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싫어하는 사람은 만나 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대중음악에 관한 글, 심지어 그중에서도 우리나라에서 좋아하는 이 몇 없는 메탈 장르에 관한 글을 클릭하셨을 정도라면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독자분은 아마 음악을 상당히 좋아하시는 분일 겁니다.
전 사람이 나이를 먹어 가면서 자연스레 감성적인 충족이 필요하게 되어 음악을 좋아하게 되는 건지, 아니면 다들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 음악을 좋아하게 되는 건지 알지 못합니다. 제 경우는 후자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한 대학교의 수학 영재교육원에 입학한 기념으로 비틀즈(The Beatles)의 『1』이란 음반을 선물 받았는데, 제겐 그것이 음악, 그중에서도 특히 록 음악에 빠지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죠. 그 이후로 음악을 듣는 것이 제 삶에서 가장 큰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그 뒤로 1년 정도 전 록 음악의 다양한 하위 장르들을 알아 나갔습니다. 그때 많이 들었던 밴드로는 비틀즈(비틀즈는 요즘도 좋아합니다), 스콜피언스(Scorpions), 오아시스(Oasis), 너바나(Nirvana) 등이 있네요.
중학교 2학년이 되었습니다. 3월이었던가, 4월이었던가... 전 메가데스(Megadeth. 1985년 데뷔한 미국의 스래쉬 메탈Thrash Metal 밴드)의 최고 걸작이라 일컬어지는 『Rust In Peace』(1990)를 구매했습니다. 공격적이고 냉소적인 스타일의 스래쉬 메탈 앨범, 『Rust In Peace』는 그 전까지 메탈 음악이라고는 스콜피언스, 본 조비(Bon Jovi) 등의 부드러운 멜로디를 강조한 팝 메탈(Pop Metal)밖에 몰랐던 저에게는 충격을 안겨준 음반이었죠. ‘세상에 이런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구나’라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얼마 뒤 제가 그런 사람 중 하나가 될 거란 사실도 모른 채로요.
『Rust In Peace』가 어떻게 절 사로잡았는지 저도 명확히 설명하지는 못하겠습니다. 제가 그나마 말할 수 있는 것은 메가데스의 음악 특유의 분노와 냉소, 정교함 등이 당시 제가 느끼던 감정과 신념 등을 대변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청소년 시기의 저는 엄청난 감정적 격동을 겪고 있었고, 공격적이면서도 지적인 질서를 갖춘 음악을 연주하는 메가데스는 그 격동에 안정감을 부여해 주었습니다. (메가데스의 리더 데이브 머스테인Dave Mustaine의 안 좋은 성격과는 별개로) 그들은 제 혼란을 해결해 주는 영웅이었죠.
훨씬 나이를 먹고 차분해진 지금도 전 여전히 『Rust In Peace』의 음악을 좋아합니다. 만약 제게 청소년 시기로 되돌아가고 싶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아니오’지만 그 시절 메가데스가 제게 주었던 감동을 기억하냐고 묻는다면 ‘예’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전 메가데스의 ‘공격성’과 ‘질서’라는 요소에 주목했고, 비슷한 시기 처음 접했던 나이트위시(Nightwish), 아이언 메이든(Iron Maiden) 등의 밴드들을 통해 곧 그것이 메가데스의 음악뿐만이 아니라 메탈 음악 전반에 나타나는 특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전 메탈헤드(Metalhead. 메탈 음악의 팬을 일컫는 말)가 되었고, 현재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흔히 메탈 장르의 음악을 ‘헤비메탈’(Heavy Metal)로 통칭하는 경우가 많은데, 헤비메탈은 넓은 의미로는 메탈 장르를 총칭하는 말이지만 좁은 의미로는 스래쉬 메탈, 팝 메탈 등 수많은 하위 장르들의 원류가 된 가장 정통적이고 전통적인 메탈 음악을 이르는 단어입니다. 헤비메탈과 메탈의 관계는 우리나라의 서울과 수도권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죠.
19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 ‘하드 록’(Hard Rock)이라는 무겁고 강력한 사운드와 연주를 특징으로 한 장르가 생겨났고, 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에 하드 록에서 더 나아가 본격적인 헤비메탈이 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헤비메탈은 이후 수많은 하위 장르들로 나뉘어 발전하는데, 이 시리즈에서는 하드 록부터 시작해서 헤비메탈의 발전, 그리고 중요한 하위 장르들의 발전과 흐름에 대해 다루고자 합니다. 글이 많이 주관적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왜 메탈인가? 의미와 어원
메탈 음악에는 수많은 하위 장르가 있고, 스타일도 다양합니다. 그러나 메탈 음악의 전반적인 매력이라면 특유의 공격성이 주는 카타르시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메탈 음악은 강력하고 공격적인 연주, 금속적인 기타 사운드와 고음의 내지르는 보컬, 빠른 템포 등을 특징으로 합니다. 이러한 공격성은 메탈이 대중음악이 나타낼 수 있는 가장 격정적인 영역을 넘나들 수 있게 하죠.
