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때, 수능을 100일 앞두고 친구들과 모여 첫 맥주 한잔을 마셔본 게 대학교 입학 전까지 내가 마신 술의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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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컵에 가득 따른 소주 한 잔(소주 반 병 정도 되는 양이다)을 엄마의 잔소리와 함께 식사 전, 원 샷으로 드셨던 아빠를 보면서 자랐다. 높은 언덕배기 꼭대기 집에 살면서 그런 아빠의 소주 심부름을 도맡아 하면서 언니도 있고 남동생도 있는데 꼭 나한테만 이 심부름을 시키는 게 너무 싫었고, 술에 취해 얼굴이 벌게진 상태로 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하는 아빠의 모습이 싫었다. 여기저기 술 취한 채로 친척들에게 전화를 돌리며 긴 수다를 떠는 모습도 보기 싫었다. 늘 술 때문에 엄마와 다투는 모습도 보기 싫었다. 술 좀 그만 드시라고 하면 아빠는
‘내가 술을 먹고 밥상을 엎은 적이 있나, 엄마를 때린 적이 있나? 술 마시고 조용히 잠만 자는데 왜 못 먹게 하는 거야?’
라고 억울하다는 듯 얘기했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그냥 아빠가 술 먹고 벌게진 얼굴로 집에 계시는 그 자체가 결코 좋아 보이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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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입학 후, 가입한 동아리에서는 신입생을 환영한다는 명목으로 매일같이 술자리가 있었다. 선배들도 좋고, 다른 학과 친구들 여러 명과 함께 얘기하는 것도 너무 좋았다. 한 테이블에 찌개 하나 또는 마른안주 하나 달랑시켜놓고 소주를 연신 들이키며 전철이 끊기는 시간까지 이어지는 그 술자리가 좋아 난 매일 참석했다.
그때 알았다. 이렇게 부실한 안주와 함께 소주를 몇 잔씩을 마셔도 다음날 9시 수업에 아무 지장이 없을 만큼 생생한 나를 보고, 나의 주량이 결코 약하진 않다는 것을. 하지만 사실은 돈이 없던 시절에 지하철을 놓치면 절대 안 된다는 생각과 내가 몸을 가누지 못하면 아무도 집이 먼 나를 데려다줄 수 없다는 생각에 늘 정신을 바싹 차리고 술을 마시는 습관이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술자리마다 늘 취하는 친구들은 대부분이 집이 가깝거나 자취하는 친구, 또는 집에 데려다 줄 든든한 남자친구가 있는 경우였기에 그중 어느 하나도 속하지 못한 나로서는 스스로 내 몸을 챙겨야만 했다. 그 덕분에 수없이 많은 행사와 술자리가 있었지만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취하거나 전날의 기억이 끊긴 적은 없었다.
그러나 첫 대학교를 휴학하고, 2년 넘게 알바를 하면서는 힘든 일이 끝나고 또래 언니 오빠들과 점점 마시는 술의 양과 횟수는 늘어나게 되었다. 알딸딸한 취기가 오른 상태로 기분이 업 된 상태에서 특별한 의미 없는, 대화라고도 할 수 없는 이런저런 신세 한탄과 하소연, 투정들을 말할 수 있는 그 술자리를 나는 즐겼다. 지금 생각하면 그 좋았던 젊은 시절의 매일 저녁을 술자리에 다 낭비했다는 사실이 한편으론 아깝고 후회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난 분명 그 시절 학교를 휴학한 후 방황했고 힘들었고, 그때 내 얘기를 들어주고 나한테 조언해 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비록 그 조언들이 정답이 아니었고, 또 정답인 조언을 누군가가 했을지라도 그 시절의 내가 그 조언을 받아들일 그릇이 안 되어있어서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단지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내 얘기를 들어주고 함께 얘기 나누는 그 시간이 좋았고 그 자체가 힘이 되고 위로가 되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아빠도 술 한잔 드신 상태에서만이 엄마한테 얘기하고 친척들과 대화할 용기를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을까. 그만큼 아빠도 외로웠고 대화하고 싶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 에피소드 하나를 적어본다.
