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Black Sabbath-Paranoid(1970)
01. 하드 록 Hard Rock
흔히 1960년대를 록 음악의 황금기라 부릅니다.
그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일단 전 비틀즈(The Beatles)가 활동하던 시기가 60년대였다는 점을 꼽고 싶습니다. 비틀즈는 아예 사회적 현상으로 분류되었던 그 인기도 인기였지만, 대중음악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며 다양한 장르와 스타일을 실험하고 섭렵했던 음악적 성과로 인해 대중음악 사상 가장 중요한 뮤지션이 되었고, 현대 대중음악의 선구자가 되었습니다.
비틀즈가 록 음악의 역사에서 가지는 의의를 정리하자면 그들 이전에는 저속하고, 십대들이나 좋아하는 경박한 음악이란 이미지가 있었던 로큰롤을 다양한 하위 장르들을 포괄하며, 좀 더 진중하고, 10대들뿐만이 아니라 폭넓은 연령의 청중들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인 음악 장르, 즉 ‘록’으로 발전시켰다는 점일 겁니다.
비틀즈로 대표되던 1960년대는 1970년 비틀즈의 해체, 히피 무브먼트의 종말 등으로 끝났지만 60년대의 뮤지션들이 만들어놓은 다양한 스타일과 실험정신, 뮤지션쉽이라는 유산은 여전히 유효했습니다. 그리하여 60년대 말~70년대 초부터는 본격적으로 다양한 장르가 형성되어 각자의 방향으로 발전하게 되었죠. 그중 하나가 메탈 음악의 시초격인 하드 록입니다.
하드 록의 특징을 보자면 공격적인 사운드, 금속성이 강한 고음의 보컬, 기타 리프(반복되는 악절)와 솔로를 중심으로 한 곡 전개 등 현대의 메탈과 비슷한 점이 많지만, 블루스(Blues)적인 스타일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메탈과는 차이를 지닙니다.
블루스는 미국에서 노예 생활을 하는 등 힘든 삶을 살던 흑인들의 애환이 담긴 음악으로, 재즈(Jazz), 컨트리(Country) 등과 함께 록 음악의 탄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장르 중 하나입니다. Blues는 ‘우울함’이란 뜻의 영단어이고 블루스 음악은 실제로도 그런 분위기이지만, 한국에서의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마냥 슬프기만 한 음악은 아닙니다. 그저 템포 느린 댄스음악도 아니고요.
1930년대 후반부터 전자 악기가 본격적으로 발전하고, 클럽 등 넓은 공간에서 모든 청중이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음량을 증폭할 필요성이 생겼죠. 그리하여 전자 기타와 베이스 등의 악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일렉트릭 블루스(Electric Blues)라는 파생 장르가 탄생했는데, 일렉트릭 블루스의 묵직한 기타 사운드와 리프, 강한 비트는 60년대에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 크림 등의 밴드들에 의해 계승되었습니다. 보통 이들을 최초의 하드 록 밴드들로 꼽습니다. 비틀즈도 「Paperback Writer」, 「Helter Skelter」 등의 곡에서 강력한 사운드와 리프를 중심으로 한 곡 전개를 선보였죠.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에 등장했던 하드 록 밴드들 중 가장 중요하게 다뤄야 할 이들을 꼽자면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딥 퍼플(Deep Purple),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 이 셋을 꼽을 수 있습니다(셋 모두 영국 밴드입니다). 이들은 60년대의 유산을 바탕으로 ‘무겁고 강렬한 사운드’라는 공통점 아래 각자의 개성을 뽐내며 하드 록 장르의 교과서적인 음악을 만들었죠. 그리고 하드 록은 70년대 후반 등장한 펑크(Punk)의 영향을 받아 본격적인 헤비메탈로 발전하게 됩니다.
블랙 사바스 Black Sabbath
‘최초의 헤비메탈 밴드가 누구냐’는 질문에는 다양한 답이 나올 수 있습니다. 헤비메탈의 원류는 하드 록이고, 하드 록과 헤비메탈을 구분할 때 ‘블루스적인 영향이 강한 것이 하드 록이고, 직선적인 리프 패턴을 중심으로 한 것이 헤비메탈이다’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는 명확한 기준은 아닙니다. 그래서 최초의 하드 록 밴드들이었던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나 크림 등이 최초의 헤비메탈 밴드라 주장하는 이들도 있고, 비슷한 시기 활동했으며 ‘헤비메탈’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스테판울프(Steppenwolf)나 블루 오이스터 컬트(Blue Oyster Cult) 등을 최초의 헤비메탈 밴드로 보는 경우도 있지요.
