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를뻔한 계약을 하기로 결정하기까지 - 본계약
이 글을 쓰는 초가을 밤 11시 반, 창밖에는 귀뚜라미가 울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한밤중에도 창을 열면 차 소리가 끊이지 않던 판교 집과는 달리 이곳은 조용하다. 큰 도로변이 아니라 간간이 차가 다닐 뿐이다. 간밤에 비가 내린 날 아침에 창문을 열면 저 멀리 산 마루에 구름이 걸쳐져 있고, 1층 현관에 들어서려고 보도블록을 걷다 보면 장수하늘소가 걸어가고 있으며, 검은 날개의 잠자리가 저공비행을 한다. 밤에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풀내음이 곁들여진 바람이 불어오는 걸 보고 있자면 군복무 할 시절이 생각날 정도다. 시골 어느 마을에 갑자기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서 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조금만 이동하다 보면 빼곡히 들어찬 아파트 단지들과 -- 지도상으로만 봐서는 그 존재가 와닿지 않았던 -- 사무실 건물들을 만나게 되며, 조금 더 올라가면 테헤란로를 만나게 된다. 이곳은 서울이면서도 서울 같지 않은 신기한 곳이다. 나는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가계약금을 포기하고 계약 취소를 할까 그냥 판교에서 역 앞으로 전진할까 하는 막막한 의사결정의 현장에서 결국 다음과 같은 과정을 통해 의사결정을 할 수 있었다.
우리는 원래 보유 중이던 집 가격만큼의 대출을 받을 것을 상정하고 지금 살고 있는 새 집의 매입을 위한 가계약을 체결했다. 다른 대안은 없었고, 당시로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매물이었다고 생각한다. 대출을 더 받고 옆의 단지 등등을 갈 수 있었지만 한 끝 차이로 계획이 틀어지는 것보다는 약간의 여유를 두고 진행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입주 1달 반이 지난 지금, 중도상환 수수료를 물지 않는 상환 한도인, 대출의 10%를 갚았고, 최근 거래가 기준으로 LTV는 정확히 40%가 되었다. 내년 말이면 이 값이 36%가 될 것을 목표하고 있다.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금액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가계약을 하고 나서 본계약까지 3주라는 긴 기간이 우리에게 수많은 고뇌를 허락했다. 왜 3주가 있었냐 하면, 가계약하고 나서 자신의 자금조달계획서와 현재 여러 계좌 잔액증명 등을 첨부한 '토지거래허가신청'을 구청에 해야 하고, 그 허가를 받기 전까지 가계약은 '유동적 무효'의 상태에 놓이게 된다. 만일 허가가 나지 않으면 본계약은 당연히 체결할 수 없지만, 허가가 나면 비로소 본계약을 체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 허가가 나는 기간이 대략 2-3주라고 한다.
그 기간 동안 고민이 될 만한 이유는 충분했다. 유튜브에서는 집값이 하락할 거라는 전망을 내놓는 사람들이 많았고, 장모님은 어느 날 찾아오셔서는 30분 동안 계약을 철회하도록 나를 설득하셨다. 요지는 이러했다: "그 대출금을 이고 살면 너무 빡빡하지 않겠느냐. 그 정도면 누군가의 집 값이다. 이미 연초부터 집값이 무섭게 올랐는데 추격매수는 하는 게 아니다. 떨어지면 어쩌려고 그러느냐. 판교역 앞에 집으로 계약하면 대출도 적고 좋지 않으냐. 그리고, 지금 전세 살고 있는 집에 후속 세입자가 들어오지 않아서 전세금을 못 돌려받으면 지금 집 매수 계약금을 날릴 텐데 그러면 더 큰 일 아니냐. 인생 공부 했다고 치고 계약금 3천만 원은 버려라. 이자비용 낼 생각하면 그건 돈도 아니다."
틀린 말씀은 아닌 것이 if가 너무 많았다. 우리가 할 일은 이런 식이었다. 보유 중인 집의 가계약금 외에 계약금, 중도금, 잔금을 차질 없이 받고, 또 현재 들어가 있는 전세금을 돌려받고, 은행에서 주담대가 제대로 다 나와서 강남의 매수한 집의 잔금을 치른다는 것이다. 이 중에서 하나만 삐끗해도 그 후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었다. 후술하겠지만, 전셋집의 주인은 내게 전세금 반환에 대해 "기다려 보시죠" 로 일관하며 확답을 주지 않았기에 주말에 어딜 놀러가도 그 생각이 마음을 짓눌렀다. 혼자서 별의 별 시뮬레이션을 하면서 플랜 1, 2, 3을 세우는 일이 내가 혼자 있으면 생각하는 것이었다. 일단, 그건 차치하더라도 내가 강남에 집을 매수하는 일이 판교에 있는 대안보다 더 나은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우리 둘이서 유튜브나 보고 기사나 읽는다고 해서 해결될 의사결정이 아니었다. 주변에 여러 현명한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주변 지인 중에 옥수동 대단지 신축을 갖고 있는 사람이 우연히 2명 있었다. 각자 재무와 부동산에 밝다고 생각해 연락을 해보니 같은 단지 거주중이었다.
첫 번째 사람은 회계사였는데, 전 직장 동료로 나와 원래 가까웠다. 5월 초, 성동구 집의 매도 본계약 체결하고서, 해당 부동산 공인중개사가 역시 나의 강남 집 매수를 말리기에 번뇌가 생겼는데 그 근처 사는 이 분이 떠올라 전화를 했다. 이 분은 어차피 남쪽 생활권인데 판교보다 내가 고른 강남이 낫다고 했다. 그리고 우스갯소리로 '강 건너가기 힘들다'라고 했다. 사실 그분이 사는 집은 내가 신혼 때 사고 싶었지만 엄두를 못내던 집이었다. 내 다음 스텝은 그분이 사는 집 정도 근방이 적절했다. 나는 두 단계를 가는 중인 건 맞는 듯 했다.
