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따라 강남갔다
웅웅 -
주민센터를 나와 동네 길을 걷는데 문자 한 통이 왔다.
"ㅇㅇㅇ님 안녕하십니까? 서울특별시 강남구청장 조성명입니다.
귀하의 강남구 전입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귀하께서 사용하실 주소는 ..."
새 주소가 적힌 주민등록등본을 이미 가방에 고이 넣은 상태였지만, 이 문자를 받자 비로소 나와 우리 가족의 지난 6개월 간의 마음 졸임이 일단락 되었음이 실감났다. 세대원에게 전달을 할 정도의 것일까, 괜시리 성가시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세대원에게 문자를 전달해 달라는 해당 문자 중간의 당부에 힘입어 처가 식구가 있는 단톡에 문자를 올렸다. 돌아오는 길에 1억에 가까운 취등록세와 제반비용을 결제하고 이를 법무사측에 전달하자 수고하셨다는 답변이 왔다. 등기는 잘 접수되어 다음 주 정도면 등기권리증을 받아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무엇 때문에 이 고생을 했던가. 이미 살던 곳도 충분히 살기 좋은, 소위 천당 밑의 분당에서도 살기 좋고 서울 접근성 좋은 동판교였고, 탄천 옆으로 끝없이 난 고즈넉한 산책로를 유모차에 꽂은 커피를 빨며 걷고 있자면 정말 천국이 따로 없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는데, 굳이 왜 이 고생을 사서 한 것일까. 등기권리증이나 아니면 강남구에 내 아파트 주소가 박힌 주민등록증이 나의 '은전 한 닢'일까. 이 모든 것은 첫 직장 동기들이 만난 자리에서 시작되었다.
나나 내 아내는 전에 살던 성동구의 아파트로도 충분히 만족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았다. 해도 잘 들어 밝고. 여름에도 대리석 바닥에 얼굴을 대고 누우면 서늘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직장을 판교로 옮기면서 이사간 곳은 더 좋았다. 서울 강북과 같은 다이나믹함은 없지만 신도시 답게 평지에 살기가 좋았다. 근데 왜 굳이?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자산가치 상승 측면이 컸다. 어떤 책에 나타난 과거 주요 지역 아파트의 가격 추이를 보면, 수십년 전에는 20% 남짓 나던 값의 차이가 지금은 수십배 차이로 나타나면서, 상급지와 기타 지역 간의 차이는 수익의 절대값의 차이가 아닌 '수익률'의 차이가 누적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2년 반 전 하락장에 성동구의 집을 투매하고 강남을 가려고 했을 때, 장모님과 장모님이 추천하신 모 부동산 사장은 '여기도 오른다. 너희 집도 이제 몇 년 지나면 리모델링 할 수 있다'며 강남에 살 거면 전세로 살고 여기 살라며 강남행을 반대했지만, 그건 '수익률의 차이가 크다'는 것을 반영하지 않은 진술이었음을 시간이 지나 자꾸 벌어지는 차트를 보며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내 첫 직장의 동료들은 하나 둘 강남으로 아파트를 갈아타고 있었다. 벌어지는 양극화 속에서 나는 무리를 해서라도 사다리 끄트머리를 잡아타야 했다. 친구따라 강남간다고 했던가. 저들과 내가 다를 것이 크게 없는데 내가 어렵다는 이유로 지레 포기하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했고 또 그들의 말이 아닌 행동으로 나타난 결과를 보면서 경제학의 '현시선호' 이론이 한국 부동산 시장에서 나타나고 있음을 절감하였다.
강남으로 가기로 한 더 근원적인 이유는, 내가 그곳에 살아보지 않으면 과연 뭐가 그렇게 다르고 좋은지 왜들 그렇게 그곳을 가려 하는지에 대한 걸 알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인천에서 EBS 보고 일반고 야자 거쳐서 대학을 갔는데 같은 과에 강남 출신이 1/4 정도에 외고가 1/2은 되었다. 너 집 어디야? 물으면 "강남" 이라길래 대체 그 넓은 서울 중에 ㅇㅇ동도 아니고 굳이 강남이라고 말하는게 대체 무슨 뜻인지 그때도 들으면서 기분이 더러웠다.
