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오프 스터디에 참석했다.
개인적인 일정으로 1월 스터디는 두 번 다 참석하지 못한 상태였다. 나만 따라가는 게 어렵지는 않을까. 이미 익숙해졌을 다른 선생님들 사이에서 나만 서먹하진 않을까 두려움도 있었지만 드디어 생생한 라이브로 원어민 원장 선생님의 강의를 직접 듣는다는 기대감과 스터디의 느낌이 어떤지에 대한 설렘이 더 컸다.
여유 있게 도착하여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가니 미리 온 선생님들끼리 안부를 물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다 영어로 이루어진다.... 원장선생님과 운영진분들을 중심으로 자신감 넘치는 큰 목소리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걸 보는 순간, 난 자연스럽게 고개가 떨구어졌다. 혹시나 안면 있는 선생님이 나에게 말을 걸고 인사할까 싶어 고개 숙인 채로 조용히 한 구석을 찾아 자리를 잡고 앉았다. 처음부터 주눅이 들고 자신감이 떨어지는 이 기분... 다행히 작년에 들어온 경복궁 한국어해설 신입기수 선생님을 발견하고 그 옆을 찾아가 앉으니 조금은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드디어 스터디 시작.
먼저 지난 2주간 실제 영어 해설을 하신 분들의 후기를 들었다. 추운 날씨에 진행되었던 해설의 느낌과 함께 더 준비했으면 좋았을 부분에 대해서였다. 자연스럽게 웃으며 자신들이 겪었던 일과 그 순간의 느낌을 영어로 공유하는 모습을 보니 부러운 마음이 한가득했다.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연신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들었다. 나도 언제가 저 비슷한 자리에 서 있을 상상을 해본다.
오늘의 스크립트 대상은 창경궁이다. 그전에 먼저 창경궁과 창경원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창경궁은 대한제국의 황실 가족들이 머물던 거주공간이었다. 그러다 일제가 민족정기 말살 정책의 목적으로 창경궁을 놀이공원, 동물원, 식물원으로 만들고 일본 국화 벚나무를 심어 사람들이 유흥을 즐기는 장소인 창경원으로 격하시켰다. 창경궁 동물원과 식물원의 종수를 포함, 그 어마어마한 규모에 대한 설명을 들으니 일본에 대한 분노와 반감이 저절로 생긴다. 하지만 이것도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이라는 걸 잘 안다. 아픈 역사라고 외면할 수만은 없는 법. 혼자라면 피했을 아픈 우리 역사를 이렇게 다 같이 있는 자리에서만이라도 담담히 마주하고 사실을 파악하고 정확히 인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정확히 언제 어떤 방식으로 궁을 원으로 선포했는지에 대한 증거와 공식적인 기록이 있는지에 대한 얘기가 이어졌다. 대화를 주고받는 순간에도 각자 자료를 검색하고 의견을 내면서 답을 찾는 모습이 자유롭고 인상적이다. 오래간만에 주입식이 아닌 제대로 된 공부를 하는 느낌에 혼자 뿌듯했다. 물론 난 단 한마디도 못했고, 겨우 준비된 자료를 따라 읽어보려 이해해 보려 애썼고, 모르는 단어를 찾느라 정신없었지만 이 또한 시간이 지날수록 나아지겠지.
본격적으로 창경궁 스크립트 점검을 시작했다. 준비해 온 스크립트를 화면에 띄우고 한 단락씩 읽어 가며 원장 선생님의 영어 뉘앙스와 외국인 입장에서 들었을 때 어떤지에 대한 의견 포함, 영어로 이렇게 표현하는 게 맞는지 덧붙여야 할 설명이나 필요 없는 부분은 없는지에 대해 같이 생각해 보며 얘기하는 시간이다.
그런데 각 단락을 읽어 내려가는 일을 맨 앞사람부터 앉아있는 순서대로 읽도록 시키는 것이 아닌가... 허걱... 3-40명 정도 되는 선생님들 앞에서 영어 문장을 소리 내서 읽어야 하다니... 쉬운 영어회화 문장도 아니고 이렇게 설명하는 문장들을 큰 소리로 읽어본 적이 과연 언제인가. 내 기억엔 고등학교 영어시간부터 읽을 일이 없었던 같다. 회사 다니며 회화나 토익을 공부해 보긴 했지만 이렇게 온전히 내 소리를 내며 영어문장을 읽었던 일은 딱히 기억나지 않는다. 내 형편없는 발음은 어쩌지... 잘못 발음하면 창피한데... 내 차례가 다가올수록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긴장 속에서 스터디가 끝났다. 뒤에 앉아 있었던 한국어해설 사랑방에서 많이 봤던 선생님들이 날 찾아왔다. 작년부터 시작한 선생님들이다.
'첫 수업이라고요?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고 정신없죠? 갑자기 막 영어 문장 읽는 거 시키고 ㅎㅎ 저도 그랬어요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ㅎㅎ 선생님 보니 작년 생각난다'
하면서 날 이해해 주셨다. 그런 상황부터 시작해서도 진짜 하반기에는 영어 해설 하게 되는 거예요?라고 걱정되는 마음에 물어보니
'전 도저히 실력도 안되고 자신이 없기도 해서 외국인 해설할 때 옆의 이 선생님과 구역을 나눠서 했어요. 해설 끝나자마자 혹시나 질문할까 봐 시간 없다면서 서둘러 끝냈다니까 ㅎㅎ 50이 훌쩍 넘은 저도 어떻게든 하는데 선생님은 잘할 수 있을 거야. 저렇게 자유롭게 프리토킹하는 선생님 몇 안되니까 신경 쓰지 마ㅎㅎ.'
하며 한없이 떨어진 내 자신감을 붙들어 주셨다. 그 말이 너무 감사하고 위안이 됐다.
3시간 스터디를 참석하기 위해 오고 가는 왕복 시간이 더 걸리기에 매번 고민했는데 와서 직접 참석해 보니 너무 좋다. 같은 공간에서 여러 선생님들이 뿜어내는 열정적이고 생생한 에너지는 녹음 파일로는 전혀 느낄 수 없다. 공간의 힘이 중요함을 또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스터디만 빠지지 않으면 됩니다. 누구든 다 하실 수 있습니다.'라는 말이 이해되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