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해설, 재미있으셨나요?

by 선율

어떻게 하면 재미있을까


경복궁 해설하면서 늘 하게 되는 고민이다.


해설을 다시 시작한 지 3년 정도 되었다. 10년도 훨씬 전 처음 해설을 시작할 때의 해설 매뉴얼은 지금의 것과 많이 달랐다. 그땐, 경복궁 전각 하나하나와 그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기 바빴다. 최대한 많은 내용을 관람객들에게 전달하는 게 목표였고 그게 해설을 잘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해설 시간도 두 시간을 가득 채웠다. 관람객들의 반응과 호응은 나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이를 좀 먹어서(?) 그런지 역사적 사실, 여러 가지 지식들을 내가 아무리 말해도 그 내용이 100% 다 듣는 사람들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안다. 관람객의 반응을 살피지 않고 일방적으로 내용만을 말하는 건 '나 이만큼 알고 있어요'라고 아무도 원하지 않는 혼자만의 자랑질 그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다. 두 시간 힘들게 떠들어 댔어도 관람객들의 머릿속에 남는 내용은 거의 없는, 그야말로 시간낭비, 헛수고일 뿐이다.


하나를 설명하더라도 기억에 남을 수 있게, 나중에 기억을 떠올렸을 때 이 시간이 즐거웠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게 해설하는 게 목표다. 기본적으로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해설을 들으려고 하기 때문에 조금만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와 함께 해설을 하면 돌아오는 반응은 어마어마하다. 특히 호응이 좋은 관람객을 만나면 절로 신이 나고 하나라도 더 재미있게 내가 아는 얘기를 다 쏟아붓고 싶어 어쩔 줄 모른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있게 해설을 할지에 대해 지금도 고민하게 된다. 해설 시간도 큰 부담 없는 한 시간 반을 살짝 넘기는 수준으로 줄였다.


장소를 이동해 가며 전각을 설명할 때마다 어려운 용어와 역사적 사실들의 나열에 자칫 설명이 지루할 수 있다. 이럴 땐 에피소드를 섞어가며 쉽게 이야기를 풀어가려고 한다. 예를 들면,


- 우리나라 역사적 인물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누구일까요? 세종대왕? 이순신? 물론 유명하지요. 하지만 가장 유명한 인물은 바로... '장금'이 입니다. 드라마 대장금이 너무나 유명해지는 바람에 중국, 동남아에서 관람객들이 경복궁을 방문하면서 하나같이 묻는 질문이 장금이 일하던 곳, 즉 소주방에 대한 것이었어요. 그래서 소주방 영역을, 복원이 계획되어 있던 다른 전각들을 다 물리치고 우선순위로 복원했습니다. 소주방은 그 이름만으로 술과 관련 있는 장소라고 오해하기 쉬운데요, 불을 때는 '소'와 주방의 '주'를 합친 이름으로 왕의 음식을 만드는 공간입니다. 내소주방, 외소주방, 생물방으로 이루어져 있고........(이하 생략)


-여기가 조선시대 최초로 전기불이 켜진 장소입니다. 당시 왕이었던 고종은 에디슨 회사에 직접 전기발전시설을 설치해 달라고 편지를 보냈대요. 에디슨은 고종의 편지를 보고 '동양의 한 조그맣고 신비로운 나라에서 내가 발명한 전기를 설치해 달라고 하니 참 기쁘다.'라고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불은 건달불, 또는 덜덜이불이라고 불렀는데요, 설치한 전기 발전시설이 불안정한 나머지 불이 깜빡깜빡했고, 또 불이 켜지면 발전기 돌리는 소리로 인해 덜덜덜 소리가 나서 그랬답니다.


- 이 고리는 왜 여기 있을까요 네, 이건 차일고리라고 하는데요, 더운 날 햇볕을 차단하기 위해 또, 비를 막기 위해 차양막(천막)을 설치할 때 쓰던 고리입니다. 그런데 위치를 한번 보시겠어요? 네 맞아요 아까 설명드린 정 2품과 종 2품 품계석 사이에 있어요. 즉, 여기 등급의 관리들까지만 차양막의 혜택을 볼 수 있죠. 나머지 정 3 품부터 마지막 9품까지는 비 오면 비 맞은 채로, 더운 날은 쨍쨍 햇볕을 받으며 서 있어야 했어요.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이 이런 사소한(?) 일에서부터 느껴지게 합니다.

[차일고리]


영어 해설을 준비하는 지금은 한국어 해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고민이 크다.


해설 매뉴얼이야 미리 준비하고 외우면 어찌어찌 되겠다고 해도 부족한 발음과 수준 낮은 영어 실력으로 어떻게 해야 외국인들의 관심과 흥미를 끌 수 있을까


첫 수업에서 스크립트를 설명해 주신 선생님은, 외국인에게 관심을 끌 수 있고 집중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사진 자료 활용하기

서양사의 큰 사건이나 유명한 인물과 비교해서 설명하기

요즘 경복궁과 관련된 이슈와 함께 설명하기


라는 방법을 알려 주셨다.


예를 들면, 1392년 조선을 세우고 제일 먼저 터를 잡아 경복궁을 세웠다는 얘기를 할 때는,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해인 1492년 보다 100년 앞섰다는 설명과 함께 하는 것, 근정전을 설명할 때는 BTS의 공연 장면 보여주기, 근정전 내부의 왕의 뒤에 있는 그림인 일월오봉도를 설명할 때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배경으로 나온 장면 보여주기, 그리고 근정전 주위의 행각을 설명할 때는 구찌 패션쇼 사진 자료를 보여주는 식이다.

BTS 공연
케이팝 데몬 헌터스-일월오봉도
케이팝 데몬 헌터스-일월오봉도
2024 구찌 패션쇼

이런 눈에 확 뜨이는 사진자료를 활용함으로써 부족한 영어 실력을 조금이라도 만회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안심이 된다. 최신 사진자료에 맞게 내 수준의 맞는 영어 매뉴얼을 쓰고 입에 붙을 때까지 연습하는 건 아직 남아있는 숙제지만 일단 든든한 백이 생긴 거 같아 마음이 놓인다.


유난히 관람객이 고개를 끄덕이며 신기해하고 재미있다고 한 번이라도 더 웃어주는 날은 해설을 마쳤을 때, 가슴속에 느껴지는 뿌듯함으로 하루가 행복하다.


해설이 끝나고 너무 잘 들었다고 몇 번이고 인사하는 분, 목을 축이라며 가지고 있는 물병을 조용히 건네는 분, 추운 날 장갑을 챙기지 못한 채로 마이크를 들고 있으면 본인의 장갑을 벗어서 가지고 가도 된다며 건네주는 분, 자원봉사 단체 홈페이지에 너무 잘 들었고 덕분에 역사가 재밌는지 알게 됐다며 소중한 해설 후기를 남겨주는 분들을 만나면 벅찬 감동과 자부심이 물밀듯 밀려오게 된다.


'굿 라이프-내 삶을 바꾸는 심리학의 지혜'라는 책에서 저자인 최인철 심리학과 교수는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은 타인의 행복을 침해하지 않을뿐더러, 나아가 타인의 행복을 돕는 행복이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관람객들이 관심을 가지고 귀 기울여 들으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나 역시도 행복해지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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