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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언 Jan 15. 2021

웨딩 플로리스트의 웨딩

아내는 내게 꽃을 배우던 수강생이었다. 종종 사람들은 내가 수강생이고 아내가 강사였을거라 혼동한다. 워낙 남자 플로리스트가 귀해서(?) 그런 착각을 하는 것이다. 원체 자주 있는 일이라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아내 역시 수업 공지를 보고 찾아오긴 했는데 왠 남자가 있어서 잘못 온 줄 알았다고 했다.

작은 호텔에서 일할 때 였다. 호텔 내의 결혼식 꽃장식이나 공간 장식 등을 맡아 하였고 틈틈히 호텔 고객이나 근처 계신 분들을 대상으로 소소한 플라워 클래스를 열었다.

"저, 여기가 꽃 수업 하는 곳 맞나요?"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왔던 그녀. 유난히 하얀 피부 때문인지 주변이 밝아 보였던 건, 그래 기분 탓이다. 흠.

"네 맞습니다. 비어 있는 자리 아무곳이나 편하신 데로 앉으시면 됩니다."

무던하고 무료한 날들을 보내고 있던 중이었다. 꽃은 내게 그저 일상이라 그 자체로 감흥을 주진 못한다. 참 아이러니 같은 일이다. 사람들은 나와 나의 꽃을 통해 기쁨과 즐거움을 느낀다지만 그럴수록 나는 고갈되어 가는 느낌이었다. 수강생들에겐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이려 애쓰지만 그 또한 업무일 뿐이었다. 어쩌면 조금, 삶에 침잠한 채 무거운 날들을 보낼 때 였나 보다. 그랬던 나의 날에 그녀가 찾아왔다.

하지만 꽤 오랜시간은 그저 업무적인 관계로만 대했다. 내색하지 않았다. 혹여나 관계가 불편해 질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늘 나의 주변에 수강생이든 동료 플로리스트든 언제나 여성의 비율이 앞도적으로 높기 때문에 종종 부러움 섞인 눈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시선일랑은 애초에 접어 두는 것이 좋다. 이런 근무 환경 일수록 늘 주의해서 처신해야 한다. 자칫 가벼운 사람으로 보이게 되어 구설에 오를까 염려되기 때문이다. 수강생을 포함하여 일과 관련된 모두와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친절한 관계'만을 유지하도록 한다.

하지만 이번 만큼은 다르다 여겼다. 그녀가 수업의 공지를 보고 이렇듯 찾아오게 된 것은 중대한 인연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다. 연애의 과정은 다 유치하다는 걸. 솔직히, 그저 모든 이유를 갖다 붙여 그녀를 좀 더 곁에 가까워 지고 싶었고 친절한 관계를 넘어 친밀한 관계로 한 걸음 나아가 보려 했다.

마침, 수업의 과정이 모두 끝나가던 순간이었다. 그날 따라 다른 수강생들은 모두 결석하고 그녀와 나, 둘만이 한 공간에 꽃을 마주 하고 앉았다. 그녀는 늘 시간에 맞추어 왔고 사소한 얘기 조차 나눌 틈이 없었기 때문에 가벼운 일상의 이야기로 말문을 열어 보려 했다. 그런데 그녀가 먼저,

“선생님 친구가 제 절친인거 알아요?” 라고 말을 건넸다.

“제 친구 중에 S가 있는데 알고 보니 선생님 중학교 동창이더라구요.”

아, 그 친구.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지만 괜시리 마음이 편해졌다. 내가 다녔던 중학교는 남녀 공학의 신설학교 였다. 선배도 없었고 심지어 첫 해 한 학기 동안은 교복도 정해지지 않아 사복차림으로 다녔다. 남녀 열개 반이 옹기종기 있는 작은 학교라 우리끼리는 초등학교 7학년이라 할 만큼 허울 없이 보냈다. 그렇게 3년을 함께 보낸 나의 동창이 그녀의 친구, 그것도 베스트 프렌드라니. 그녀와 나는 같은 나이였고 어쩌면 더 있을 서로의 연결 고리를 찾아 많은 이야기들을 자연스레 나누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되었다. 집에는 잘 들어 갔는지 전화를 하고, 차를 마시고, 식사를 하고, 함께 영화를 보고, 그리고 마침내 정식으로 당신의 연인이 되고 싶다고 나의 꽃들을 앞세워 고백했다. 이후의 일들은 정말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장모님 말씀을 빌리자면 마치 홀린 듯 어느날 갑자기 사위가 생겼다고 하셨다. 그럴것이, 아내에게 정식으로 사귀자고 고백하고 두 달쯤 후 우리는 진지하게 결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웨딩 장소는 당시 내가 일을 하던 그 작은 호텔, 아내와 내가 처음 만났던 그곳의 야외 정원에서 하기로 했다. 나의 직장이니 예약도 수월했고 도움을 요청할 분들도 많았다. 우리 결혼 이야기가 오갈 쯤이 늦은 가을이었고 양가가 합의 된 날이 3월의 마지막 토요일이었다. 날씨가 쌀쌀할까 염려가 되었지만 그래도 명색이 플로리스트, 그것도 웨딩 플라워를 담당하는 플로리스트인데 흔하디 흔한 실내 홀에서는 하기 싫었다. 무엇보다 나의 그녀에게 온통 꽃으로 가득한 공간, 하나하나 나의 손을 거쳐 탄생한 다시 없을 곳에서 우리만의 예식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이러한 나의 생각이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키게 될지는.

