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를 파는 것의 전략 - 집 팔기
내 이전 집은 소단지 구축이었다. 성동구에 있지만 신축 대단지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매도가 되지 않았다. 사실 강남 아파트가 떨어질 당시인 2023년 겨울 쯤에 나는 아내와 함께 두 살 아이를 데리고 강남 임장을 다녔다. 그때는 지금처럼 매물 잠김도 없고 가격도 지금보다 훨씬 쌌다. 아마 내가 지금 매입한 가격에서 2억을 덜 줘도 한 단계 넓은 평수를 살 수 있었다. 그 집은 지금 10억이 올랐다.
부동산이란 그런 것이다. 잠시의 판단 미스로 영영 그 가격은 잡을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매일 부동산 시세를 보다 보면 현생의 것들이 너무도 작아 보인다. 현생을 열심히 살며 월급을 받아 저축을 하고 적절한 소비를 하는 평범한 삶들을 살다 보면 어느새 부동산은 엄청난 가격 변동을 통해 나의 수십 년 세월과 먼저 투자한 이들의 시간 사이에 깊은 선을 긋고 만다.
그 때 나는 내 집을 1억이상 후려쳐서 팔고 가자고 했다. 강남이 3억 떨어지면 나는 2억 버는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 때 장모님의 소개로 찾아뵌 '용하다'는 성동구의 공인중개사는 칠판 앞에 서서 우리 그룹에게 강남 부동산이 왜 가면 안되는 것인지 일장연설을 했다. 요약하면, 겨우 너희들 자산과 연봉 -- 내 연봉을 말하지도 않았지만 나는 명품하나도 안 두르고 있었으니 연봉이 높지 않을거라는 가정은 안전한 스테레오 타입이기는 했다고 생각한다 -- 으로 과연 강남의 원리금 상환을 감당할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강남에 살고 싶으면 전세로 살면 되며, 지금 성동구의 아파트도 주변이 재개발되면 오른다고 주장했다. 돌이켜보면 2년 뒤에도 가격은 그대로였다. 아, 토허제 확대로 내가 팔고나서 1억쯤 올랐다. 모든 부동산 중개인의 말이 맞지는 않다. 특히 해당 지역에서 만난 부동산 중개인은 강남행을 말렸다. 이 지역에 오래 사시라고 했다. 나는 그들의 선의를 믿고 싶지만, 선의가 있다고 과실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리고 그들 중 누군가는 어쩌면 선의 조차도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이 동네 부동산들에게는 내가 팔고 빠져나가서 다른 곳에 가서 비싸게 돈을 주고 사는 것 보다, 이 동네에서 조금 나은 부동산을 계속 매입해서 사는게 그들에게 지속 가능한 수익이 된다고 생각하는게 아닐까 생각했다. 이 지역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면 좋을게 없어서 그런지 가급적 비싸게 늦게 팔라고 권유하는 것 같았다. 그건 한 때 나의 생각이었고 내 심증이 맞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지역 부동산 중개인 중에는 나의 강남행을 말리는 사람들이 많기는 했다. 강남에는 가격을 깎아서라도 거래가 체결되도록 권유하는 중개인들이 많다고 하던데, 즉 못 팔아서 안달이라던데, 여기는 분위기가 달랐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건 나의 심증이지 물어보거나 확인해 본 건 아니다.
나에게 두 번째 잘못된 조언을 준 그 지역 중개인은 재시때 나타났다. 그분은 30년 간 부동산 중개업을 하면서 축적된 경험을 토대로 진심어린 조언을 해주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한동안은 부동산 가격이 주춤할 것이고, 2025년 연초부터 부동산 거래가 매우 적었으며, 지금 경기 상황을 볼 때 단기 급락장이 올 가능성이 높으므로, 지금 집을 팔더라도 한 석달 동안은 현금을 들고 관망을 하다가 급매가 나오면 싸게 사라고 했다. 특히 강남 부동산은 과거 경험상 3억도 싸게 살 수 있으므로 강남 부동산을 한 두 군데 친하게 지내면서 급매가 나오면 연락달라고 해 놓으라 했다. 그러나 실제로 나중에 나타난 결과는 꾸준한 폭등이었다. 오름세는 그칠 줄 몰랐고, 새 정부 들어서서 6.27 대책으로 대출 6억 제한의 초강수가 들어서자 그쳤다. 30년 경험에 의한 전망이 틀린 것이다.
