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외 결혼식 일정은 11월을 끝으로 대부분 마무리 된다. 추워지는 날씨로 인해 바깥에서는 더 이상 결혼식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후 부터 겨울 동안은 실내에서의 예식이 간간히 이어 지긴 하지만 역시나 봄이나 가을 만큼 바쁘지는 않다. 이러한 비수기 상태는 이듬 해 3월, 다시 벚꽃이 필 무렵까지 이어진다.
웨딩 플라워는 나의 삶이 없다시피 너무 바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4, 5 그리고 10, 11월. 그 정도까진 아니라도 계속해서 일정이 이어지는 12, 1, 그리고 추석 전후의 9월과 연중 가장 일정이 없는 2월 그리고 7,8월. 이렇듯 반복적인 주기를 가지고 일년을 채운다.
야외 결혼의 웨딩 플라워를 주로 하는 우리는 이러한 비수기, 성수기의 스케줄에 따라 11월이 지나면 한 해의 바쁨을 뒤로 한채 기나긴 겨울을 맞이 한다. 그런 만큼 나에게 11월은 여러 의미를 가진다. 어쩌면 내게 한 해의 끝은 12월이 아닌 11월 이다.
가을 동안 압축된 삶을 산 나는 어서 11월이 되길 기다린다. 그 무렵이 되면 다이어리를 빼곡히 채운 일정은 이가 빠진 듯 드문드문 해지고 그 때의 끝에 이르러서는 내게 부담을 지울 만큼의 큼직한 일들은 모두 끝이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그렇게 기다려온 11월이 되면 나의 마음은 그리 편치가 않다.
11월의 말까지 가득 채운 스케줄이었다. 이번 시즌의 마지막 예식은 해가 질 무렵 시작하는 이브닝 웨딩이라 마음 속에 차오르는 감정은 평소의 것과도 조금은 다른 것 같다.
봄과 가을의 햇살은 다른 각도로 기운다. 보통의 사람들은 이 방향을 어떻게 느끼는지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꽃잎에 지는 그림자로 알 수 있다. 봄 보다 가을의 햇살이 더욱 깊게 드리운다. 길게 누운 햇살은 그렇게 꽃잎 하나하나를 비추며 깊은 그림자를 지우다가 예식이 시작될 무렵이면 식장 전체를 따스히 데운다.
매 계절의 예식이 의미가 있지만 유난히 가을의 이브닝 웨딩을 나는 좋아한다. 낮아진 기온으로 인해 서로의 온기가 고맙게 느껴지기도 하고 낮아진 기온 탓으로 오히려 꽃의 생기는 일년 중 가장 돋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바로 이 햇살! 해가 질 무렵 노릿 노릿하게 공기의 색이 바뀌면 꽃에, 신부의 얼굴에,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표정 하나 하나에 내려 앉는 저녁의 햇살을 담은 풍경이 좋다. 만약 꽃을 하지 않았다면, 웨딩 플라워를 하지 않았다면 이때의 햇살은 내게 어떻게 기억될 수 있을까. 아니, 햇살의 기울기를 느끼고 공기의 색이 바뀜을 알기나 할까. 아마 아무런 감정도 감흥도 느끼지 못했을 것 들이다.
하지만 이 햇살을 누릴 여유는 생각보다 길지 않다. 오히려 찰나 처럼 느껴져 아쉬움이 크다. 한껏 공간을 밝히고 덮힌 노랑의 공기는 사라지고 이내 어둠이 내린다. 그 무렵이면 예식 역시 끝이나고 오늘을 축하하기 위해 모였던 사람들도 하나둘 자리를 떠난다. 그리고 돌아가는 발걸음이 허전하지 않도록 우리 플로리스트들은 예식에 사용된 꽃을 모두 뽑아 포장하여 그분들께 한아름씩 안겨 드린다. 이것으로 오늘의 일정도, 우리의 일도, 한해의 스케줄도 모두 끝이난다.
어둠이 내린 공간, 사람이 떠난 자리 그리고 뽑혀진 꽃들을 보면 알 수 없는 공허가 밀물 처럼 몰려든다. 추워지는 날씨가 야속하고 사계절이 뚜렷해서 좋다는 우리나라의 기후 마저 원망스럽다. 만약 봄과 가을만 존재하는 곳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일어나지 않을 상상마저 가져본다. 그 만큼 공허와 아쉬움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마치, 흥이 한 껏 오른 극중의 배우가 공연을 하던 중에 무대에서 끌려 내려온 기분과 같을까. 더 하고 싶고 더 잘할 수 있는데 속절 없이 공연이 끝이 나버린 느낌이다. 그리고 이 공허는 이내 불안과 걱정으로 바뀐다.
겨울 동안 봄을 채워줄 일정들이 가득 들어서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어쩌나 혹시나 지금의 바쁨이 이것으로 끝이면 어쩌나 쓸데 없는 걱정이 꾸역꾸역 밀려온다. 역시나, 플로리스트라는 허울 좋은 이름의 이면에는 자영업자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름이 공존한다. 한마디로 나는, 생계형 플로리스트다.
가을의 햇살이 주는 낭만을 이내 공허와 불안으로 넘겨 받는 대한민국의 그저 평범한, 생계를 고민하는 자영업자일 따름이다.
알 수 없는 심경이다. 가을 내내 손꼽아 겨울을 기다렸건만 막상 겨울이 목전에 오니 지는 가을이 한 없이 아쉽고 그런만큼 벌써 부터 봄이 간절해 진다.
봄이 오기를, 어서 꽃시장에 목련과 개나리와 벚꽃이 가득 차기를 기다리는 건 바쁨이 없는 겨울이 결코 편치가 않아서일 테다. 정신 없는 가을이 지나고 한가한 겨울이 되면 유유자적하게 카페에서 못다 읽은 책이나 읽어야지, 한동안 꽃은 사지도 보지도 말아야지, 가족과 여행도 가고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지, 야지 야지. 온갖 할 것과 하고 싶은 것 투성이지만 나는 안다. 아무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간절히 봄이 오길 기다리며 이 모든 시간을 속절 없이 흘려버릴 것을.
나의 한 해는 성수기와 비수기로 채워지고 다시 이 둘의 틈은 완전한 ‘일정 없음’으로 채워진다. 한 여름과 한 겨울이 그것이다.
이 모든 것이 나의 한 해를 채우는 주기이고 이러한 주기들이 열번쯤은 회전하여 지금 내 삶의 규칙을 만들었다. 늦 가을의 공허와 겨울의 불안 역시 내 삶을 이루는 부분이다.
가을의 햇살은 만끽하고 허무는 대충 둘러댄 체 불안과 기대가 적당히 버무려 질 겨울을 기다린다. 다만 그 겨울이 지나치게 길거나 시리지 않기를, 불이 꺼지고 사람들이 떠나고 꽃이 모두 뽑혀진, 그렇게 일 년간 내가 만들었던 무대를 보며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