시 힘을 내서 일할 기운을 얻곤 했다. 이쪽 업계를, 회사 조직 관계를,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척하면 얘기가 통하니까, 또 같은 여자로서의 고충을 잘 아니까, 남자들로만 이루어진 조직 내에 같은 일을 하는 여자 후배가 있다는 건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신기하고 반갑고 든든한 일이었다.
J와는 업무 관련 힘든 점이나 뭐가 생각대로 잘 안 되는 점 등을 터놓고 얘기하는 건 기본이었고, 다른 남자 직원들과는 할 수 없었던 대화 거리, 즉, 옷을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어떤 화장품이 좋은지, 소개팅한 남자가 어땠는지, 연애 얘기까지도 맘 편히 했으며, 조금씩 더 나아가 웬만한 친구들한테도 보여주기 창피한 집안 얘기도 조금씩 하는 사이가 되었다. 서로 다른 팀이었기에 각자의 팀장 욕을 실컷 할 수 있는 것도 큰 힘이 되었다. J가 비록 후배지만 때론 의지하기도 하면서 정이 많이 들었다.
하지만 J의 가장 아쉬운 점이 있었으니, 바로 작고 조그마한 체구에서 누구라도 예상하 듯 체력이 약하다는 것이었다. 150도 안 되는 자그마한 키에 J의 혈압은 늘 두 자릿수 대였으며, 발 사이즈가 220도 안되어서 신발을 매번 주문 제작해서 신어야 했고, 조금만 굽 높은 신발을 신으면 남들보다 급격한 발의 경사 덕분인지는 몰라도 두 배는 더 피곤해했다. 개발 일정이 빠듯하거나 원하는 날짜까지 성능이 안 나올 때, 늦은 야근이 며칠 동안 이어지는데 그럴 때마다 J는 많이 힘들어하고 수액을 맞는 등 병원신세를 지기도 했다.
지각도 빈번했다. 아침 기상을 힘들어하던 J는 아침에 자주 택시를 타곤 했는데 교통 상황에 따라 지각을 했다. 자주 지각하는 모습은 결코 좋아 보이지 않았는데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나조차도 J에게 지각에 대해서는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체력적인 문제만 없다면 아마 J는 지금까지 맘껏 자신의 기량을 뽐내면서 연구소의 중요한 자리를 한자리 떡 하니 맡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야근은 당연하게 자연스럽게 하는 일이었고, 회의와 연동시험을 위해서는 외근도 자주 있었다. 환경시험을 위해서는 한동안 지방 출장도 감수해야 했다.(지금도 야근이 줄어든 거 외에는 별반 차이가 없긴 하다.) 프로젝트에 따라 차이가 있었겠지만 확실히 체력적으로 불리한 J로서는 개발 일정을 따라가기가 버거웠다.
J는 결국 새로운 프로젝트의 시작을 앞두고 퇴사했다. 퇴사 결정 직전에 발목을 다쳐 깁스를 하고 다녔는데 그런 몸 상태로 또다시 반복될, 적어도 J에게는 확실히 과도한 업무를 더는 버틸 자신이 없었을 것이다.
똘똘하고 유능한 친구가 그만두는 거 같아 안타까웠다. 개인적으로도 회사차원으로도 J가 그만두는 건 아쉽고 아까운 일이라 생각했다. 특히 나로서는 개인적인 얘기도 많이 주고받았으니 서운함이 누구보다 더했다. 우리 둘을 시작으로 여자 엔지니어 세력을 늘리지고 당찬 계획을 세우기도 했었는데 이렇게 떠나는 J가 야속했다. 하지만 J의 체력을 너무나 잘 알기에 이 친구의 선택을 말릴 수는 없었다.
그 뒤부터 지금까지 우리 연구소에 여자엔지니어는 한동안 뽑지 않았다. 내가 20년 동안 이 일을 꾸준히 할 수 있었던 건 머리가 좋아서도 아니고 일을 잘해서도 아니다. 무거운 계측기를 들고 나르고 잦은 외근을 다니고 야근과 밤샘도 즐겁게 넘길 수 있는 타고난 체력 덕분이다. 과체중의 내 몸이 어릴 때는 창피하고 싫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남들보다 조금(?) 더 많은 이 살과 근육 덕분에 그동안의 지치고 힘든 일도 무난하고 별 탈 없이 넘길 수 있어서 지금도 이 일을 하고 있다고 본다. 이 바닥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체력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