그런데 어차피 우리는 현금을 들고 관망하는 일을 하고 싶어도 한동안 그럴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집을 엄청 보러 오는데도 집이 팔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서문(PREAMBLE)에서 성동구 집을 세 놓았다고 말했던가. 세입자 분은 나이 지긋하신, 그리고 이미 강남의 상급지에 집을 보유하고 계신 대단한 자산가셨다. 자녀 교육도 성공적으로 마치신 분으로 내가 따라갈 수 없는 큰 격차를 만드신 분이지만, 겸손하고 친절하며 자신의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나의 이사를 지지해 주셨다. 그래서 자신의 일과 가정의 일정으로 인해 많이 바쁜 와중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집을 보여 주셨다. 그럼에도 집은 나가지 않았다.
무언가를 판다는게 어려운 지는 알고 있었지만, 세입자가 살고 있는 집을 판다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나는 강남으로 가기 위해서 우선 내가 세 놓은 집을 팔아야 한다는 어려운 과제를 목도하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분의 협조를 받아야 했고, 정말 어렵게 말을 꺼냈지만 전화와 문자를 통해서 협조 요청을 드렸다. 내용은 이러했다. "제가 직장을 최근에 강남으로 옮겼는데 이로 인해 통근시간이 길어지고 또 둘째 아이도 낳아서 여러모로 직주근접을 위해 이주를 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매도를 위해 집을 좀 보여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런 내용이지만 말투는 최대한 공손하게 했고 한 단어 한 단어가 그분의 감정을 불편하게 하지 않도록 모든 연락과 문자, 통화시에는 한 마디 한 마디 조심했다. 보수적인 첫 직장생활에서 오래도록 상사들을 대하면서 깎이고 깎인 시간과 보고서를 쓰면서 표현 하나 하나 퇴고를 거듭했던 시간들이 이 일에 유용하게 사용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분은 흔쾌히 집을 보여주시기로 했다. 당신께서도 집이 없는 것도 아니고, 잘 협조해 주시겠다면서 나의 불쌍한 사정을 긍휼히 보아 주셨다. 그런데 그 이후에 실제로 집을 보여주시는 일은 쉽지 않았다. 연말에 한 달 휴가를 가셨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봄에도 휴가를 한 달 쯤 가셨다. 그리고 병환이 생겨 한 동안 집을 보여주실 수가 없었다. 나중에 중개인들로부터 전해들은 바는, 키우는 강아지가 있는데 매우 예민하여 모르는 손님이 오면 힘들어했고, 따라서 그럴 때 마다 주인내외분 혹은 자녀분이 강아지를 안고 복도에 나와 있거나 베란다에 가 있어야 했다고 했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면 쉬운 일이 아니셨을 것이다.
부동산 중개인들은 주에 한 번이라도 날짜를 정해서 집을 보여주시기로 협의를 해보라고 했다. 일단 그 요청을 드리기 전에 작은 선물을 보내드렸다. 하지만 날짜를 정해서 보여주는 협조를 받는 것은 어려웠다. 여행을 가실 계획이라 집을 비우실 것이고, 돌아온 후에 연락을 다시 주시겠다고 했다. 타는 마음으로 하염없이 연락을 기다렸다.
임차인 분은 중개소로부터의 연락을 나를 거치지 말고 직접 임차인 본인에게 하도록 하셨다. 나중에 듣기로 임차인 분이 보기에 집을 잘 못 팔 것 같거나 마음에 안 드는 A중개인에게는 "당신은 연락이 오더라도 집을 보여주지 않겠다" 고 하셨다고 했다. 나는 그 중개인이 어떤 이유에서 그런 응답을 받았는지 모르지만, 그 중개인의 태도가 그 사건 이후로 180도 달라진 것에 놀랐다.
정황을 좀 설명해 보자면, 나는 이 집을 빨리 팔고 싶어서 앞서 말한 A중개인을 포함하여 20군데 쯤 되는 공인중개 사무소에 광고를 냈다. 매체는 호ㅇ노노+ㅇ방(제휴관계), 네이버ㅇ이부동산 두 군데 주요 매체를 통해 냈다. 그런데 그 중에서 A중개인은 나에게, 그렇게 20군데 내면 소위 '동네매물' 취급을 받아 잠재적 매수인으로부터 가격이 후려쳐진다고 했다. 그러니 자신에게 전속으로 맡기면 자신이 책임지고 팔아주며 중개수수료도 깎아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빨리 다른 곳에는 매물을 다 내리라고 했다. 그리고 누군가가 연락을 해와서 다시 자신에게 중개를 맡겨달라고 하면, 전속인 A중개인을 통해서 공동중개로 진행하라고 말하라고 했다.
