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떨어진 물건 - 급등장에서 매입할 물건 찾기
강남 3구 및 용산의 매물은 하루가 다르게 줄어갔다. 토허제 확대 재지정으로 인해 실거주 가능 매물만이 실수요자에 의해서만 매입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네이버 부동산을 보고 부동산에 연락하면 그 매물은 봄에 나온 매물로 규제 이후에 '들어갔다' 라고 하는 것들이 허다했다. 집주인이 살고 있는 매물은 하루가 다르게 호가를 높여갔다. 우리의 예산선에서 살 수 있는 매물이 빠르게 줄어갔다. 수급의 원칙은 시장에서 피부로 체감되었다. 공급이 줄었기에, 동일 매물에 문의가 몰리고, 문의 전화가 많아짐에 따라 강남 집주인들은 하루에도 5천씩 호가를 올렸다. 내외간에 중복해서 같은 집에 연락을 하면 수요가 많은 것으로 생각해 집값을 올려버리니 주의하라는 조언을 어느 부동산으로부터나 들을 수 있었다. 서로 무슨 단지 무슨 층 얼마 짜리 물건을 누구에게 연락하는지 역할을 나누고 그 결과에 대해 실시간으로 공유했다.
자기들은 급하지 않으니 집을 나중에 늦게 팔겠다고 했다. 탄핵 정국으로 새 정부 혹은 정권이 들어섬에 따른 부동산 기대 심리는 상승이었다. 한편 집주인도 이 집을 팔고 상급지로 가고 싶은데 상급지 가격도 같은 기대심리에 대해 더욱 더 가격이 크게 뛰기 때문에 이 가격에 팔지 않고 호가를 높인 다음에 팔리길 기다리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재미있는 용어를 많이 알게 되었다. '출발', '계좌가 나온다' 는 것 들이었다.
네이버페이 부동산에서 매물을 보고 중개소에 연락하면, 집주인에게 물어보고 연락주겠다고 한다. 몇 시간 뒤에 연락이 오면, 이제는 거기서 그 사이에 호가가 5천이 올랐다고 한다. 그런데 계약을 하실거면 자기들이 조정을 해보겠다고 한다. 물건을 볼 수 있으면 다행이다. 집주인이 물건을 '거둬들인' 경우라면 그 집은 내가 볼 수 있는 매물이 아니다. 즉, 네이버페이 부동산이든 어디든 나와 있는 매물들 중에서 진짜로 거래가 가능한 것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건 현장에 나와봐야 알 수 있다. 어느 동 몇 층인지도 알려주지 않는다. 자신의 매물의 호가가 남에게 공개되면 영업에 방해가 되나보다.
그 중에 한 매물이 나왔다고 연락이 왔다: "2x억 부터 시작입니다" 이게 무슨 소린가. 시차를 둔 경매라는 말인가? 차라리 같은 장소에서 호가를 불러서 낙찰이라도 하면 나을텐데, 시차를 두고 동태적으로 호가를 조정하니 주식시장에 다름 없었다. 그래서 날짜를 잡고 아이들을 데리고 임장을 나갔다. 어느새 가격이 2x.5억이 되어 있었다. 중개인이 조정해 보겠다고는 했다.
우리가 타겟으로 삼았던 곳은 최초에는 서초구였다. 강남역 축선에 있는 몇 개 아파트 위주로 보았다. 그러나 그곳의 가격이 몇 억이 오르자, 눈여겨 봐 두었던 곳을 지우고 더 멀리 내려가야 했다. 그 다음에 서초구에서 남하해서 남부터미널 쪽과 경부고속도로 근처의 재건축 단지를 보았다. 그리고 강남권 입문지라는 (모 장관이 보유중이라는) 도곡1동의 구축아파트들을 보았다. 당장 재건축이 될 것은 아니지만 연식이 오래된 곳들이 있었고 그나마도 물건이 단지마다 2-3개 정도 있었다. 지난주에 2-3개가 다음주에는 1-2개가 되곤 했다. 그만큼 시장에서 물량을 소화하는 속도가 빨랐고, 팔렸다는 얘기가 있으면 호가는 1억이 우습게 뛰었다. 이 동네 '대장 아파트'는 역삼럭키였다. 그도 그럴 것이 34평 가격이 24.5억에 형성되어 접근성이 좋았고, 재건축이 될 경우 대단지에 강남역과 역삼역에 근접한 좋은 입지에다 평지로서 메리트가 컸다. 다만 나는 복도식이라는 점이 그냥 싫었다. 아무리 재건축 기대감이 있더라도 바람불고 턱도 낮은 위험한 복도식에서 기약없이 몸테크를 하며 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복도식은 같은 34평이라 해도 내부로 들어가면 좁다. 구축이라 주차장 눈치싸움에 이중 삼중으로 주차해야 할 수 있다. 역삼럭키는 주차가 그렇게 심각해 보이진 않았다. 고전적인 ㄱ자 아파트가 널찍한 정방형 마당의 한켠에 배치되어 있었고 그 마당에 배추차도 와서 광고해도 될 정도로 넓은 주차장이 있다.