그때나 지금이나 강남은 가기가 어려운 곳이다. 그렇지만 계산해 보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는게 옳으냐? 에 대해서는 너무도 극명히 입장이 갈리고 있어서 가계약금을 쏘고도 이걸 무를까 고민했다. 가계약금을 쏘고 나서 본계약을 체결하기 까지는 '토지거래허가'를 강남구청으로부터 받아야 했다. 자금조달계획서를 내고 은행 증권사 등의 잔고증명을 내고서 약 3주를 기다려서 허가를 받을 수 있었는데, 그 3주 동안 하루에도 몇 번 씩 마음이 왔다갔다했다. 그냥 판교에서 역에 가까운 곳으로 가면 마음도 편할텐데, 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장모님도 집에 찾아오셔서 우리 내외를 말렸다. 추격매수 하지 말고, 그냥 3천만원 수업료로 날렸다고 생각하라고 하셨다. 나의 본가에는 이런 일로 전혀 의논하지 않았다. 왜냐면 애초에 부동산에 대해서는 더욱 보수적이며 부정적이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내가 결혼하면서 집을 사겠다고 하자, 집값은 떨어질 수 있다며 수도권 외곽에 전세를 얻으라고 하시거나, 내가 사려는 성동구의 집값을 들으시고는 그런 비싼데 사지 말고 그냥 '용산 같은 데'나 사라고 하셨을 정도로 부동산이 돌아가는 국면에 대해서 전혀 모르셨다. 또 아버지는 1년 전 추석에도 나에게 그러셨다. 부동산은 한참 올랐으니 끝났다, 이제 재미 없다고. 강남은 여름에 물난리나 나는 곳이며, 강북이 '진짜 서울'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그 이후 강남 부동산은 미친듯이 올랐다. 그리고 2025년 들어서는 한 달 마다 1억이 우스울 정도로 올랐다. 그 와중에도 부정론은 표ㅇ호, 한ㅇ도 등의 유튜버들로부터 연일 강력하게 외쳐졌다. 그들의 논거는 우리 경제상황이 좋지 않다는 점, 이미 너무 빨리 올라버렸다는 점, 인구가 줄어든다는 점 등이었다.
그러나 상승론자의 논거도 납득이 가는 바가 있었다. 양극화 심화로 서울시내 특히 상급지에 대한 수요는 계속될 것이라는 점, 신축 대단지 아파트는 공급절벽이라는 점, 저금리 및 새로 들어설 정부의 기조 때문에 시장에 유동성이 많이 공급될 것이라는 점 등이었다. 나는 내가 생각한 두 대안을 갖고 아내와 치열하게 논의했고, 주변 지인들 -- 금융 분야에서 적잖게 근무한 사람, 실제로 중상급지에 부동산을 가진 사람, 투자를 잘 하는 사람 등 -- 여럿에게 두 대안에 대해 물어봤다. 신기하게도 주변인들은 대부분 강남행을 지지했으며, 가급적 그중에서도 신축 대단지를 갈 것을 권유했다. 그건 뭐랄까, 다이어트를 하려면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라는 말과 동의어이기에 알면서도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나는 그게 정말로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가계약을 치르기까지 했는데도 그 이후 입주 전까지 석 달 동안 매일 절감하게 되었다.
돌아보면, 그 이후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내가 산 가격과 유사한 가격으로 더 좋지 않은 블록의 잔여 물량이 3건 거래가 되었으며, 거기에서 한 달도 지나지 않아 해당 블록에서 1.5억 오른 가격에 거래가 체결되었고, 거기서 다시 1달 지나 2억이 높게 매매되었다고 들었다. 그 이후 호가는, 6.27 부동산 대책 이후에 그 가격선에서 한 달 째 멈춰있다. 하지만 수도권에 양질의 직장이 많고 학군이 좋은 곳에 대규모 공급이 되지 않는다면 결국 상급지는 사람들의 저축액이 쌓이고 시간이 지나면 우상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대체 무엇이 그렇게 힘들었는가? 돌아보면 타임라인이 종결점을 향해 갈수록 고통과 복잡도는 계속 상승했던 것 같다. 한때는 내 얼굴이 흙빛이며 나 조차도 계속된 스트레스로 내 몸 상태가 안좋아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나라도 어그러지면 완성할 수 없는 여러가지 요인들이 여러 개 놓여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자산은 자가와 전세 두 군데로 나눠져 있었고, 여기에 주담대와 신대까지 받아서 캐시플로우를 맞춰야 했다. 즉, 우리는 자가에 전세를 놓았었고, 그 돈을 빼서 다른 곳에 전세를 얻어 살고 있었다. 그러므로 세입자로서 전세금을 반환받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으며 이 부분이 가장 난이도가 높았다. 계약의 전 과정에서 각 부분이 문제없이 늦지 않게 정확히 들어맞아야 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강남의 부동산시장이 어떻게 다른 시장과 달랐는지, 무엇을 주의해야 하고 내가 무엇을 실수했는지 등에 대해 배운 점이 많아 이를 각 챕터별로 적어보고자 한다. 챕터는 다음과 같다.
1. 뭔가를 파는 것의 전략 - 집 팔기
2. 하늘에서 떨어진 물건 - 급등장에서 매입할 물건 찾기와 가계약
3. 무를뻔한 계약을 하기로 결정하기까지 - 본계약
4. 조금만 늦었더라도 - 주담대 신청
5. 전세사기는 종잇장 차이 - 전세금 돌려받기
6. 그래서, 정말 그렇게 좋은가 - 이삿날, 이사 후 그리고 옛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