음악계에서는 가끔 이런 담론이 논의됩니다.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이 현대에 되살아나 다시 음악가로서 활동한다면, 어떤 장르를 택할 것인가?’
많은 전문가들이 이 담론에 대해 ‘메탈’이라고 답합니다. 베토벤은 탄탄한 구축력을 가지고 있으며 격정이 넘치는 곡들을 작곡했는데, 이러한 격정과 드라마틱함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대중음악 장르가 메탈이라는 것이죠.
메탈 음악은 분노와 공격성 등을 거침없이 드러냅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꾸며낼 것을 종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메탈은 그것을 위선이라 보고, 솔직한 자기표현을 중시합니다.
그렇다면 왜 이 장르에 헤비메탈, 즉 ‘중금속’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을까요? 1960년대 후반에 결성된 스테판울프(Steppenwolf)라는 하드 록 밴드가 발표한 「Born To Be Wild」라는 곡의 가사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I like smoke and lightning, HEAVY METAL thunder’
이 구절에서 헤비메탈(Heavy Metal)이라는 이름이 유래했다고 보기도 하지만, 사실 헤비메탈이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쓰이게 된 것은 70년대 초 록 평론가였던 레스터 뱅스(Lester Bangs. 1948~1982)에 의해서였습니다. 그는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이나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 등 하드 록 밴드들의 음악을 묘사할 때 ‘중금속(Heavy Metal)이 내리치는 것 같다’라는 표현을 자주 썼습니다. 이는 묵직하고(heavy) 금속적인(metal) 기타 사운드가 고막을 두드리는 당시의 하드 록을 묘사하는 데 아주 적절한 표현이었죠. 이후 헤비메탈이라는 용어가 대중화됩니다.(70년대 후반부터는 하드 록과 헤비메탈을 구분하게 되었지만, 이때는 아직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헤비메탈은 이후 수많은 하위 장르들로 나뉘어졌고, 그러한 하위 장르를 명명할 때 ‘무슨무슨 메탈’이라는 이름을 많이 쓰게 되었습니다.
메탈 음악에 대한 편견들
많은 이들이 메탈 음악 하면 ‘시끄러움’이라는 단어를 가장 먼저 떠올립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메탈 음악은 대체로 공격성을 띠고 있죠.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는 것은 그 시끄러움이 메탈 음악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많은 이들이 메탈 음악 또한 대중음악의 한 장르라는 것을 잊습니다. 많은 이들이 듣고 즐기며 다양한 감성을 충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음악이고, 그런 음악이기에 현재까지 메탈 음악이 대중음악계에서 생존할 수 있었다는 것을 말이죠.
실제로도 분노와 공격성을 담은 메탈 음악이 있지만 구슬픈 메탈 음악도 있으며, 흥겹고 경쾌한 메탈 음악도 있습니다. 그리고 메탈의 사운드와 구조적 형식으로 감성적인 발라드를 연주하는 경우도 많은데, 스콜피언스Scorpions와 본 조비Bon Jovi 등의 ‘록 발라드’는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합니다.
시끄럽기만 하면 메탈이 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일단 대중음악의 장르 중 ‘시끄럽다’는 표현을 쓸 수 있는 장르는 메탈 외에도 펑크(Punk) 등이 있고, 무엇보다 메탈은 꽉 짜여진 정교한 연주와 사운드를 필요로 하는, 상당히 프로페셔널(Professional. 전문적인)한 음악이기 때문입니다. 메탈이 무질서하고 몰상식한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실제로는 메탈은 극도로 구성미를 중시하는 음악이며 태동기 때부터 가장 전문적인 연주자들이 해 오던 음악입니다.
메탈 음악의 시초 중 하나이자 후대의 밴드들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밴드, 딥 퍼플Deep Purple의 기타리스트 리치 블랙모어Ritchie Blackmore와 키보디스트 존 로드Jon Lord는 전문적인 클래식 음악 교육을 받은 이들이기도 했습니다. 딥 퍼플은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음반을 내기도 했는데, 블랙모어와 로드의 고전음악에 대한 지식과 편곡 감각은 음악적 엘리트들이라 할 수 있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놀라게 했다는군요.
메탈 음악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
메탈 음악은 무겁고 금속적인 기타 사운드, 고음의 내지르는 보컬, 빠른 리듬 등을 특징으로 합니다. 그리고 메탈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리프(riff)의 개념 또한 알아야 합니다.
