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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언 Dec 20. 2021

야외결혼식 날 비가 내리면

“안녕하세요? 웨딩 플라워 문의 드리려구요.”

“네, 고맙습니다. 장소랑 날짜는 정하셨어요?”

“날짜는 아직 미정인데 장소는 정했어요. 00이예요.”

“거기는 비에 대한 대비가 안되는 곳인데 괜찮으시겠어요?”

“네 상관 없어요.”

“그래도 부모님이나…, 하객분들도 괜찮을까요?”

“비 정도는 이해해 주시겠죠. 그럴 분들만 초대할 거예요. 저는 그냥 비 맞고 할거구요.”

나의 마음 속에선 안도가 절로 나온다. 그리고 속으로 외친다. ‘합격’

작은 결혼식, 스몰 웨딩, 셀프 웨딩 등의 이름으로 야외 결혼식이 부쩍 많아 졌다. 몇 년 전만 해도 일 년에 몇 건씩 띄엄띄엄 들어오던 문의는 언젠가 부터 이 일을 전념해서 해야 할 만큼 줄을 잇게 되었다. 한 곳에 매여 있는 것을 싫어하고 방랑벽이라 할 만큼 돌아다니길 좋아하는 나로서는 참으로 감사한 변화가 아닐 수 없었다. 문의가 들어오는 곳은 우리 지역은 물론 차를 타고 두 세시간씩 걸리는 먼 곳도 있다. 체력과 일정이 닿는 한, 가능하다면 지역 구분 없이 출장 작업을 떠난다. 새벽이나 아침 일찍 꽃과 갖은 오브제들을 트럭 한 가득 싣고 출발하여 현장에서 꽃장식을 하고 예식이 끝나면 다시 그 짐들을 싣고 돌아오는 일정이다. 드물긴 하지만 종종 예식 전날 출발 할 때도 있다. 현장에 미리 짐들을 풀어 놓고 근처 숙소에서 일박을 하면 다음날 스탭들이 꽃을 가지고 와서 합류하는 방식이다.

매주 새로운 장소를 찾는 건 고되긴 해도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특히나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서 그 지역 맛집을 찾거나 특산품 등을 사오는 것은 일의 피로를 덜어주는 작지 않은 재미다. 그런데 마냥 즐거운 일들만 있는 건 아니다. 일이라는게 그렇지.

고속도로를 타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혹시나 가는 길이 막히지는 않을까 늘 노심초사다. 혹여나 잘 달리던 우리 차가 고속도로 한 복판에서 퍼져 버리지는 않을까 가는 동안 내내 별 걱정이 다 든다. 그래서 늘 주문처럼 왼다. 사고가 나더라도 제발 돌아오는 길에 나라.

현장으로 가는 내내에도 눈길은 계속해서 창밖 하늘에 닿는다. 먹구름이 끼지 않는지, 비가 오거나 날씨가 궂으면 안되는데 걱정이 되어서다. 일기예보는 안타깝게도 틀리는 경우도 많다. 특히 봄비가 잦은 4월 초나 가을의 늦은 태풍이 몰리는 9월말에서 10월 초가 그렇다. 이때의 일기 예보는 ‘지역에 따라 흐리고 비가 오겠다.’가 주를 이룬다. 흐리다는 건지 비가 온다는 건지, 애가 탈 수 밖에 없다. 이런 날에는 당일날 아침이 되어서야 날씨를 가늠할 수 있다.

예상하다시피 야외 결혼식 장소들은 대부분 비에 대한 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천막을 치면 되지 않겠냐 생각하겠지만 사실 이 천막도 그닥 도움은 되지 않는다. 장소들은 잔디 밭인 경우가 많고 적은 비에도 쉽게 진창이 되어 버린다. 천막으로 알량한 빗줄기 조금 가린다고 될 일이 아니다. 게다가 갑자기 쏟아지는 비라면 천막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요원하다. 그 날 그 지역에 야외 행사가 있는 모든 곳에서 일시에 천막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플로리스트가 되어서 이렇게나 날씨 걱정을 하게 될지는 몰랐다. 게다가 이는 비단 비에 대한 문제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야외 결혼식은 그 로맨틱한 이미지와는 달리 온갖 불편한 것 투성이다. 대중교통이 닿지 않는 곳이 많고 자차로 온다해도 주차공간 또한 그리 넉넉지 않다. 화장실이 부족한 곳이 대부분이고 식사 장소도 쾌적하지 못하다. 거기에다 날씨는 춥거나 덥거나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거나 아님 미세먼지가 심하거나 이다. 야외 결혼식은 4~6월, 9~11월 정도만 가능하다. 4월은 봄비와 황사가 있고, 5월은 미세먼지도 심해지고 이미 햇살은 따갑다. 6월은 비가 오고 말할 것도 없이 덥다. 9월은 여전히 덥고 태풍도 서너개 쯤은 지나간다. 10월은 가을의 햇살이 바늘 백만개가 되어 찔러 오고 11월이면 춥다.

