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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언 Jan 06. 2021

라뽀, 그와 나의 공감

신랑은 쉽게 말을 잇지 못한다. 수 십 아니, 수 백번은 읽어댔을 문장이지만 지금은 마치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마냥 더듬인다. 목이 메여서다. 누르고 누른 감정은 신부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봇물 터지 듯 밀고 나올 것을 알기에 시선은 하고 싶은 말을 써 놓은 메모 모서리와 발 끝만 오가고 있다.

가만히 눈을 감고 그를 응원한다. 괜찮다. 괜찮다. 속으로 그를 다독이며 쉼 없이 용기의 메시지를 보낸다.

'라뽀rapport'라는 것이 있다. 흔히, 의사와 환자 간의 유대감을 일컫는다. 의사는 성심을 다해 환자를 돌본다. 생의 절망 앞에 선 환자는 의사의 헌신에 기적을 기대한다. 이는 의사의 실력과는 상관이 없다. 그 진심을, 절박한 자는 고스란히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유대는 서로에 대한 공감으로 발전한다. 의사가 환자를 가족으로 혹은 자기 자신으로 느낄 때 유대는 배가 되어 비로소 공감이 된다.

웨딩 플로리스트는 예식 전까지 신랑신부와 연락을 할 일이 많다. 활자와 음성을 통해 서로의 필요한 바를 확인한다. 그러는 중에도 느껴지는 온기가 있다. 식사는 하셨냐는, 건강을 유의하라는 일상적인 안부를 통해 한 걸음 만큼 다가간다. 그리고 그 크고 작은 걸음들이 모여 결국 라뽀가 되고 공감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과정은 보통 신부들과 많이 겪는다. 아무래도 예식, 특히 꽃에서 만큼은 신랑은 한 발 물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모든 예식의 준비를 신랑이 도맡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마치 이렇듯 몰아쳐서 하지 않으면 그녀를 놓치기라도 할 마냥 조바심이 나 보였다. 그 덕에, 신랑과 더 많이 통화하고 연락하며 자주 만났다. 플래너가 없는 스몰웨딩은 플로리스트의 역할이 크다. 연극으로 치면 무대를 꾸미는 것이니 동선이며 진행등 신경 써줘야 할 것이 많이 생긴다. 이럴 때면 플로리스트는 웨딩 디렉터가 된다. 한껏 조바심 나 있는 그를 위해 기꺼이 그 역할을 감당하기로 했다.

걱정이 많은 그는 질문도 많았고 그런 만큼 많은 말들을 이어 나갔다. 여느 신랑들 처럼 걔는 걔는 하지도 않고 oo씨는, oo씨는 하며 그녀가 없을 때도 높여 불렀다. 물론, 서로 같이 있을 때는 말할 것도 없다. 그 마음이 예뻐 하염없이 그의 말을 듣는다. 원래 그는 경찰이었다. 갓 발령을 받고 파출소 근무를 할 즈음 소개로 그녀를 만났다. 마음이 여리고 험한 말을 하지 못하는 그는 파출소 생활이, 경찰로서의 삶이 맞지 않았다. 매일을 힘겨워 할 수록 더욱 그녀가 다독여 주었고 이내 서로는, 서로를 지켜주는 사이가 되고자 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경찰로 있을 수가 없었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은 그를 옥죄여 견딜 수 없는 지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숱한 비난이 쏟아졌다. 그의 부모, 친구 그리고 주변인 모두 끈기 없고 나약한 자로 치부해 버렸다. 스스로에 대한 원망이 가장 컸을 것이다. 부모를 실망 시켰다는 원망, 어쩌면 그녀를 실망 시켰을 지도 모른다는 원망. 그러나 그녀는 속내야 어떻든 그의 결정을 존중해 주며 두 사람이 함께 걸어갈 길에는 변함이 없다 했다.


그가 겪었을 과정들 속에 하나하나 나를 녹였다. 아니, 지난 시간들이 녹여져 그에게 스며들었다가 다시 그를 통해 나타났다 사라지고를 반복하고 있다. 대학을 그만두고 꽃일을 시작했을 즈음, 나를 향한 사람들의 시선 그리고 나를 보는 내 자신도 지금의 그와 같았다. 하지만 비겁하게도 나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 놓지는 않았다. 섵부른 충고질이 될것 같아서, 되려 나 역시 그에게 상처가 될까 들으며 공감할 뿐이었다.

드디어, 예식을 하는 날이다. 그렇게 둘은 서로를 마주하며 많은 사람들 앞에서 두 사람의 맹세를 한다.

조마조마한 가운데 그는 준비해 온 글을 모두 읽었다. 아니, 다 읽지 못해도 그녀 만큼은 그의 모든 마음을 이해할 것이다. 남자들의 흔하디 흔한 결혼 전 다짐이 아니라 온 마음을 다해 내 뱉는 그의 진심을 그녀는, 모두는 알 것이다. 더듬거려도, 작은 목소리라도 상관이 없었다. 말을 잇지 못하는 그 순간순간에 이미 모든 진심을 그는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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