그러나 ‘최초의 헤비메탈 밴드가 누구냐’는 질문에 정답은 없을지라도, 메탈 팬들의 대부분은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겁니다. 1968년 결성, 1970년 데뷔한 영국의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가 최초의 헤비메탈 밴드라고.
왜 블랙 사바스가 최초의 헤비메탈 밴드로 불리는지 논하기에 앞서, 그들의 결성과 데뷔에 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1968년 영국의 버밍엄(Birmingham)에서 기타리스트 토니 아이오미(Tony Iommi), 드러머 빌 워드(Bill Ward), 베이시스트 기저 버틀러(Geezer Butler), 보컬 오지 오스본(Ozzy Osbourne)의 구성으로 결성된 블랙 사바스는 1963년 작 공포영화에서 밴드 이름을 따왔다고 합니다. 공포영화에서 밴드 이름을 따온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들은 악마적이고 불길한 외형적 이미지를 추구했습니다. 블랙 사바스의 셀프 타이틀 데뷔앨범은 1970년 2월 13일에 발표되었습니다. 이는 의도적으로 13일의 금요일을 노린 것이었지요.
블랙 사바스가 악마적, 오컬트적인 컨셉을 내세운 이유는 이들이 실제로 사탄 숭배자였기 때문은 아닙니다. 이들은 ‘이전에 그러한 컨셉을 내세운 이들이 없었다’라는 이유로 어두운 이미지를 추구했는데, 당시의 영미 그리스도교계와 평론가들은 이를 좋게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데뷔앨범은 영국 차트 8위, 미국 빌보드 차트 23위에까지 오르는 등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죠.
블랙 사바스는 단순히 외형적으로만 악마적인 어두움을 내세운 것이 아니라, 음악 또한 어둡고 음울하기 그지없는 하드 록을 연주했습니다. 비슷한 시기 활동했던 영국 하드 록의 슈퍼스타인 두 밴드, 레드 제플린(Led Zeppelin)과 딥 퍼플(Deep Purple)은 비교적 정통적인(블루스에 기반을 둔) 하드 록을 연주했죠. 그 둘은 빼어난 연주력을 바탕으로 장대한 구성과 다양한 스타일의 융합을 들려주었기에 활동 당시에 음악적으로 굉장히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반면 블랙 사바스는 연주력 면에서 레드 제플린이나 딥 퍼플 수준에 미치지 못했고, 음악도 비교적 단순한 리프 반복을 중심으로 했습니다. 그래서 1970년대 초반 이들은 평론가들에게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죠. 음악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에 괜히 악마니 뭐니 하는 요상한 컨셉을 내세운다는 악평을 듣기도 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 어두운 외형과 음울한 분위기, 리프 반복을 중심으로 한 곡 전개가 이들이 후대에 ‘최초의 헤비메탈 밴드’라는 찬사를 받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으니 아이러니합니다.
데뷔앨범이 성공하자, 블랙 사바스는 그 여세를 몰아 같은 해 9월 2집 『Paranoid』를 발표합니다. 데뷔앨범의 스타일을 발전시킨 『Paranoid』는 헤비메탈의 진정한 효시라 불리게 됩니다.
Black Sabbath 『Paranoid』(1970)
헤비메탈의 진정한 효시
01 War Pigs (추천)
02 Paranoid (추천)
03 Planet Caravan
04 Iron Man (추천)
05 Electric Funeral
06 Hand Of Doom
07 Rat Salad
08 Fairies Wear Boots
비록 ‘이전에 그러한 컨셉을 내세운 이들이 없었다’라는 이유로 선택한 악마적이고 어두운 이미지였지만, 이들은 그 이미지에 정말로 충실했습니다. 어둡고 육중한 아이오미의 기타, 버틀러의 공격적인 베이스와 보컬 오지 오스본의 음울하게 읊조리는 듯한 창법은 특유의 어두운 카리스마를 자아냈고, 이후 메탈 음악의 정서적인 면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헤비메탈] 장에서 다시 한번 다루게 될 오지 오스본은 가창력이 뛰어난 편은 아니지만, 상당히 개성적인 목소리(그리고 외모)의 소유자입니다.