거기다 예식을 치를 수 있는 비용 역시 생각했던 것과는 다를 테다. 이것저것 하다보면 금세 일반 예식장에서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건 가격의 문제가 아닌 가치의 문제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예식장은 마치 이가 잘 맞물려돌아가는 톱니바퀴와 같다. 나의 몸을 그것에 맞춰 톱니 안으로 들어가면 착착, 드레스도 입혀주고 화장도 해주고 사진도 찍어주고 하객들을 위해 밥도 다 차려준다. 이 톱니는 같은 사이클을 가지고서 그 안에 들어가는 사람만 바뀐 채 하루에도 서너번씩 돌아간다. 만약 이 톱니를 조금이라도 벗어나려면 상당히 복잡한 절차와 비용이 필요하다. 반면 내가 주체가 되는 결혼식은 하나 부터 전부 스스로 챙겨야 한다. 꽃장식과 사진과 드레스와 그리고 필요한 것 모두.

웨딩플래너나 나와 같은 웨딩 장식을 맡은 플로리스트가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모든 선택과 결정은 자신이 해야 한다. 이렇듯 신랑 신부의 결정에 의해 웨딩 장소에 모인 사람들은 나를 비롯하여 전부 선택된 이들이고 아침 부터 예식이 끝날 때 까지 온전히 한 커플을 위해 전념을 다하게 된다.

이러니 솔직히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채, 아니면 그저 야외 결혼식에 대한 이미지만 가진 채 시작하는 경우라면 말리고 싶을 때도 많다. 간혹 내가 아는 누가 결혼을 한다던데 야외 결혼식에 대해 상담을 해 주라던지, 소개를 시켜 줄테니 설득해 보라던지 하는 말은 모두 사양한다. 이건 설득해서 될 일이 아니기 때문에 아니, 설득을 해서는 안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웨딩 플라워를 맡은 플로리스트들은 결혼식의 날에 가장 먼저 왔다가 가장 늦게 나간다. 하나의 결혼식이 마치 잘 짜여진 연극이라면 웨딩 플로리스트는 무대를 꾸미는 사람들이다. 무대가 꾸며져야 의자와 음향 등 갖은 장비가 채워지고 예쁘게 분장한 이 날의 주인공이 무대에 오른다. 그런만큼 결혼식에서 플로리스트가 책임져야 할 것은 단순히 꽃 만이 아니다.

비를 맞고 해도 상관이 없다던 그날은 정말로 비가 왔다.

발목이 보이는 짧은 웨딩드레스에 샌들을 신은 신부는 마냥 신이 난 채 조그만 우산을 쓰고 식장 곳곳을 돌아 다닌다. 인터넷에서 구입한 십오만원짜리 드레스라 했다. 비를 흠뻑 맞은 꽃들을 보면서도 연신 예뻐요, 수고하셨어요 라는 칭찬도 아끼지 않는다. 나와 우리 스탭들 모두 비를 맞으며 꽃을 꽂는 일이 수월할 리 없지만 이 정도 인삿말이면 충분히 아무 것도 아닌 일이 되어 버린다.

하객들도 비를 맞기 싫은 분들은 일찍 자리를 뜨고 함께 비를 맞을 분들만 남았다. 사진 작가님도 렌즈가 비에 젖든 말든 연신 셔터를 눌러댄다.

웨딩 플로리스트에게 비는 결코 반가운 존재는 되지 못한다. 그렇다고 마냥 두렵기만 한 것도 아니다. 야외 결혼식날 함께 비를 맞아줄 사람들만 있다면 그때 부터 진짜 축제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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