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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언 Jul 12. 2021

늦은 시간의 전화



웨딩 플라워를 주로 하게 되면서 고객들과의 접점은 확연하게 줄었다. 꽃다발이나 꽃바구니 같은 꽃 상품 판매를 주로 할 적엔 그것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용도는 무엇인지, 꽃이 놓이게 될 공간은 어떠한지, 꽃의 종류와 색상은 어떻게 할지, 금액은 얼마에 맞출지 등을 소상히 조율해야 하기에 이것에만 적지 않은 노력을 담아 내어야만 했다. 대부분은 꽃을 만드는 시간 보다 이 ‘조율’의 시간이 훨씬 컸다. 이런 생각을 가져도 될까만은, 그 자체로 소모적이라 느껴질 만큼 쉽지 않은 부분이었다. 반면 웨딩 플라워를 주로 하면서 부터는 이러한 시간은 차차 줄게 되었다. 신부는 예식 서너달 쯤 전에 우리를 예약한다. 이후 예식 한 달 전에 두시간 정도 집중적으로 하게 되는 컨셉 미팅이 있기는 하지만 예식 전까지는 채팅앱을 통한 간헐적인 상담이 이어질 뿐이다. 채팅앱을 주로 사용하는 이유는 주고 받는 사진이 많아 오히려 전화가 더 불편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한 이점은 또 있다. 바쁠 때면 은근슬쩍 알람을 무시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말을 걸어온 상대는 나의 ‘읽지않음' 상태에 대해 어느 정도의 시간적인 여유는 배려해 준다. 물론 그 시간이 길어 지면 안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상담의 시간으로 부터 완전히 자유로워 진 것은 아니다. 소모적인 상담의 횟수는 줄어든 만큼 관계의 깊이는 더욱 깊어졌다. 웨딩 플라워는 결혼 준비의 과정과 궤를 함께 한다는 점에서 신부가 처한 상황들, 예를들어 하는 일에서 부터 시댁과의 관계까지 자연스레 알게 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신랑과 신부는 각자의 온도차가 생기기도 하는데 중간에 있는 나로서는 마치 시소의 지지대 처럼 어느 한쪽으로 체중을 싣지 않은 채 ‘듣는 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할 때가 많다.

신랑 신부 두 사람의 의견 차이가 크지 않거나 혹은 한 쪽이 완전히 주도해서 진행하거나, 적어도 양가 그러니까 각자의 집안에서 결혼 준비에 대해 그다지 관여하지 않는다면 크게 문제될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럴일은 거의 없다. 결혼이란 것이 두 사람, 두 가정이 합을 이루어가는 과정이다 보니 결국 크든 작든 의견이 맞지 않는 부분은 생기기 마련이다. 물론 웨딩 플라워를 담당하는 플로리스트로서 그러한 일에 모두 세세히 관여할 일은 없다. 오히려 알아도 모르는 척 귀를 닫는 것이 나의 의무일 것이다. 하지만 꼭 그럴때가 있다. 나에게 답변을 구해 이 상황을 해결코자 하는 경우들 말이다. 예로, 야외결혼식이 준비된 날 비가 온다고 하던데 야외에서 천막을 치고 할 지 아니면, 대체 장소인 실내로 옮겨 진행할 지 의견을 묻거나 요즘은 폐백이 많이 사라졌다는데 대세에 따라 하지 말지 그럼에도 양가 어르신들이 오시는데 해야 할지 등이다. 일견 간단한 답일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야외 결혼식날 비 예보가 있다면 신랑신부는 그럼에도 야외에서 하는 편을 원하고 어른들은 불편을 피해 실내로 들어가기를 원한다. 하지만 항상 그런 것도 아니고 두 집안의 뜻이 늘 같은 것도 아니다. 나의 말 한마디에 비를 맞았음에도 야외에서 하길 잘했다는 칭찬을 들을 수 있고 차라리 실내로 옮길걸 잘못 했다는 푸념을 들을 수도 있다. 이는 비단 나에게만 쏟아지는 책망의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왜 야외에서 결혼식을 하기로 했냐라는 원초적인 문제에 대한 비난을 신랑신부 두 사람에게 집중 될 수도 있고 양가의 다툼으로 까지 번질수도 있기 때문에 정말 모든 상황을 고려해서 신중히 말을 뱉어야 한다. 

어떨 땐, 한낱 플로리스트인 내가, 그저 웨딩플라워만 전담하면 되는 줄 알았을 뿐인데 이렇게나 근심을 가지고 가야하나 부담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익어진 상담의 기술 덕인지, 어차피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선택은 없다는 생각에서인지 지금은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 오히려 나야 매 주 하는 결혼이지만 이 결혼이 처음인 신랑 신부가 안고 있을 부담에 마음이 쓰인다. 이 때문인지 일반적인 결혼 준비에 대한 궁금점 에서부터 시시콜콜한 가정사 까지 나눌 것은 나누고 흘릴 것은 흘린다는 마음으로 감사히 듣고 있다. 