얼핏 들으면 나름의 논리가 있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여러 부동산 중개인이 경쟁해서 내 물건을 팔려고 할 때 보다, 한 중개인에게만 내놓았을 때에 잘 팔릴 것 같지가 않았다. 그래서 일반인이 모여있는 단톡방, 익명게시판, 이 지역 및 다른 지역 공인중개사에게 연락해 이 주장에 대해 평가해달라고 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했다. 상식적으로 말도 안되는 주장이라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뻔뻔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차피 이번에 거래가 언제 되든 상관없고, 다른 중개사들이 수수료를 가져가는 것이 싫었을까. 나로서는 상급지 부동산 가격이 계속 신고가를 경신하는 와중이라 한 주 한 주가 비쌌는데 이 중개인은 자신에게만 맡겨달라는 주장을 했다. 이런 주장을 한 사람은 그가 유일했다. 결국 나는 그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답변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전략을 재점검해 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임장을 주선한 한 중개인에게 내 집에 대한 잠재 고객의 반응에 대해 물었는데, "요새는 경기가 이래서 물건이 잘 안팔릴거다. 한 몇 달 있어야 이 지역에서 거래가 될거다" 라고 했다. 거래가 잘 안되면 그 간극을 좁혀서 거래를 체결하도록 노력해야지 장 탓만 할 거면 임장은 왜 시켜준 것인가? 중개인 중에서 옥석을 가릴 필요는 있어 보였다. 그래서 물건을 모두 양 매체에서 다 내리고 반응을 지켜봤다. 연락이 오는 부동산은 의욕이 높은 곳이니 다시 물건을 중개하도록 했고, 연락이 안오는 부동산은 버렸다. 자연스레 중개 부동산 수가 줄어들었다. 물건을 내 놓은지 넉달 쯤 지나서였다.
아참, 그 A 부동산은 나에게 전속계약을 제안한 이후에 임차인분께 출입금지 조치를 받고서, 고압적인 자세가 180도 바뀌어, 내게 한 번만 집주인께 말씀을 잘 드려서 자신도 임장을 할 수 있게 허락해 달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간청했다. 난 그러지 않았다.
2025년 2월, 오세훈 서울시장이 강남 일부 지역에 적용되던 토허제를 해제하자 강남구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다. 실거주 목적이 아닌 수요자가 갭투를 위해 지방에서 돈을 싸들고 올라왔다. 내가 정한 예산선에서 실거주 하려고 눈여겨 본 아파트들이 차츰 후보군에서 사라져갔다. 아내는 '옮기고 싶은 곳을 먼저 찾아야 하지 않느냐'고 했지만 나는 내 집이 팔리지 않은 상태에서 '그건 의미가 없으니 팔리고 찾자'고 했다. 폭등세를 보면서 눈여겨 본 단지들이 매입이 불가하게 되자 아내는 나의 주장에 결국 동감했다. 가파른 상승세에 손발이 묶인 채 얻어맞고 있던 우리는, 34일만에 확대 지정된 토허제 이후 더 가파른 상승세를 경험하게 되었다. 토허제로 묶인 강남 3구+용산구에 있는 모든 아파트들이 갭투자가 불가능하게 되자, 실거주가 가능한 물건만이 매물로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이를 매물 잠김 현상이라고 했다. 공급이 부족해지니 가격이 뛰었다. 토허제 해제는 수요를 늘렸고, 토허제 확대 지정은 공급을 줄였다. 두 경우 모두 가격 상승을 가져왔다.