신축 아파트를 살아보니 그 공간이 어떻게 변화할 지에 대해 그림이 그려진다. 일단은 넓은 마당의 일부는 조경이나 커뮤니티 센터들로 활용될 것이다. 동 간에는 그 마당의 반 정도 되는 넓다란 폭의 보행로가 생길 것이다. 보행만 할 수 있고 차들이 다니지 않으니 사람들이 쓰기에는 탁 트인 느낌을 줄 것이다. 그리고 일부 분리수거 차량이나 예외적인 소방/경찰차 등을 제외하고 모든 입주민의 차량은 지하 3~4층까지 난 넓은 주차장에 수납될 것이다. 차가 차지하던 공간에 건물이 더 가깝고 높게 지어지게 되어 건폐율과 용적률이 높아지므로 아파트 대지 지분당 가치가 올라가게 된다.
반면 안 좋아보이는 재건축 단지도 있었다. 도곡ㅇㅇ으로 비탈에 있는 길고 좁은 땅에 단 2개 동, 3백 몇 십 세대의 15층으로 된 곳이었다. 이 곳에 가보니 장판을 깔고 있는 시골집에 온 느낌이었다. 재건축이 된다지만 재건축 후에 5개 동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이런 곳에 20억이 넘는 돈을 내며 살고 싶지 않았다. 돈을 갚으면서도 내내 기분이 나쁘고 불행할 것 같았다.
개포8차 우성은 임장을 하기도 전에 주인들이 집을 보여주지 않으며 호가를 자꾸 높였는데 그 전에 다른 신축 매물이 나오고 계약을 해 결국 보지도 못한 곳이었다. 여긴 당시에 23.5억 호가였으나 현재 29억까지 호가가 치솟았다. 양재천 바로 앞에 위치하며 구룡역이 앞에 있고, 도곡과 대치역이 가까워 교통이 좋으며, 주변에 학교가 많고 건물 높이가 낮은 곳이다. 만약에 연이 닿았다면 여기를 해도 좋았을 것 같다. 그러나 대략 30%는 추가 분담금을 내야 한다고 치면 원래 받은 주담대에 7-8억 추가분담까지도 각오해야 할지 모르는 만만치 않은 단지다.
중학교 때 우리 동창이나 연합동아리 친구 중에서 아버지가 한의사던가 사업하는 친구들이 강남으로 간다고 했었다. 그때는 그게 가능한 정도였다. 어차피 강남이나 수도권이나 그렇게 엄청난 차이가 있진 않았다. 그때부터 애초에 이런 곳에 구축이라도 등기를 치고 한 이십 년 살았다면 지금 쯤 자산가치 차이가 5배는 났을 것이다. 수도권 당시 5억-> 지금 8억 대 강남 당시 7억 -> 현재 40억 정도 느낌이라서 무리한 가정은 아닐 것이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사회 지도층들이 자원을 어디에 쓸지를 계획하고 결정하는데, 국민의 세금이 (이들이 주로 생활하는) 서울과 강남 주변을 발전시키는데 투입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지하철 노선도 계속 서울 중심에 빽빽해진다. 좋은 직장은 강남, 여의도 등 주요 업무지구들에 많다. 교육을 보면 대치동이 1번지라고들 한다. 사람들의 행태를 보면 그건 잘 알 수 있다. 과천이나 평촌이나 분당에서 대치동 라이딩을 한다고 한다. 아니 평촌도 학원가가 있다는데 거기서 강남에를 온다고? 각종 문화시설이나 실력 좋은 음식점도 강남에 종류가 많다. 생활하기에 편하다.