그렇게 시간은 야금야금 흘러 드디어 나의 웨딩이 불과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3월 중순이 넘어서까지 기온은 쉽사리 올라가지 않았다. 그래도 별일이야 있을까, 크게 마음을 두지 않았다.

늘 하던대로 꽃시장에 꽃을 주문하고, 하루가 꼬박 걸려 다듬었다. 늘 하던 일인데, 역시 나의 일이니 마음처럼 되어가지 않는 것은 아닐지 걱정도 되었다. 하나하나 정성을 다해 예식 전날 밤 자정 무렵까지 꽃을 꽂았다. 그리고 예식 날 아침, 해가 뜰 때 쯤 출근하여, 아니 나의 예식이 예정된 곳으로 가서 꽃들의 상태를 살피고 손 볼 곳들을 확인했다. 이것저것 다시 꽂으니 예식 시간이 훌쩍 다가왔고 이어 바로 달려가 턱시도로 갈아 입고 얼굴에는 덕지덕지 뭣도 바르고 꽃단장을 했다. 그때 아내는 신부대기실에 있었다. 짠 하고 식장에 올라가면 꿈 같은 장면이 펼쳐질 것이다. 그것이 내가 기대했던 바다. 그런데 그날은, 말도 못하게 추웠다. 3월 말이었지만 매정한 꽃샘 추위로 인해 모두들 겨울 코트를 입고 예식장으로 왔다. 게다가 빌딩을 사이에 둔 도심 속 호텔인데다 야외 정원은 호텔의 5층 꼭대기에 있어서 그야말로 빌딩 사이를 휘몰아 치는 바람이 매서웠다. 야외에 있던 사람들 중 절반 쯤은 추위를 피하려 실내로 들어가고 주례 선생님의 원고는 바람에 날아갔다. 때때로 몰아치는 바람이 꽃들을 휘감아 바닥에 내동댕이 쳤고 추워서 곧은 손 때문이었는지 주례께서 쥐고 있던 결혼 반지를 놓쳤는데 마침 바닥의 틈 속으로 빠져 버렸고 그것을 꺼내느라 예식은 지체되었다. 우왕좌왕, 예식은 시작되었지만 아내는 계속해서 추위에 떨었다. 아내의 팔뚝 위로 뚜렷이 솟은 닭살이 보였다. 팔짱을 낀 그녀의 팔이 쉴 새 없이 추위에 오들거리는 진동이 나에게 전해졌다. 그렇게 정신 없는 결혼을 마치고 잠시 한숨을 돌리며 아내에게 물었다. 꽃은 어땠냐고, 마음에 들었냐고.

"꽃이 있었어? 난 그냥, 눈 앞에 하얗게 펼쳐진 느낌은 있었는데 정신이 없어서인지 하나도 생각이 안나."

허무하게도, 웨딩 플로리스트의 웨딩은 그렇게 싱겁게 끝이나 버렸다. 벌써 십년도 지난 일이다.

지금, 소파에 반쯤 기대누워 티비를 보는 아내에게 묻는다. 우리 결혼식 어땠어.

"우리 결혼? 그날 너무 추웠지. 추웠던 것 밖에 생각이 안나. 근데 새삼스레 그날은 왜?" 아내의 대답이 심드렁하다.

그렇게 수 많은 웨딩을 했음에도 나의 것은 이렇듯 구멍 숭숭 뚫린 허점 투성이였다. 다시 한다면 정말 잘 할 수 있는데. 그땐 3월이 아닌 꼭 따뜻한 5월에 해야겠다.

그런데 왠지 그날은 비가 올 것만 같은 예감이 되는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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