이렇듯 수요와 공급의 법칙은 강력하다. 그건 법칙이다. 가격을 내리면 사려는 사람이 더 나타난다. 토허제 재지정으로 인해 상급지 가격은 폭등했지만 매물 자체가 줄어들었기에 풍선효과가 서서히 성동구에도 오기 시작했다. 부동산 중개인 중에는, "이제 성동구에도 가격이 뛸 거니까 호가를 올리고 더 지켜보다가 팔아라" 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여기가 올라도 상급지 가격은 훨씬 빠른 속도로 오르고 있었기에, 빨리 팔아야 한다는 내 생각에 변함은 없었다. 그래서 3월 20일께 가격을 2천 내렸다. 그러자 매수희망자가 많아졌다. 가격은 이 때 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재료가 있을 때 가격을 내려서 내 물건이 제일 먼저 팔리도록 유도한다. 여기서 1, 2천 더 욕심을 부렸다가 한 달 늦어지면 내가 갈 곳의 물건 값이 1억이 오른다.
예산 범위에 있는 아파트들 중에서 가고 싶은 곳을 추려서 임장 신청을 했다. 전화를 하면 듣는 첫 마디가 그거다: "집은 파셨어요?" 아니라고 하면 "하... 집은 팔고 연락을 주셔야 하는데요 요새 매수자만 많아서..." 했다. 집을 못 팔았지만 보여주시는 집도 있었다. 하지만 어차피 집도 안 팔려서 별로 흥이 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지식은 축적해야 했다. 임장을 다니고 동네를 보고 단지를 봐야 물건의 가치와 나의 선호에 대해 더 잘 파악할 수 있고 결정적인 순간이 올 때 빠른 결정을 잘 내릴 수 있다. 서초동, 도곡1동 아파트를 다녔다. 방배동은 가격 접근성이 있었지만 우리 생활권에서 멀어서 결국 안갔다. 아내는 재건축에 꽂혀 있었고 나는 회의적이었다. 나중에 기술하겠지만 재건축이 몇 억 싸 보여도 그게 훨씬 비쌀 수 있다. 전세 놓고 나오는 것도 못한다. 재건축 단지를 임장갔을 때, 다 쓰러져 가는 시골 집 같은 곳에서 장판을 깔고 지내는 구축 아파트를 보면서, 이걸 사면 사기를 당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한 번 뿐인 나와 내 가족의 몇 년 혹은 십 년을 인내하면서 보내고 싶지 않았다. 우리가 그래서 몇 억을 더 번다고 해도 그것과 나의 '시간'을 바꿀 수 있겠냐고 되물었다. 아무리 몇 억을 더 번들, 어차피 대단한 부자가 되지도 못하는데 그걸 꾹 참고 더 벌어서 뭐 하냐고 생각했다.
5월 첫 주말, 처가쪽 행사에 참석할 겸 지방 여행을 떠났다. 운전을 하고 내려가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았는데 "매수자가 나타나서 계약을 하려 한다"고 했다. 흥분하지 않았다. "아 네" 라고 했다. 그런데 한 가지 조건이, "1천만원을 깎아달라고 한다"고 했다. 내가 되물었다. "1천만원을 깎아드리면 계약을 체결하실 수 있냐"고 했다. "그렇다"는 답이 왔다. "그러면 그리 하겠다"고 했다. 가계약 문자를 적어서 보내줄테니 그러면 계좌번호를 알려 달라고 했다. 계좌를 알려주었다. 그런데 1시간이 지나도 돈이 안 들어왔다.
다시 연락을 했더니, 부모님이 반대를 해서 보류한다고 했다. 이미 수많은 좌절을 겪었기에, 물론 좌절스러웠지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2시간 뒤에 전화가 왔다. "하신대요! 한대요" 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또 태연하게 답했다. "네 좋습니다." 계약서 문자가 왔고 나는 동의를 했고, 가계약금 입금을 받았다. 가계약금은 본계약서를 쓰기 전에 빠른 계약관계 확정을 위해서 공인중개사가 대략적인 거래 가격과 물건 거래상대방 인적사항을 적어서 당사자들에게 송부하고 이를 동의한다는 표시로 매수자가 매도자에게 보내는 약간의 금액이다. 만약에 매수자가 마음이 바뀌면 이를 포기하고 계약을 해제하고, 매도자가 변심하면 매수자에게 배액을 배상하고 계약을 해제한다(배액배상). 마음이 변치 않기를 바라면서 나는 기쁜 마음을 안고 목적지에 내려왔다. 처가 식구들이 축하를 해주었다.
이제 우리는 캐쉬를 손에 쥘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집을 보러다닐 수 있다. 새 집을 사는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집만 팔면 모든 일이 쉬울 것 처럼 생각했던 우리가 앞으로 도래할 수많은 난관들에 대해 얼마나 예견하지 못했는지 나중에서야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