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암환자

좋은 하루 12화

by Ryan

"나 좀 걷고 올게."

"조심히 다녀와!" 어머니는 웃으시며 병실 문을 열어주셨다.

병실을 나와 오른쪽으로 몇 걸음 옮기면 화물용 엘리베이터가 있다.

엘리베이터 문을 툭 치고 몸을 돌려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했다.


쭉 걸어가다 보면 왼쪽에 리셉션, 오른쪽엔 보호자 휴게실이 보인다.

휴게실에는 빨간색 자판기가 있다. 맨 위 칸에 콜라와 사이다가 나란히 있다.

언젠가 저 음료를 꺼낼 날이 오겠지.

입 맛을 다시고 다시 쭉 걷다 보니 환자용 엘리베이터가 나왔다.

이곳의 공기는 여전히 차갑다.

겨울인데 히터라도 틀어두면 좋을 텐데.


“잠시만요.”

뒤를 돌아보니 의료진 몇 명과 이동형 침대에 누운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환자가 있었다.

수술실로 향하는 듯했다.

난 곧바로 벽 쪽으로 붙었다.

“감사합니다.”

걸음을 잠시 멈추고 침대 쪽을 힐끔거렸다.

마침내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을 때 다시 걷던 방향으로 몸을 돌리고 눈을 감았다.

‘꼭 수술이 잘 끝나길. 부디 두려워 마시길.’


그러고 보니 항상 이쯤에서 마주쳤던 40대 중반의 아저씨는 어느샌가 보이지 않았다.

내가 링거대에 의지해 비틀비틀 걷던 그때, 마치 지금의 나처럼 저벅저벅 앞서 걷던 사람이었다.

아마 퇴원하신 것 같다. 꼭 완치되시면 좋겠다.


두리번대며 걷다 보니 어느덧 다시 병실 앞에 도착했다.

병실 문을 툭 치고 다시 화물용 엘리베이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 아홉 바퀴가 더 남았다.


열 바퀴를 채우고 병실로 들어와 보니 간호사님이 계셨다.

“환자 분, 괜찮으세요?”

오늘도 기분 좋은 웃음으로 날 맞아주었다.

“네. 이제 열 바퀴는 거뜬하네요.”

“다행이네요. 곧 퇴원하셔도 되겠어요.”

평소와 같은 말투였지만, 이번엔 진짜 퇴원절차를 알려주러 오신 것이었다.

믿기지 않았다. 드디어 집에 갈 수 있다.


간호사님 권유로 위암 수술 환자들을 위한 식사 교육에 참여하기로 했다.

강당이 위치한 지하에 도착하니, 오랜만에 보는 주차장이 눈에 들어왔다.

'곧 나도 차를 타고 나가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강당 맨 뒤편에 앉아 강의가 시작되길 조용히 기다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참석한 환자들 가운데 내가 가장 어렸다.

뭔가 기분이 어색했다.

마치 아직 있으면 안 되는 곳에 있는 것 같달까?

하긴 이 나이에 암에 걸린 사람이 많지 않겠지.


병실로 돌아와 보니 어느덧 엑스레이를 찍어야 하는 시간이었다.

어머니께서 의료진을 부르려 하던 그때, 나는 어머니를 만류했다.

“이번엔 혼자 다녀와볼게.”

“괜찮겠어?”

“응. 한번 해보려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어머니를 뒤로하고 엑스레이 실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보호자 없이 혼자 엘리베이터 안에 섰다.

다른 층에서 누가 탈 땐 열림 버튼을 누르며 기다려주는 여유 또한 부렸다.

조금이지만 일상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하지만 여전히 누울 때마다 통증이 밀려와 엑스레이 촬영은 쉽지 않았다.

아직 완전히 회복된 건 아닌가 보다.

끝내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 촬영을 마쳤다.


엑스레이 실을 빠져나와 오랜만에 1층을 구경하고 싶어 병원 입구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로비엔 출근하는 의료진, 번호표를 뽑는 환자들, 그 옆을 지키는 보호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누군가는 입을 굳게 다물고, 누군가는 핸드백 끈을 조심스레 쥔 채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보호자...

아차. 분명 너무 늦어지면 어머니께서 걱정하실 것이다.

발걸음을 곧장 엘리베이터로 돌렸다.


“으아아앙!”


그 순간, 서럽게 우는 아이의 소리가 복도 끝에서 들려왔다.

“괜찮아...”

아이의 엄마가 애써 달래는 소리도 어렴풋이 들렸다.

엄마가 아프니 얼마나 서러울까...


문득 병실에서 기다리고 계신 어머니가 떠올랐다.

만약 내가 아닌 어머니가 아프셨더라면 어땠을까.

둘 중 한 명만 아파야 한다면, 차라리 내가 아픈 게 낫지 않을까.

이 생각을 어머니께서 지금 하고 계실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해졌다.


그렇게 고개를 떨군 채 걷다 보니 어느덧 복도 끝에 다다랐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환자복을 입고 비니를 쓴 아이가 엄마 품에 안겨 서럽게 울고 있었다.

“괜찮아, 착하...”

“으아아앙!”

엄마는 계속 토닥였지만 아이의 울음은 더욱 커져갔다.


그때의 감정은 차마 글로 옮길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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