동시대의 다른 하드 록들과 마찬가지로 블랙 사바스의 음악 또한 블루스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블랙 사바스의 음악은 '테마' 면에서 가장 어둡고 공격적이었습니다. 이는 하드 록보다 더욱 공격적인 헤비메탈을 일찍이 제시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기타 리프를 중심으로 한 곡 전개 또한 블랙 사바스가 최초의 헤비메탈 밴드라 불리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블랙 사바스의 작곡에는 대체로 멤버 모두가 참여했는데, 그중 가장 큰 비중을 가졌던 이가 기타리스트 토니 아이오미입니다. 아이오미는 레드 제플린의 기타리스트 지미 페이지(Jimmy Page)와 딥 퍼플의 리치 블랙모어(Ritchie Blackmore)와 함께 최고의 기타 리프 작곡자 중 하나로 꼽히죠.
그러나 이들 셋 중에서는 아이오미가 가장 리프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이후의 본격적인 헤비메탈에서 들을 수 있는 리프의 반복과 변주 형태는 블랙 사바스에서 영향받은 면이 큽니다.
아이오미는 십대 시절 공장에서 일하던 중 오른손 중지와 약지 손가락 끝 마디가 절단되는 사고를 당하는데, 그는 왼손잡이였기에 오른손가락으로 기타 지판을 짚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아이오미는 특수한 골무를 제작해서 절단된 손가락에 끼우고 연주를 합니다.
반전(反戰) 성향이 강한 첫 번째 곡 「War Pigs」는 원래 「Walpurgis」라는 제목이었으며, 블랙 사바스는 이 곡을 타이틀곡으로 내세워 반전 메시지를 강조하려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레이블에서 이를 반대했고, 결국 밴드는 새로운 타이틀곡을 작곡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가장 마지막에 완성된 새로운 타이틀곡이 바로 「Paranoid」입니다. 레드 제플린의 「Whole Lotta Love」, 딥 퍼플의 「Smoke On The Water」 등과 함께 메탈 음악의 리프 패턴을 정립한 것으로 평가받는 이 곡의 제목은 ‘편집증’이란 뜻이지만, 사실 가사 내용은 우울증과 관련이 더 깊습니다. 작사를 주로 담당한 베이시스트 기저 버틀러는 나중에 한 인터뷰에서 ‘당시 나는 그 둘의 차이를 잘 몰랐다’라고 말했습니다.
「Paranoid」와 함께 본작에서 가장 헤비메탈스러운 곡인 「Iron Man」 또한 단순하면서도 인상적이며, 어둡고 육중한 리프 전개가 돋보입니다. 동명의 마블 코믹스의 캐릭터 아이언맨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곡은 아니지만, 2008년 마블 코믹스의 아이언맨이 실사 영화화되면서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본 곡이 쓰였죠.
『Paranoid』는 곧 소개할 레드 제플린의 『Led Zeppelin IV』나 딥 퍼플의 『Machine Head』에 비하면 좀 심심하게 들릴 수도 있는 음악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발표 당시에는 악평을 들었지만, 이 앨범의 진가는 헤비메탈의 본격적인 발전과 함께 드러났죠. 블랙 사바스는 오늘날 최초의 헤비메탈 밴드라는 평가를 듣고 있으며, 기타리스트 토니 아이오미 또한 (냉정히 말해 지미 페이지나 리치 블랙모어와 비교하면 부족한 연주력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헤비메탈 기타리스트 중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블랙 사바스는 다음 앨범인 3집 『Master Of Reality』부터는 기타와 베이스를 기존의 음에서 반음 낮춰서 조율한, 다운 튜닝(Down Tuning)이라는 기법을 사용합니다. 기타와 베이스는 원래 가장 저음 현이 E음이 되도록 조율하지만, 이들은 E♭이 되도록 조율한 것이죠. 다운 튜닝은 더욱 육중하고 음울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일조했으며 역시 후대의 많은 메탈 밴드들이 사용하고 있는 기법입니다.
이후로도 블랙 사바스는 꾸준히 활동을 해왔습니다. 1979년 악마적인 이미지를 만드는 데 큰 공헌을 했던 보컬 오지 오스본이 해고되고(자세한 이야기는 [헤비메탈] 장에서 하겠습니다) 그 이후로 여러 차례 보컬이 교체되는 등의 악재가 있었지만, 이들은 메탈 음악의 발전을 지켜보며 결성 이후 50년 가까이 활동을 해왔죠.
그러나 2013년 마지막 앨범인 『13』의 발표 후 토니 아이오미가 림프암 진단을 받았고, 블랙 사바스는 결국 2017년 완전히 해체하기로 결정을 내립니다. 그렇게 최초의 헤비메탈 밴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