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영어해설반 첫 스터디 후기
지난 둘째 주 토요일은 영어해설반 첫 스터디 날이었다.
난 미리 예정된 가족여행 일정으로 스터디 참석이 어려웠고 첫 수업 불참에 대한 아쉬운 마음속에 수업 녹음본 파일이 카페에 올라오기만을 기다렸다.
주말이 지나고 이틀 후, 기다리던 녹음본이 올라왔다는 공지가 단톡방에 떴다. 전날 밤늦게 가족여행에서 돌아왔기 때문에 그날 저녁은 여행 뒷정리와 집안정리를 해야 했고, 그래서 다음날 아침 출근길부터 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회사 출근은 자차와 지하철을 번갈아 이용하고 있다. 아니 실은, 요즈음엔 추운 날씨를 핑계로 거의 차를 이용하는 중이다. 회사까지는 약 25분, 하루 중 개인적인 시간을 낼 수 있는 시간이 충분치 않으니 출퇴근 시간부터 먼저 잘 이용해서 공부를 해보자는 게 내 계획 중 하나 다. 집 주차장을 빠져나온 후 처음 걸린 신호대기 중, 새로운 공부를 한다는 기대감과 첫 수업에 대한 설렘을 가득 담고 미리 핸드폰에 다운로드하여 놓은 녹음본을 켰다.
그런데.... 어... 이게 뭐야.... 영어 강의.... 맞아... 이거 영어 스터디였지....
운전을 하며 여유 있게 귀로만 수업을 들으려고 했던 나의 안일하고 오만한 생각은 일순간에 무너졌다. 강의는 영어로 진행된다는 어쩌면 당연한 사실을 난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운전 중이라 강의 스크립트를 보지 못한 채 오로지 듣기만으로 강의내용을 이해하기란.... 불가능했다. 한 문장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맞아... 난 최근에 쉬운 영어 문장 하나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지... 이런 내가 영어강의를 스크립트 없이 운전을 하면서 동시에 편안하게 들으려고 했던 거야? 맙소사, 정신차렷!!!
바로 STOP버튼을 눌렀다. 이렇게 들어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조금 전까지 가득했던 기대감과 설렘은 온데간데없고 이거 큰일 났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회사에 와서 오전 업무를 끝내고 난 뒤의 점심시간. 보통 점심을 먹고는 회사 근처 공원을 한 바퀴 산책한다. 걸으면서 다시 핸드폰의 녹음본 파일을 꺼내 들었다. 운전중일 때야 스크립트를 볼 수도 없고, 중간중간 운전을 하면서 집중력도 흩어질 테니 어렵다 하더라도, 걸으면서는 스크립트를 볼 수도 있고 온전히 수업에 집중할 수도 있으니 산책 중에는 가능할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결과는 아침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론 스크립트를 볼 수 있으니 분명 아침보다야 나은 조건이긴 했다. 하지만 단어가 문제였다. 한국말로도 설명하기 쉽지 않은 관련 단어들을 영어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어단어를 찾아가며 그 뜻을 알아야만 했다. 아니, 실은 영어에서 손 놓은 지 꽤 오래된 나의 어휘력이 기본적인 문장을 이해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형편없었다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스크립트를 보며 강의를 듣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강의를 멈추고 단어검색을 위해 영어사전 창을 열어보며 뜻을 확인해야 했다. 작은 핸드폰 화면에서 창을 수시로 왔다 갔다 하기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검색할 단어가 가끔 나오면 좋겠지만 순식간에 지나가는 문장들 속에는 모르는 단어들로 가득했다. 결국 또 STOP버튼을 누르고 핸드폰 화면을 끌 수밖에 없었다.
하... 이럴 수가...
하루 중 출퇴근 시간이나 점심시간 같은 자투리 시간에 틈틈이 공부하고 해설을 준비하려 했던 내 계획이 여지없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대충 해서는 안 되겠구나...
제대로 책상에 앉아서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게 먼저다.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강의용 스크립트와 영어사전 창을 동시에 띄어놓고 단어 뜻을 확인하며 집중해서 강의를 들어야 한다. 단어는 따로 정리해 가며 익히고, 수업 내용도 중요한 부분은 적어가며 이해하고 해설에 적용할 부분은 따로 표시한다. 진짜 무슨 영어시험을 준비하는 학생으로 돌아가는 기분이다. 하지만 부족한 내 실력엔 이렇게 해야만 겨우 따라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이렇게 마음먹으니 허탈한 웃음과 함께 오히려 마음은 편안해 짐을 느낀다.
1,2부로 구성되어 있는 수업은, 보통 1부엔 영어 해설반의 교장 선생님 역할을 맡고 계신 분이 주제를 정해서 강의를 해주시거나 외부강사를 초빙해서 특강을 하고, 2부는 각 궁별 해설 매뉴얼을 발표하는 시간을 갖는다. 난 경복궁 영어해설을 위해 여기 들어왔지만 경복궁뿐만 아니라 5개 궁(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 해설사 분들이 모두 모여서 하는 스터디이기 때문에 궁별 해설 매뉴얼을 돌아가면서 발표하고 공유하고 의견을 내는 시간을 갖는다.
새해 첫 1부 수업에는 'queens&empire of korea'를 주제로 보통은 왕 위주로만 얘기하는 것에서 벗어나 특별히 왕비의 역할과 삶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러다 보니 '내/외명부, 수렴청정, 섭정'같은 한국말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단어들이 나와서 처음 영어강의를 들은 나로서는 특히 더 어렵게 느껴졌던 거 같다.
반면 2부 수업엔 경복궁 스크립트를 발표하는 시간이라 상대적으로 이해하기가 쉽고 듣기가 수월했다. 하지만 질문을 예상한 모든 관련 내용을 다 넣은 36페이지나 되는 이 많은 스크립트 중 내 영어 수준에 맞게 영어 문장을 수정하고 나만의 해설 매뉴얼을 만든 후, 자연스럽게 설명이 나오도록 연습을 해야 하는 건 순전히 내 몫의 일이다. 걱정으로 마음이 한가득 채워지는 것 또한 어쩔 수가 없다.
급하게 마음먹지 말고 한 번에 이루려고 하지 말고 조금씩 할 수 있는 만큼만 해야지 마음먹는다. 뭔가를 해내는 사람은 포기하지 않고 그 자리에 남아있는 사람이니까. 막막하게만 느껴지는 나에게 용기를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