그날도 그랬다. 열 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신부로 부터 전화가 왔다. 채팅앱을 통한 상담은 저녁 8시 까지로만 알람을 맞춰 두었다. 이후 부터는 상담 시간 종료를 알리는 메시지가 자동으로 전송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룰을 잘 따라준다. 저녁이 있는 삶이란 모두에게 소중하기 때문이다.

채팅으로는 상담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바로 전화를 한 것 같았다. 이런 경우는 대게 지금 답변을 듣지 못하면 오늘 밤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은 답답함 이나 결혼준비가 뜻대로 되지 않음에 대한 갑갑함 때문이다.

후자였다. 처음부터 야외결혼식을 하는 것에 대해 고민이 많았던 그녀는 본격적으로 결혼 준비에 돌입하면서 예비신랑과 충돌이 잦았다. 그리고 그 충돌의 이면에는 먼저 결혼한 시동생 부부가 있었다. 그들은 결혼의 경험자로서 이런 저런 조언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에게는 각자가 처한 상황이 있으며, 조언이란 것 역시 그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 될 수 밖에 없다. 특히나 스스로 모든 것을 준비해야 하는 작은 결혼식이나 야외 결혼식은 더욱이 그렇다.

아마도 이 시간, 예비 신랑은 궁금한 점이 생겼고 이를 시동생 부부에게 물어 보았으며, 얻은 답변을 예비 신부에게 전하였으나, 그것은 단순히 결혼식장의 경우에 해당하는 것으로 우리에게는 맞지 않는다 하였을 테고, 다시 전화를 시동생 부부에게 하였다가, 신부에게 하였다가 그렇게 몇 바퀴를 돌다가 답답함 혹은 그 갑갑한 순간을 참지 못하고 나에게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하지만 이렇듯 지리한 과정에 반해, 내가 해 줄 수 있는 답변은 지극히 간단한 것이었다. 어쩌면 덮어두고 그냥 넘어가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 그런 사소한 부분 말이다. 허무했을 것이다. 고작 이 정도의 문제였을 뿐인데 전화를 돌리고 열을 내었어야만 했을까 서운하고 서러웠을 것이다. 이내 그녀의 하소연이 봇물 처럼 터져나왔다. 예비 신랑인 남자 친구와 앞으로 시댁이라 불리게 될 그의 가족들에 대해서. 하지만 이것은 어느 한쪽의 문제가 아니다.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본다면 그 역시 같은 무게 만큼의 서운함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오늘은 이쪽의 이야기를 듣고 내일은 모르는 척 처음부터 같은 이야기를 상대로 부터 듣는다. 하나의 사건을 대하는 관점은 서로가 다르다. 성공적인 결혼으로 이르는 길은, 이 관점의 차이를 함께 줄여 가는 것이다. 하지만 쉽지 않다. 그래서 그녀가 지칠 만큼 말을 토해 내기를 기다려 준다. 그렇게 핸드폰이 뜨거워질 만큼의 시간이 흐르고서야 전화를 끊었다. 그녀가 결혼 준비에 대한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 놓은채 편히 잠들기를 바랐다. 그리고 통화의 내용은 꽁꽁 싸매어 나의 마음 속에 묻어 두었다. 혹여나 다음 미팅에서 실수로 라도 지금 들은 이야기가 입 밖으로 나오면 안되기 때문이다.

플로리스트가 되면 꽃만 잘 하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꽃은 그저 나와 그를 이어주는 매개체 일 뿐 중요한 것은 서로가 맺어 나가는 관계였다. 어떤 관계에서든지 서툴고 부족한 부분은 있을 것이다. 그것을 좁혀 나가려는 노력만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한 과정이 너무나 지치고 싫다면, 누군가를 만나고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고역이라면 꽃을 아무리 잘한들 소용 없는 일이다. 나 역시도 여전히 이 점은 서툴다. 누군가의 불편한 이야기를 듣고 그 속에 완전히 녹아 들어간다는 것은 적지 않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일이 싫지 않은 이유는 나의 사소로운 귀 기울임 만으로도 많은 문제들이 훨씬 유연해 짐을 보기 때문이다. 해결 책을 내어 놓으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위로하려 들지 않아도 된다. 그저 진심으로 들어주면 그것으로 될 일이다. 아마도 꽃을, 웨딩 플라워를 하는 동안은 이러한 삶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이 끝이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플로리스트로서, 웨딩 플라워를 하는 사람으로서 언제든 그들의 대나무밭이 되어줄 것을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 들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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