내가 느낀 강남의 장점은 나중에 더 살펴보고, 단지 서울만 놓고 보자. 예전에는 서울이나 지방이나 쓰는 버스 혹은 정류장도 비슷했다. 그런데 지금 서울 버스들은 저상에 전기버스로 많이들 바뀌었고, 정류장도 엉따가 있거나 아니면 부스가 있어 추위와 더위를 피하면서 휴대폰 충전을 할 수 있는 것들이 여럿 있다. 그러나 부산이나 인천에만 가봐도 구식 높은 계단 버스에 올라야 하는데, 거길 오르내리는 게 누군가에겐 힘든 일일 것이다. 저상은 모두에게 편하다. 나라도 서울에 가고 싶을 것 같다. 인천에 갈 일이 있어 무슨 아이들용 체험센터란 곳에 간 적이 있었다. 입장료를 몇 천원씩 받았는데도, 세상에 내 초등학교 시절에나 보았을 법한 낡디 낡은 교구와 책자만 있었고, 무슨 놀이방 같은 곳에는 장판이 깔려있는데 거기서 아빠랑 엄마들이 애들 데리고 그 책이나마 읽히며 놀아주고 있었다. 나는 정말 내가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아니 다른 지역 시설에 한 번이나마 다녀왔던 사람들이라면 너무 억울해서 그 지역에서 살고 싶지 않을 것 같았다. 같은 소득이면 세금도 똑같이 내는데 왜 지방에는 그런 시설들이 입장료까지 받는데도 그렇게 엉망인가. 예산이 결코 부족해설까 아니면 특정 지역 공무원이 복지부동이라 그럴까. 이유는 몰라도 결과적으로 상황이 그러니 그런 인프라에 대한 비용들 문화와 교육 접근성 치안 등에 대안 프리미엄이 결국 '땅' 즉 위치에 붙게 되는게 아닐까. 결국 지가를 높이는 것은 그런 예산 집행의 누적된 불평등성과 비효과성의 차이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악순환에 어느정도 기인하지 않을까. 정주여건이 안 좋음 -> 사람들이 안 오고 학교도 없음 -> 좋은 기업도 없음 -> 돈을 주변에 못 씀 -> 주변에 경쟁력 있는 가게도 없고 즐길 거리도 없고 값만 비싸고 퀄리티 안 좋음 -> 정주여건이 안 좋음 ...
여튼 그래서 그 예전에 강남 아니 뭐 어디든 살기 좋은데다 계속 집을 옮긴 사람들이면 특히 강남에 목 좋은 곳에 집을 마련해 둔 분들이라면 이제 그 집 팔아서 자식들 서울 마용성 같은 곳에 집 하나씩 해주고 자신은 근교에서 산다던지 아니면 자식들 옆에 또 집 하나 사서 아이들 봐주면서 노년을 보낸다던지 하는 아름다운 그림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처음 산 아파트에 그런 할머니가 있었다. 자기는 반포였나 압구정인가 살았는데 거기 예전에 팔아서 뒷구정이라는 이곳에 집 2개 사서 하나는 아들네 주고 하나는 자기 살면서 애 봐주고 있다고. 충분히 이해가 가는 그림이었다. 물론 지금 당장 압현 하나를 팔면 사촌동생까지 같은 집을 나눠줄 수도 있을 것이다.
부러워하는 건 소용 없고 역사를 돌릴 수는 없으니 난 어떻게 하면 저기 귀퉁이에 집을 가질 것 인가를 생각했다. 그러던 중에 강남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모 신축 단지를 보는데, 뒷 동 물건들은 아무래도 커뮤니티 시설과 도로 사이를 놓고 나눠져 있고 지하 주차장도 연결되어 있지 않아 다닐 때 불편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나름대로 각자의 커뮤니티 시설이 있고 놀이터나 조경도 예뻐서 나쁘지 않다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 물건들 가격이 앞동에 뒤지지 않게 높았다. 그러나 물건이 어느 부동산에 연락을 돌려도 남은게 거기뿐이라고 하고, 우리도 예산선에서 3억을 더 하고 신축을 와서 평수도 한 단계 줄였는데, 대출도 이제 거의 LTV 50% 가깝게 받으려 생각한 터라 그 이상의 물건은 볼 수가 없었다. 두 층의 물건을 보여주었다. 속으로 오모 시장에 대한 욕이 절로 나왔다. 아니 예전같으면 갭 물건도 있고 그냥 입주 물건도 있고 몇 개씩 볼 수 있었을텐데, 매물이 없어서 울며 겨자먹기로 몇 안되는 것 중에서 사야 하다니.