추운 겨울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술을 많이, 정말 많이 먹고 늦은 시간, 집에 가기 위해 택시를 잡았다.
목적지를 얘기하고 택시를 타고 가고 있는데 속이 울렁거렸다. 참아야지 조금만 참으면 되겠지 싶었다. 하지만 집에 거의 다 올 때쯤, 결국 택시 뒷좌석에서 다 넘겨버리고 말았다.
무방비상태였다. 비닐도 없었고 휴지나 물티슈도 당연히 없었다. 손으로 막았는데 소용이 없었다. 택시 뒷좌석이 난리가 났다. 택시 기사 아저씨는 깜짝 놀라며 엄청 뭐라고 하기 시작했다. 미리 얘기를 해서 차를 세운 후 밖에서 해결해야지 그러면 어떡하냐, 오늘 지지리 운도 없다 등등....
그 말을 들으면서 난 죄송한 마음이 들으면서도 동시에 두 어 번 더 넘기기까지 했다. 그러자 기사 아저씨는 심한 말을 욕으로 바뀌면서 하기 시작하더니 점점 욕의 강도가 심해져 갔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난 속이 편안해지면서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집 근처 목적지에 와서 택시가 멈췄다. 택시 기사 아저씨가 내려 뒷좌석문을 열고 뒷좌석 상태를 보더니 또 욕을 퍼부으면서 당장 내리라고 난리를 쳤다. 그러면서 택시비와 함께 세탁비를 요구했다. 내가 백 번 잘못한 일이었지만 기사아저씨의 계속되는 상스러운 욕을 도착할 때까지 다 들은 점과, 내가 술이 엄청 취한 상태인 점, 그리고 나에겐 택시비밖에 없어서 만약 세탁비를 드리려면 그 늦은 시간 부모님을 깨워서 돈을 들고 나와달라 부탁해야 하는데 그러면 이 상태를 부모님에 보여드려야 하니 절대 그럴 수 없다는 생각에까지 이르자, 궁지에 몰린 쥐가 오히려 반격하듯 난 용기(?)를 냈다.
택시에 내려서 나도 할 말을 하기 시작했고, 아저씨 말을 맞받아 치며 언성을 높여갔다. 왜 귀한 남의 집 딸한테 욕을 그렇게 하시냐고 세탁비는 세탁비고 일단 경찰서부터 가자고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내세웠다. 택시가 정차한 곳 근처에 동네 작은 슈퍼가 있었는데 주인아저씨가 가게 앞에서 이 상황을 쳐다보고 있는 게 슬쩍 보이기도 했다. 내가 같이 소리지르자, 나의 이런 행동에 아저씨는 얘가 술 먹고 미쳤나 하는 생각에 순간 당황해하시더니 이내 더 세게 삿대질을 하며 잘하면 한대 칠 기세로 더 심하게 소리 지르며 욕을 했다. 난 그때 무슨 생각으로 그 아저씨한테 끝까지 대들었는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큰일 날 상황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술 먹고 제정신이 아니었던 거 같다.
내가 끝까지 지지 않고 대들어서 그런지, 아님 아저씨는 돈을 받을 수 없다는 판단이 들어서 그런지, 이렇게 시간을 보내느니 차라리 다른 손님을 받아서 수입을 만회하자는 생각인지, 결국 마지막으로 최대한 높은 수위의 욕과 더럽게 재수 없는 날이라는 말을 남기고는 떠나셨다. 그 아저씨한테 한 대라도 맞지 않은 건 동네슈퍼 주인아저씨의 눈이 한몫했으리라 생각한다.
다음날 오후쯤 엄마가 동네 슈퍼 주인한테 들었다면서 어떤 술 취한 젊은 아가씨가 밤늦게 택시기사 아저씨랑 심하게 막 싸웠다는 얘기를 하며 넌 절대 그러지 말라고 그러다 큰일 난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 게 나인 줄 아셨으면 엄만 얼마나 놀라고 창피하셨을까.
그 뒤로 난 술에 취한 상태로는 동승자가 있지 않는 한 절대 혼자 택시를 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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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시간을 보내고 회사에 입사했다. 회사에서는 술은 또 다른 의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