리프는 ‘반복되는 악절’이라는 뜻인데, 악절을 반복한다는 개념 자체야 고전음악 시절부터 있던 것이지만 대중음악에서 리프라는 개념은 재즈에서 유래했습니다. 재즈에서는 즉흥연주를 자주 하는데, 아무리 즉흥연주라 해도 아무렇게나 할 수는 없으므로 특정한 악절을 만들어놓고 그것을 반복하며, 그 위에 즉흥연주를 얹는 식으로 한 것이죠. 그래서 리프는 주로 반복되는 코드 진행을 이끄는 역할을 합니다.
물론 대중음악이 발전하면서, 리프는 단순히 코드 진행뿐만이 아니라 독자적인 멜로디를 갖춘 악절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메탈 음악에서 리프는 상당히 중요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데, 기타가 연주하는 리프의 반복과 변주 등이 곡을 이끌어나가는 데 있어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리프라는 개념이 메탈에서만 쓰이는 것도 아니고, 메탈 음악이 여러 방향으로 분화하면서 리프 대신 전통적인 코드 연주를 중심으로 놓는 작곡 방식도 발전했기 때문에 리프가 메탈 음악을 정의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입니다.
또한 메탈 음악에는 기타의 솔로 연주가 상당한 비중을 가지는 경우가 많죠. 대중음악의 수많은 장르 중 메탈 음악에서 특히나 연주자의 역량이 중요시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대중음악에서는 보컬이 음악의 중심이 되는 경우가 많지만, 메탈 음악에서 보컬은 악기 중 하나일 뿐입니다. 수많은 기타리스트들이 연주하는 솔로를 듣고, 그들의 스타일을 분석하는 것 또한 메탈 음악을 듣는 재미 중 하나입니다.
독자분들에게 당부드리고 싶은 것
이 시리즈를 읽으실 분들에게 먼저 당부드리고 싶은 것이 있는데, 첫 번째는 장르 구분이란 것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제가 뮤지션들을 장르에 따라 분류하고 소개하긴 했지만, 사실 ‘이 밴드는 이 장르의 특징에 정확히 들어맞는 밴드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또한 어떤 장르의 대표격이었던 밴드도 시간이 지나면서 스타일이 변화해, 다른 장르로 옮겨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2000년대 들어서 메탈코어(Metalcore) 스타일로 방향을 전환했으나 원래는 멜로딕 데스 메탈(Melodic Death Metal)을 연주하던 밴드, 인 플레임스(In Flames)의 과도기 앨범을 놓고 ‘이 앨범의 장르가 무엇이냐’ 논의하는 것은 소모적인 논쟁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이 시리즈에서 메탈 음악의 하위 장르와 해당 장르의 앨범들을 대체로 등장한 시대, 스타일이 발전한 순서대로 나열하긴 했으나, 원류가 되는 장르가 하위 장르가 나타난 이후 소멸한 것은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메탈 음악의 시초에는 헤비메탈이 존재하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하드 록이 존재하며 그들로부터 수많은 하위 장르들이 발전해 왔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다루지 않았을 뿐, 현재에도 하드 록이나 헤비메탈 스타일의 음악을 하는 밴드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다룰 10가지 장르 모두 현재에도 생존 중인 장르들입니다.
세 번째로, 제가 소개한 음반들이 반드시 각 장르나 뮤지션 최고의 명반들인 것은 아닙니다. 저도 나름대로 최고의 명반들을 선정하려고 했으나, 구성상 음반의 완성도보다는 해당 음반이 메탈 음악에서 가지는 의의 등을 우선시해서 선정해야 했던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반대로, 메탈 음악사에서 가지는 의의보다 얼마나 훌륭한 음반인가를 먼저 고려해서 선정한 것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시리즈에서 제가 소개한 뮤지션들 외에도 훌륭한 음악을 하는 메탈 뮤지션들은 수없이 많다는 것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메탈 음악에 대해 이미 잘 아시는 분들이라면 ‘왜 내가 좋아하는 밴드나 내가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밴드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 건가’라는 의문을 품으실 수도 있는데, 지면상의 문제를 그 밴드들 모두에 대해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변명으로 삼으려 합니다.
음악은 사실 본인이 듣고 좋으면 그만입니다. 음악사를 읊고, 분석하는 것을 무의미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죠. 하지만 이 시리즈가 메탈이라는 대중음악의 한 장르에 막 관심을 가지게 된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메탈 음악의 세계는 광활합니다. 10명의 사람이 있으면 그 10명이 꿈꾸고, 즐기고, 말하는 것이 전부 다 다르죠. 100명의 사람이 있으면 그 100명이 꿈꾸는 것이 다 다릅니다. 100명의 뮤지션이 있으면 100종류가 넘는 음악이 탄생할 수 있죠. 그리고 대중들에게 이름이 익숙하지 않을 뿐, 메탈 뮤지션의 수는 매우 많습니다. 그들이 만드는 음악의 바다에 빠져들고 싶으신 분들에게 제가 소개하는 26장의 음반들이 좋은 시작이 되었으면 합니다.
(앨범 제목은 『』 안에, 노래 제목은 「」 안에 표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