하나는 새로 한 인테리어가 조잡해 맘에 안 들었다. 새로 해야 할 정도였다. 주인분이 친절했고 팔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으나 연락드릴게요 라는 예의상 하는 말을 남기고는 나왔다.
다른 하나 높은 층 물건은 초등학생 아이가 공부를 하고 있었고 전망은 높아서 괜찮았다. 그리고 인테리어가 순정에 가까웠다. 이분들은 이걸 팔고 반포로 간다고 했다. 그래 뭐 둘 중에서 한다면 여기로 해야겠다. 라고 생각했다. 주인 분은 우리보다 젊었는지 아니면 결혼을 일찍 하셨는지 큰 아들을 두었는데도 우리보다 어려보였다. 우리 딸에게 예쁘다며 엘사 팔찌 시계를 주었다. 연락하라는 거였다.
그러고서 이제 부동산에게 생각해 본다고 하고 헤어지면서, '이번주말에 나갈 듯 하니 빨리 결정하셔야 할 거다'라는 말을 듣고는 이제 잠실도 주말에 보려고 했다. 그런데 아침에 내가 아내 몰래 연락을 했던 부동산에서 "먼저 본 집을 다 보시고 나서 연락주세요" 하는 문자가 왔다. 아차. 여기 연락을 해놨었지. 물건이 없다던데, 속는 셈치고 연락해봤다.
연계된 물건이라면서 앞 동 뒷쪽에서 보자고 했다. '여기 진짜 좋은 물건인데, 우리가 네고를 해볼테니까 절대 좋은 내색 하지 마세요.' 우리는 그분들을 만났고, 다른 부동산에서 나온 분들을 10여 분 간 기다려 호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런 물건이 어떻게 여기 숨어있었나 싶게, 도배까지 완료한 깨끗한 공실이었다. 창밖 전망이 일단 맘에 들었다. 도로에 가까우나 바로 옆은 아니었다. 아이 둘은 마룻바닥을 기고 구르며 깔깔댔다. 지금까지 본 수많은 집 들 중 단연코 여기가 1등이었다. 나는 포커페이스를 하면서 마루 한 쪽에 실리콘이 떨어진 걸 괜히 쳐다봤다. 중개 부동산은 내 앞에 재빠르게 나타나 '여기 앞에 어린이집 보이시죠? 바로 앞이라 딱 보내시면 되겠네요' 했다. 나는 매도 의지를 직감하며 "오 그렇네요 ^^" 했다. 호실을 신속히 살펴보고 나서, 우리쪽 부동산과 우리 식구는 호실 밖을 나왔고, 나오자 마자 엘리베이터가 도달하기도 전에 아내가 '너무 좋네요 ㅎㅎ' 했다. 중개인 두 분은 왜 말리는 일을 하냐는 듯 얼굴을 찌푸리고 질색을 하셨다. 중개인 분과 우리는 건물 밖으로 나왔다.
