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Led Zeppelin-Led Zeppelin IV(1971)
우리나라에서는 딥 퍼플에 비해 인지도가 떨어지긴 하지만, 레드 제플린은 현재까지도 록 음악계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밴드 중 하나입니다.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서 이들을 소개할 때 ‘70년대에 이들이 음악계에 끼친 영향력은 60년대에 비틀즈가 그랬던 것과 대등하다’라고 말할 정도죠.
엄밀히 말해 그러한 표현은 약간 과장된 감이 있지만, 어쨌든 레드 제플린은 그 정도로 존경받는 밴드입니다. 이들의 업적을 소개할 때 ‘세상에서 두 번째로 많은 음반을 판매한 록 밴드’라는 말을 하는 것도 좋겠죠. 물론 첫 번째는 비틀즈입니다. 록 밴드가 아닌 이들을 포함하면 레드 제플린은 비틀즈,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마돈나(Madonna), 엘튼 존(Elton John)에 이어 세상에서 6번째로 많은 음반을 판매한 대중음악가입니다.
레드 제플린은 1968년 야드버즈(Yardbirds)라는 밴드를 전신(前身)으로 결성되었습니다. 70년대에 일본의 한 평론가가 ‘영국의 3대 기타리스트’로 지미 페이지(Jimmy Page), 에릭 클랩튼(Eric Clapton), 제프 벡(Jeff Beck)을 꼽았는데, 야드버즈는 이들 셋 모두가 거쳐간 밴드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에릭 클랩튼-제프 벡-지미 페이지 순으로 거쳐갔죠.
야드버즈에 처음에는 베이시스트로서 가입했으나, 곧 제프 벡과 함께 기타를 연주하게 된 지미 페이지는 당시 영국 록 음악계에서 유명한 세션 기타리스트였습니다. 그는 제프 벡의 탈퇴 이후 야드버즈가 와해되어 가고 있음을 느꼈고, 새로운 밴드를 결성하기로 하죠. 그리하여 보컬에 로버트 플랜트(Robert Plant), 베이스에 존 폴 존스(John Paul Jones), 드럼에 존 본햄(John Bonham)을 규합해 뉴 야드버즈(New Yardbirds)라는 이름의 밴드를 만들고, 뉴 야드버즈는 얼마 안 있어 이름을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으로 바꿉니다. 그렇게 전설은 시작되었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메탈 음악계에서 비틀즈와 비슷한 업적을 남긴 이가 누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레드 제플린을 꼽을 수 있을 정도로 그들은 다양한 장르와 스타일을 섭렵했으며, 항상 완성도가 높은 결과물을 내었습니다.
하드 록의 탄생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준 장르는 블루스이고, 레드 제플린의 음악도 블루스를 기반으로 하지만 그들은 여기에 포크(Folk. 민속 음악), 사이키델릭 록(Psychedelic Rock. 환각적인 느낌의 록 음악), 훵크(Funk. 아프리카의 토속적인 흥겹고 끈적끈적한 리듬감을 강조한 음악. 펑크Punk와는 다릅니다), 레게(Reggae. 자메이카에서 유래한 재즈적인 리듬감의 음악), 인도 음악 등을 결합하며 비틀즈 이후로 정말로 보기 힘들었던, ‘다양성을 통한 개성적 색채’를 완성했습니다.
이들의 음악은 실험적이었지만, 항상 대중성을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 자신들이 원하는 스타일에 과감히 도전했습니다. 그리고 비틀즈가 그랬듯, 이들의 음악은 작곡 방식과 연주 테크닉, 사운드 메이킹 등이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한 요즘에도 듣기 어려운 완성도를 갖추고 있죠. 그래서 그들의 음악은 선구적이면서도, 현대에도 들을 가치를 지닙니다.
1969년 1월에 발표된 레드 제플린의 셀프 타이틀 데뷔앨범은 블루스와 당시 유행하던 사이키델릭 록의 성향이 짙었으며, 같은 해 12월 발표된 2집 『Led Zeppelin II』는 보다 직선적인 하드 록을 들려줍니다. 1970년도에 발표된 3집 『Led Zeppelin III』는 전반적으로 포크의 영향이 짙은 앨범이지만, 「Immigrant Song」과 같은 간결하고 헤비한 록 트랙 또한 수록되어 있습니다(「Immigrant Song」은 북유럽의 바이킹들을 소재로 한 곡으로, 요즘 세대에게는 북유럽 신화를 모티브로 한 마블 코믹스의 실사영화 <토르: 라그나로크>에 삽입된 곡으로 잘 알려져 있죠).
Led Zeppelin 『Led Zeppelin IV』(1971)
하드 록의 마스터피스
01 Black Dog
02 Rock And Roll
03 The Battle Of Evermore
04 Stairway To Heaven (추천)
05 Misty Mountain Hop (추천)
06 Four Sticks
07 Going To California
08 When The Levee Breaks (추천)
1971년 발표된 4집, 『Led Zeppelin IV』는 하드 록의 모범을 들려주었던 초창기와 더 실험적으로 나아가는 후반기의 중간에 위치하는 앨범으로, 양쪽의 장점을 모두 가지고 있는 이들의 최고 명반입니다.
또한 레드 제플린의 신비주의와 오컬트 취향이 유감없이 드러나는 앨범이기도 한데, 앨범 커버에 앨범 제목이 쓰여 있지 않았던 것도 그렇고 수록곡들의 신비로운 분위기, <반지의 제왕> 등 J. R. R. 톨킨의 소설을 소재로 한 가사 등에서 그러한 성향이 나타납니다. 앨범 커버에는 각 멤버들이 디자인한 의미불명의 로고 4개가 그려져 있고, 이 중 지미 페이지가 디자인한 로고가 영문자 ‘Zoso’와 닮았기 때문에 본작은 Zoso라 불리기도 합니다.