두 번째는 나의 대학 동아리 친구였다. 그의 분석은 철저하고 명확했다. 삶의 질은 판교(아이 케어, 평수, 분당 판교 인프라), 그러나 신축 및 가격상승은 강남이다. 그러니 '갈 수 있을 때 꼭 가라'고 했다. 정부 정책이나 나의 사정이 언제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기 때문인데, 그 말은 한 달 뒤에 6.27 대책으로 현실이 되었다. 규제 후였다면 나는 강남을 선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친구의 계속된 말은, 내가 선택한 단지는 뭘 생각해도 틀린 선택이 아니라고 했다. 더 확신에 찬 대답이었다. 어차피 다른 사람들도 가고 싶어하는 곳이라 매매도 어렵지 않고, 고소득 맞벌이 부부에게는 테남이 제일 생활스타일이 맞을 것이라고 했다. 강남에 부동산이 있으면 잘 안 떨어지고 많이 오르기 때문에 별도의 투자를 안해도 자산 축적 및 가치 상승에 투자하고 있는 것이라고 봐도 되어 리스크 헷지도 된다고 했다. 또한, 신축이 너무 없어서 향후 7-8년 간은 많이 오를 것 같다고 전망했다.
세 번째는 직장 동료였다. 부동산 경매까지 섭렵한 고수인 그분의 대답은 명확했다: "대단지 신축 가급적 강 이남." 이는 누구나 알지만 실천하기는 힘든 다이어트의 원칙인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면 살이 빠진다'와 같은 것이라고 했다. 이 정도면 원칙으로 삼아도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강남의 대안이 판교보다 더 대단지에 신축이었기에 그 원칙에 들어맞았다. 지금 와서 보니, 서울 접근성, 커뮤니티, 건물의 편리성, 학원가 등을 고려해 보면 여기 값이 판교보다 그리 비싼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하락과 상승론자의 입장이 팽팽했지만, 일부 유튜버의 논리 중에서 내 마음을 확 끄는 건 두 가지가 있었다. 김경민 교수와 이상우 소장. 난 원래 비즈니스 맨의 마케팅보다는 학자의 종합적 뷰와 데이터와 논리적 분석에 근거한 긴 시야를 좋아하는데, 단기적으로는 맞는지 몰라도 결국 들어맞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상우 소장은 '자신이 갈 수 있는 한 최상급지의 가장 좋은 단지를 한 번에 가라. 주변을 거치지 말고 한 번에 중심으로 가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 그게 내가 한 선택으로 보였다. 우리 부부는 판교 아파트 임장도 다녔지만, 결국 강남으로 가는 쪽으로 마음이 굳어졌다.
본계약금은 집값의 10%쯤 되었고, 이를 내기 위해서는 기존 집의 본계약금을 받고 신용대출을 주담대가 나오는 날까지 받았어야 했다. 그런데 1억을 초과하면 나중에 주담대가 나올 때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다행히 1억만 받으면 계약금 치르기엔 충분했다.
본계약일 일주일 전에 기존 집의 매도 본계약을 체결하였다. 저녁이었고, 부동산에 들어가자 매수인 부부가 와 있었다. 실제로는 처음 뵈었다. 내 첫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며 많은 추억을 쌓은 좋은 집이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맺혔다. 티를 내진 않았지만 안경 너머로 눈물을 닦는 나를 매수인 부부는 애써 모른 체 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계약서에 장이 넘어가고 도장이 찍히는 동안 나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잔금날 보겠지. 그때까지 계약을 무르지 않아야 할 텐데. 혹여나 괜한 말을 계약일에 해서 저분들의 심기가 나처럼 어지럽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으나, 계약금을 내면 7부 능선을 넘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억 단위의 계약금을 포기해야 하는데 과연 누가 그 일을 하겠는가. 그래도 당시에는 걱정이 많았다.
무사히 계약금이 입금되었고, 공동명의인인 아내는 신용대출을 다행히 받았고, 나도 통장에 남은 현금과 주식 포지션을 정리해서 본계약일에 계약금을 넣었다.
본계약을 체결하고서 집에 돌아와 내 방에 누웠는데 갑자기 복받쳐 오르는 감정이 들었으나 아내가 들을까봐 숨을 죽이고 울었다. 나는 인천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의 쪽방에서 어릴 적을 보냈고,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것보다 훨씬 좁은 반지하 다세대 주택 몇 군데서 오래 살았으며, 누구 집 거실방에 우리 가족이 세 들어 살던 적도 있었으며, 18평의 엘리베이터도 없는 아파트의 보일러실 쪽으로 난 내측창만 있는 방에서 중학교 3학년 때까지 살기도 했고, 대학 때는 고시원 여러 군데를 다니며 취직 전까지 살았다. 그 당시에는 입주를 완주하기까지 과연 그 난관을 다 거치고 나면 다시 그런 감정이 들지 않을까 했으나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미 그 과정들이 너무 지난하고 고통스러워서 충분한 대가를 치렀음을 무의식이 인지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게 내 것이 아닐 것 같은 불안함이 있지만, 밀리지 않고 아니 그보다 미리 상당 부분의 대출금을 상환하고 있으며 생활도 전과 다름이 없이 하고 있으므로 여러 지표를 볼 때 기우일 것이다.
다음 편에서는 대출이라는 아주 중요한 과정에서 언제 어떻게 대출을 알아보고 비교했으며 규제를 피해 결정했는지, 그리고 그다음은 전세금 돌려받기라는 가장 피 말리는 과정에서의 여러 대처와 반환 성공 여정에 대해 차례로 기술하겠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