마당에 나와서 말씀하시길, "이 집은 아까 말한 그 금액으로 계좌가 나오는 집이에요. 내가 최대한 네고를 해볼게요." 라고 했다. 계좌가 나온다는 말은, (이 경우는 아마도 주인이 급매를 원하니 이 정도 호가에 쿨거래 한다고 하면) 주인이 가계약금을 받을 계좌를 알려준다는 뜻이다. 신기했다. 뒷동 호가랑 같은데, 여긴 커뮤니티센터도 가까웠고 위치가 너무 좋았다. 아내는 나에게 '진짜 우리 이거 가능해? 너무 비싼거 아냐?' 라고 했으나, 나는 내가 다시 같은 실수를 하면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이거 내가 계산했는데 충분히 가능해. 걱정마 내가 벌어서 갚을게' 라고 했다. 주인분은 나에게 가계약금 얼마를 넣을 수 있냐고 했고, 나는 5천 바로 쏠 수 있다고 했다. 앞서 판 집에서 받은 2천과 내가 평소에 갖고 있던 현금 중에서 예비비를 제외한 금액이었다. 일단 3천만 넣자고 했다. 익스포저를 맞추는 것이다. 나는 배액배상을 받고 계약 취소 당할까봐 5천을 넣으면 안되냐고 했는데, 조금 고민하시더니 한 3천만 넣어도 된다고 친절히 일러주셨다. 참으로 고마운 중개사분이 아닐 수 없다. 중개사분은 혹시라도 거래가 취소되면 수수료의 일부만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러니 배액배상을 받아서 취소되면 좋지 않기에 5천을 넣어서 확실히 거래를 못박아 두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분은 혹시나 내가 매도하기로 가계약한 사람이 가계약금 포기를 하게 되면 나도 이제 새 집 계약 취소를 해야 하니 만의 하나 그런 경우에도 3천만 포기할 수 있도록, 그러면서도 매도자의 사정상 배액배상 안할 정도의 절묘한 선으로 3천을 제안해 주셨다. 나는 그렇게 한다고 했고, 네고 하신 다음에 계좌랑 계약문구를 받아서 연락주시겠다고 했다.
우리는 귀가 전에 아이들을 그 단지에 있는 비교적 큰 놀이터로 데리고 가서 놀아주었다. 아이가 재미있게 생긴 놀이기구를 타고 싶다고 하자, 그곳의 조금 더 큰 여자아이 둘이서 처음 보는 내 아이를 다칠세라 서로 역할을 나눠 누구는 잡고 누구는 어쩌고 논의하면서 자기 일 마냥 살뜰하게 챙겨주었다. 그 앞에는 장수하늘소를 잡아서 통 안에 키우고 있는 남자아이가 있었다. 내 아이가 그게 장수풍뎅이냐고 물어보자, "응 이거는 장수하늘손데 장수풍뎅이랑은 조금 달라," 하면서 이거는 어째서 그렇고 저째서 그러한데 하면서 처음 보는 딸아이에게 똑똑하고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놀이터 옆으로 단지 끝까지 넓게 난 보행로의 블록은 제각기 다른 가로 크기를 갖고 있었고 보통의 블록보다 크기가 잘았다. 어떻게 이런 불규칙한 크기의 블록들을 이 넓은 길에 빈틈없이 잘 깔았는지 살던 집에서는 보지 못한 것이었다. 조경은 어찌나 멋스러운지, 시원스럽게 뻗은 나무를 세 주씩 묶어 나란히 모은 뒤에 레이어를 지어 차례로 나타나는 숲, 그리고 다양한 식물마다 상세히 적힌 설명들을 보면 얼마나 이런 세세한 부분에 까지 신경써서 꼼꼼히 지었는지 알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왔다. 헤어진지 3시간이 지났는데도 연락이 안왔다. 초조했다. 네고가 틀어진건가. 그때 전화가 왔다. "지금 내가 네고중이니까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1시간 더 지나서도 연락이 없어서 초조했다. 그때 전화가 왔다. "내가 얼마를 깎았어요. 네고를 제대로 했어요." 하고 흡족해 하시는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전해졌다. 정말 고마웠다. 계약문구를 작성하셔서 보내주셨고, 나는 문자 맨 끝에 있는 계좌로 가계약금을 입금했다.
나중에 돌아보면, 뒷 동 물건들이 비슷한 가격에 쭉 거래 되었다. 우리는 더욱 좋은 물건을 같은 가격에 산 것이다. 운이 좋았다. 처음 그 물건을 보았을 때는 마치, 깊은 산 속에 아는 사람들만 아는 바위 뒤 보석함을 우리 눈 앞에 누군가가 '짜잔~' 하고 열어준 것 같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좋은 물건은 아이들이 잘 안다. 맘에 드는 집에서는 다른 곳과 다르게 나가려고 하지 않았다. 우리는 큰 숙제를 해결했다. 집 팔기와 집 사기의 가계약들.
그러나 그 뒤로 얼마나 피가 마르는 사건들과 뜬 눈으로 지새우는 밤들이 우리 가족을 괴롭게 했는지 그때까지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