첫 두 곡인 「Black Dog」와 「Rock And Roll」은 비교적 정통적인 블루스·하드 록 트랙입니다.
이들의 신비주의적 분위기는 포크 록 트랙인 「The Battle Of Evermore」에서도 드러나지만, 신비주의적 분위기, 오컬트적인 성향, 여러 장르를 섞는 이들의 실험정신 등이 가장 극명히 드러나는 곡은 「Stairway To Heaven」입니다.
「Stairway To Heaven」은 길이가 8분에 이르는 대곡으로, 잔잔하고 쓸쓸한 클린 기타 톤(전자 기타 사운드를 별다른 왜곡 없이 출력하는 것)과 리코더 연주로 서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시작합니다. 그러나 중반부부터 드럼이 들어오고 템포가 점점 빨라지면서 본격적인 하드 록으로 변모해, 한 번 들으면 결코 잊을 수 없는 기타 솔로로 애절하고도 신비로운 분위기의 정점을 찍습니다. 그리고 모든 파트의 연주와 보컬이 터져 나오면서 그 정점을 이어가고, 마지막에 보컬 혼자서 도입부의 가사를 다시 한번 읊으면서 끝나죠. 흡사 문학 작품과도 같은, 기승전결의 구조를 완벽히 따르고 있습니다.
이 곡의 가사는 의미가 불분명하고 난해한데, 당시 기타리스트 지미 페이지가 알레이스터 크로울리(Aleister Crowley. 영국의 유명한 오컬티스트) 등 흑마법(...)에 심취해 있었기 때문에 곡의 신비로운 분위기와 맞물려 ‘악마를 숭배하는 곡이 아니냐’라는 질문을 많이 들었다고 합니다. ‘이 곡을 거꾸로 재생하면 사탄의 메시지가 나온다’라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졌을 정도였죠(그런 시대였습니다). 작사를 맡은 보컬 로버트 플랜트는 가사의 의미에 대한 공식적인 설명을 하지 않았고, 그저 ‘명확히 한 가지 의미만을 가진 것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Stairway To Heaven」의 길고도 인상적인 기타 솔로는 지금까지도 대중음악 사상 최고의 기타 솔로로 꼽힙니다. 지미 페이지는 놀랍게도 이 솔로를 녹음할 때, 즉흥연주를 세 번 하고 그중 가장 잘 된 것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Misty Mountain Hop」는 톨킨의 소설을 소재로 한 곡인데, 존 폴 존스의 일렉트릭 피아노 연주와 헤비하면서도 명상적인 분위기가 인상적입니다.
주술적인 기타와 드럼 비트의 「Four Sticks」, 목가적인 「Going To California」, 헤비하고 그루브(Groove. 흥겨운 리듬감을 의미합니다) 있는 「When The Levee Breaks」가 그 뒤를 이어, 앨범을 마무리합니다.
『Led Zeppelin IV』는 하드 록과 헤비메탈이 나아갈 여러 가지 방향성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체로도 굉장히 뛰어난 앨범이기도 하죠. 메탈에 큰 관심이 없으시더라도 들어볼 가치는 있는, 록 음악의 마스터피스 중 하나입니다.
레드 제플린은 비슷한 시기에 활동하던 ‘영국 하드 록 밴드’로서의 라이벌, 딥 퍼플과 자주 비교되었는데 딥 퍼플이 숱한 멤버 교체를 겪은 것과 달리 이들은 1980년까지 멤버를 단 한 번도 교체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980년 드러머 존 본햄이 알코올로 인해 사망하고, 나머지 멤버들은 그를 대체할 드러머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음악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요. 그렇게 그들은 음악적 여정에 오점을 남기지 않고, 해체되었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 전 저희 학교에서 몇 안 되는 메탈 음악 마니아였습니다. 당시 전 고전 하드 록 밴드들 중 딥 퍼플을 가장 좋아했고(이건 지금도 그렇습니다), 앨범도 몇 장 가지고 있었죠. 그러나 레드 제플린의 앨범은 없었습니다. 용돈이 부족해서요...
그런데 어느 날 도덕 시간에 ‘자기 자신이 어떠한 인간인지 정리해서 설명하라’라는 과제가 나왔습니다. 그때 (중3 특유의) 미쳐 돌아가는 저희 반 분위기 속에서도 묵묵히 성실하게 자기 일을 하던, 지적이고 과묵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과제 발표를 하면서 자신이 레드 제플린의 팬임을 드러내더군요. 다들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저도요...
뭔가 동지를 찾은 느낌이어서 그 친구와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지만, 당시의 저는 지금보다도 말주변이 없었습니다(사실 전 말수 자체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 친구가 저보다 과묵했던 거의 유일한 급우였습니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할지 고민하다가, 다가가서 이렇게 말했죠. ‘『Led Zeppelin IV』를 빌려줄 수 있느냐’고요. 그 친구는 흔쾌히 제 요청을 수락하고, 다음날 제게 CD를 빌려주었습니다. 레드 제플린의 4집이 아니라 『Mothership』이라는 컴필레이션 앨범을요...
제 요청과는 살짝 달랐지만 어쨌든 전 그 친구에게 고마웠고, 앨범을 소중히 여기면서 잘 듣고 1주 뒤에 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 뒤, 전 대학생이 되면서 금전적인 여유가 어느 정도 생겨 『Led Zeppelin IV』를 직접 샀습니다.
그 친구 요즘 뭐하는지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